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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Oct 11. 2023

넌 핸드 크림을 얼굴에 발라?

고보습 크림이면 아무거나 쓰라는 당신에게 고합니다


그 마음 잘 알지


화장품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드름이 많이 나서 피지 조절제를 먹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피부가 건조해서 보습 크림이 필요했다.


나 또한 피지 조절제를 하루에 2알씩 6개월을 꼬박 먹었던 적이 있어서 그 건조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생전 얼굴에는 절대 안 바를 것 같은 극건성 크림도 써보는 경험도 했었다.



틴케이스(깡통)로 판매되는 일명 '니베아 파란뚜껑'크림. 물과 파라핀 왁스, 글리세린이 주성분이다. (출처: 구글 검색)


약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어봐서 잘 알았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문제로 힘들었던 내 과거가 지금 그에게는 현실이라는 게 마치 내가 과거에 해결하지 못하고 두고 온 문제처럼 느껴졌다.




불청객의 참견


그래서 적절한 제품을 사길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자에게 되직하고 불투명하며, 단단한 성상의 크림을 우선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시어버터가 전성분 중 상위에 있으면 다른 제품을 찾아도 좋다고 했다.


왜냐면 오일과 버터류 성분 중에는 코메도제닉(comedogenic), 즉 모공을 막아서 여드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제삼자가 "성분 따질 거 없이 보습 필요하면 뭐가 들어갔든 고보습 크림 하나 사서 바르면 된다."라면서 내 말을 일축했다.


돌연 대화에 끼어든 속도만큼이나, 그의 짧디 짧은 말에 근거는 없었다.


화장품 성분별로 여드름을 유발하는 정도를 0부터 5까지 정리한 결과. 시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코메도제닉의 개념을 정형화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출처: 하단 기재)




갱생의 기회는 무슨


본인의 일이 아니라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일까. 평소에 만날 일이 없는 유형의 사람이자 상황이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려다가, 이미 그의 난입에 한 차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 자리에서 이 다음의 내용들을 말해보았자, 내가 바라는 대로 본인의 좁은 식견을 넓히고 대화에 대한 예의를 바로 잡아 더 나은 사람이 될 만한 바탕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걱정되는 것은, 질문자가 과연 원하는 해답을 찾았을지는 모른다는 점이다. 그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못내 안타깝다.




환자가 의사 된다고


그는 '성분 따질 필요 없이 고보습크림 아무거나 바르라'라고 일갈함으로써, 스스로의 지식은 그것이 전부라는 것과 동시에 질문자 내면에 깔린 그늘은 보지 못했다는 사실까지도 함께 드러냈다. 과거에 얼마나 여드름으로 고생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정말 어렵게 나았다면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원료와 성분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따지기란 그의 말대로 무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성분이 정확히 화장품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뭐가 들어갔고, 가장 많은 성분은 무엇인지 정도를 아는 것만도 여드름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큰 정보다. 공부할 거리는 도처에 널려있다.


화장품이 절대 피부 질환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사용은 병의 호전을 돕고 재발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성분 함량을 광고하려면 해당 성분의 함량을 명시하도록 규정되어있다.(출처: 구글 검색 후 편집)

한 번 지독하게 여드름으로 고생하고 나면 성분에 대해 무지하려야 무지할 수 없다. 과장이긴 해도 환자가 제 병 고치려다 의사 된다고, 나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는 못할 공부도 아니다.




코에 걸어도 귀걸이는 귀걸이


그는 성분, 함량 등을 따질 것 없이 보습 크림이면 무엇을 발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제품의 용도에 따른 구분이 엄연히 있는 데다 저마다 조성비와 구성이 다르고 사용감과 보습의 수준이 다른데, 어떻게 그걸 모르면서 조언이라고 말을 하는가.


