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글 제목처럼 본격적인 생업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정석대로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서 나 아닌 다른 사람도 관리할 자격을 갖추고 싶었다. 단순히 화장품을 개발한 다음, 그 뒷단의 일은 알아서 맡기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다.
그리고 지난 10월 첫째 주에 말 그대로 '얼레벌레' 말아먹었다. 어설퍼보이는 건 물론이고 주어진 시간 내에 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독학으로 한 달만에 합격했다는 얘기는 엄연한 남의 얘기였다.
시험 직후 베란다 상태. 혼란스럽다.(이미지 출처: 본인)
화장품과 피부에 대해 나름 경험과 지식이 있는 나라면 한 달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시험까지 일주일, 5일, 3일로 점차 가까워질수록 패배감이 엄습했다. 베드 세팅부터 모델 준비까지, 참 어려웠다.
천성이 연구원
실기 시험은 총 3파트로 나누어진다. 그중 1파트는 얼굴 피부 관리로, 세부 과정이 많고 피부 관리 실무에서도 가장 기본 토대가 되는 내용들이라 먼저 준비했다.
순서는 대략 실제 피부 관리 순서와 같다. 메이크업과 노폐물을 닦는 클렌징과 각질과 피지를 닦는 딥클렌징, 피부의 혈행과 근육을 이완시키는 매뉴얼테크닉, 팩과 마스크 순이다.
제형 개발 연구원으로서 흥미로운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우선, 처방이 다소 올드하다는 점이었다.시험용 화장품이지 실제 관리실 제품은 아니여서인지, 성분을 보니 못해도 한 20년 전에나 개발되는 처방이었다. 최근 국내 화장품에서는 미네랄 오일을 잘 쓰지 않는다.
미네랄 오일은 단가가 저렴하고, 다양한 오일과 상용성이 나쁘지 않아서 사용 빈도가 높고 1회 사용량이 비교적 많은 클렌징 제품류에 흔히 사용되었다. 하지만 다른 천연 오일류가 더 좋다는 트렌드에 따라 잘 처방하지 않는 편이다.
위 제품의 전성분. 미네랄 오일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출처: 하단 기재)
특히 팩 과제에서는 제시된 피부타입(건성, 중성, 지성)에 맞는 팩을 도포해야 하는데 지성용 팩 치고는 오일 함량이 높다고 느꼈다.
마사지 크림도 제형 특성상 오일 함량이 아주 높았는데, 만일 관리실에서 이걸로 내 얼굴을 마사지한다고 하면 난 그 관리는 빼달라고 사전에 말했을 것이다. 산유국 피부라 본능적으로 오일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건 시험이야
그러나 시험에서는 '균일한 양으로, 적절한 부위에 도포하였는가'를 평가한다. 그래서 불투명하고 두텁게, 부드럽게 발리기 위해서는 효능보다 목적 그 자체를 위한 제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언제나 소비자와 트렌드에 따라 나름 사용감 좋고, 효과 좋은 제품을 만들어왔는데 이와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보니 참 흥미롭고 신기했다.
이런 3가지 피부 타입별 크림팩을 T존, U존, 목부위로 구분해서 발라야 한다.(출처:구글 검색)
시중에 다양한 실기용 화장품 브랜드가 있고, 나는 3개사의 제품을 써 봤는데 성분과 제형 면에서 모두 조금씩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실제 관리실에서는 이미 좋은 제품과 기기로 관리하지 않을까 싶다.
관리의 기본은 클렌징
딥클렌징 과제에는 네 가지 유형의 제품이 있다. 시험에는 그중 하나를 랜덤으로 시연하게 된다. 진짜배기 지성 피부 소유자로서 볼 때, 지성 피부가 유수분 밸런스가 맞는 '좋은' 피부가 되려면 피지와 각질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점에서 실무에서 시험의 딥클렌징 만으로는 다소 부족할 것 같다.
네 가지 유형 중 물리적으로 각질을 제거하는 고마주(Gommage)와 스크럽은 아주 거친 각질을 가진 경우에는 쓰기 좋다.
고마주는 피부에 바른 뒤 표면이 건조되면 때를 밀듯 손으로 가볍게 밀어내는 제품이다. (출처: 하단 기재)
그러나 피지에 엉겨 붙은 얇고 끈끈한 각질을 벗겨내지는 못한다. 때밀이 수건으로, 내지는 굵은 사포로는 미세한 피부의 골이나 얇은 나뭇결을 다듬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AHA라고 하는, 알파하이드록시애시드 즉 산(acid)을 사용한 관리가 있는데 이 성분은 수용성이라 건성 피부의 각질 관리에 좀 더 적합하다.
지성 피부에도 위 3가지 방법보다 효과적이긴 하다. 그러나 AHA가 아닌 LHA나 BHA 등 지용성 성분이었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해외의 산성 필링 제품. 붉은색은 위 제품 특유의 색이지 산성 성분과는 무관하다. (출처: 구글 검색)
정말 딥하게 가주세요
클렌징이 깨끗하게 잘 돼서, 피부가 정말 노폐물 없이 청정한 상태일 때라야 이후에 바르는 제품들이 의미가 있다.
그런데 건성 피부는 앞서 딥클렌징으로 각질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는데, 지성 피부는 각질도 그렇지만 모공에 끼인 피지를 그대로 두고 이후 관리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마치 손톱의 큐티클을 그대로 두고 컬러젤을 바르는 느낌이랄까. 블랙헤드나 모공을 위한 별도 관리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단 생각이다.
막힌 모공은 간혹 압출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딥클렌징에서 모공을 완전히 비워야 진짜로 클렌징이 의미가 있고, 이후 제품의 흡수나 수분 공급도 잘 될 텐데 그러기엔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다만 이 또한 시험 상 클렌징 테크닉을 원활히 수행하는지에 주안점이 있는 것이지, 피부 타입에 따른 관리법을 평가하는 건 아니라서 그런 걸로 넘어갔다.
독학으로는 몰랐을 것
나는 제형 연구원이고 산유국 지성 피부이자 여드름을 달고 산다.그래서 내가 현업 피부 관리사라면, 그리고 내 피부같은 사람이 고객이라면 어떤 제품으로, 어떻게 관리를 할 것인지를 많이 생각했다. 재시험을 준비중이니 섣부른 상상일지라도 아주 깨닫는 바가 많았다.
조금 놀라실 수도 있지만 찢어진 곳 없이 예쁘게 잘 나온 모델링팩이다. (출처: 본인)
처음 2주는 유튜브로 독학했는데 영상 속 원장님들마다 각자의 스타일과 절차가 있어서, 정답을 알 수 없으니 더 혼란스러웠다. 때마침 관할 복지관에서 자격증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게 신청했다.
혼자서 알아채지 못한 실수나 감점 사항까지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그러나 수강하며 배운 것은 의외로 다른 데에 있었다.
클렌징 크림을 볼에 한 번, 코에 한 번 찍어 바르는 스타일도 있다. (출처: 구글 검색)
강사님께서 얼굴에 크림을 도포하는 법을 알려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크림을 이마, 코, 볼, 턱에 손가락으로 콕 찍듯이 덜어놓고 도포해도 시험에서는 상관없으니 각자 편한 대로 하세요."
"…그런데 그렇게 고객 얼굴에 덜어놓고 도포하는 거보다, 저처럼 이렇게 손에 덜고 관리사의 체온으로 크림을 녹인 뒤 도포하는 게받는 입장에서는 느낌이 훨씬 더 좋아요."
고수의 말씀에서 따스한 향기가 물씬 풍겨나오는 바람에 순간 아찔하여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피부관리사, 이 또한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