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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 Oct 06. 2018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줌파 라히리 <저지대>를 읽고

여행자의 찰나의 시선에도 가난한 나라의 고단한 얼굴들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한가로운 여행자(관광객)의 여로는 하루하루 목구멍을 죄이는 굶주린 자들의 일터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새로운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 권력자들의 의한 세상의 부와 빈의 오랜 고착을 보는 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지에서 가난의 근원을 생각하게 되면서 인도가 떠오르는 건 필연적이었다. 어떤 지인은 인도를 가는 것은 여행이 아닌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인도를 상상하는 순간 세계의 굶주림을 걱정했던 나름의 사유는 하잘 것 없는 겁으로 쉽게 치환되고야 말았다. 그만큼 그곳의 불안과 가난한 ‘길 위’는 막연하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공포였다.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어느 순간 마법의 반지처럼 우리의 현재 속에 고요히 맞물려 들어온다.”        


경찰을 피해 저지대에 숨어 있다 제 숨을 가누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오고야 마는 사회주의자(낙살라이트) ‘우다얀’이나 자신의 안녕이 우선인, 나고 자란 저지대를 아예 떠나버리고 마는 ‘수바시’나 결국엔 인도가 잉태한 운명을 어떻게든 짊어지고야 만다. 외려 소설 속에서 조국의 고단함은 사살 당하는 우다얀보다도 끝까지 살아내고야 마는 수바시를 오랫동안 괴롭힌다. 살아있는 한,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쓰나미처럼 생을 덮친다.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운명이라 한다. 조국, 부모, 형제라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제되고 파탄되고 용해되는 인물들을 보며 운명은 헤쳐나가는 게 아니라 짊어지고 갈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각자는 어떤 운명의 저지대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걸까. 짊어질 게 적은 조국을 가진 덕에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이도 짊어질 것밖엔 없는 인도라는 여로 위에서 쉽게 유신론자가 되어버린다.    

  

1960년대 인도의 쓰라림은 6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저지대에 고스란히 고여 있다. 우다얀의 낙살바리 운동의 지난 역사를 알아내려는 순간 독자는 소설이 과거를 그리는 동시에 현재를 전송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폭력으로 권력을 전복하겠단 낙살라이트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뉴스를 장식한다.    


여행은, 독서는 나와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나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한다. <저지대>는 조국이란 운명의 그림자를 떨쳐내려 분투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책과의 인연은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에게 시선을 던지는 일을 우리의 운명으로 만든다. 형제의 삶은 오랫동안 내 몸 속 어딘가에 고여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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