그의 말대로 성분이 전혀 상관없고 고보습이기만 하면 된다고 치자. 그럼 바르면 된다. 바로 시어버터 20%가 함유되어 고보습이라는 L브랜드의 '핸드 크림'을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핸드 크림도 크림이니까 결국 이름표를 떼고 나면 그는 다 같은 보습 크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보습 효과로 유명한 시어버터는 이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시그니처 성분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하단 기재)


그러나 해당 브랜드에서는 핸드 크림 뿐 아니라 얼굴용으로도 시어버터를 사용한 제품을 판매 중이다. 왜냐면 같은 시어버터가 들어있고, 동일하게 고보습으로 광고해도 두 제품의 조성비와 구성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다. 쓰임에 따라서 물건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 말을 화장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보자. 핸드 크림을 얼굴에 바르면 얼굴용 보습 크림이 될까? 반대로, 얼굴에 바르는 크림을 손에 바르면 핸드 크림일까?


아니다. 손은 얼굴 피부와 다르다. 그래서 별도 유형으로 구분해서 출시하는 것이다. 이로서 소비자가 힘들게 성분을 읽지 않아도, 목적에 맞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성분이 상관없다는 그의 말은, 화장품 산업이 소비자를 세심하게 고려하여 제품을 잘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다.


성분이 상관없다는 그의 말이 맞다면, 굳이 제품의 유형을 구분해서 출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에 그에게 제품 유형은 알려주지 않고, 내용물만 바르라고 하면 그는 핸드 크림과 페이셜 크림 중 어떤 것을 고를까? 구분은 할 수 있을까?


L사의 제품에 쓰인 핵심성분 3가지. 전성분에 해당 성분을 표시했다. 전성분 상 두번째면 함량으로 광고할 만 하다.(출처: 하단 기재)




보습의 3종류


고보습이란 말이 붙은 모든 크림을 성분이 상관없다며,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그냥 쓰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제품 추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함부로 하는 말이다.


더구나 지성 피부인 사람에게 밀폐 방식으로 보습을 하는 성분은 불필요하다. 피부에서의 보습은 크게 아래의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수분 끌어오기(습윤, humectant): 글리세린, 부틸렌글라이콜, 프로필렌글라이콜 등
2. 피부에 스며들기(유연화제, emolient):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등
3. 수분 지키기(밀폐제, occlusive): 시어버터, 코코아버터, 파라핀왁스, 카나우바왁스, 페트롤라툼 등


피지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보습제인 까닭은 세 번째, 밀폐제 방식으로 수분을 지키는 성분이라 그렇다. 원래 피지선이 활발하고 피지 분비량도 많은 사람이 피지조절제로 피지 분비를 다소 억제한 상태인데, 피지 같은 보습 방식의 성분이 들은 제품을 쓰라는 말은 약효를 없애라는 말과 같다. 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행위를 권하는 일인가.


행여나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 건조의 정도나, 여드름이 난 피부의 상태를 확인했더라면, 나도 해당 크림을 추천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건조해지면 오히려 피지가 아주 없어진 상태니까 못 쓸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질문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말만 들었을 뿐이다.




조언 아닌 조언


설령 제삼자가 말한 대로 정말 성분이 상관없었으면  '코메도제닉', '여드름성 피부 사용 적합'이니 하는 단어와 인증, 임상 테스트가 왜 있겠는가. 게다가 사실 저 대화는 여드름을 극복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이들의 사이에서 나온 거라서 용어와 개념을 그도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저 모든 것을 상술이고, 착각이라고 일축하며 '정신승리' 하려 들까.


그 발언 이후에도 그는 단정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며 의사가 아님에도 함부로 병명을 특정하고, 화장품에 대해서도 '너 좋은 대로 해'라고 내뱉듯이 말하곤 했다.


스스로가 결심해서 변해야 비로소 도움되는 조언이다.(출처: 구글 검색)


의견을 구하는 사람에게 그런 도움 안 되는 소리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남을 위해 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가 인정받고 싶어서 한 말은 결국 불쾌함과 무용(無用)함만을 남겼다.








이미지 출처


https://clicks.co.za/nivea_creme-tin-150ml/p/39477

https://www.loccitane.com/en-ca/shea-butter-hand-cream-01MA150K22.html

https://skintypesolutions.com/blogs/skincare/comedogenic-acne-causing-ingredients

https://www.skinpossible.ca/uploads/Documents/Comedogenic-ratings-Acne-pdf.pdf


참고 글


https://doi.org/10.1016/j.jaad.2005.11.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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