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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Sep 24. 2023

난 슬플 때 미스트를 뿌려

마치 기쁠 때 치킨을 시키는 것과도 같은 논리


난 슬플 때 힙합을 춰


만화가 천계영의 1996년작 ‘언플러그드 보이’ 주인공의 대사다. 슬플 때 몸을 움직인다는 게, 더구나 힙합을 춘다는 게 다소 신선했다. 잘은 모르지만 힙합은 온몸에 격렬한 힘이 넘칠 때 추는 거라고 생각해서다.


저 말은 만화가 출판된 지 30년이 되어가는 지금 들어도 ‘힙’하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힘들면 몸도 힘들듯 감정은 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언플러그드보이(1996)' 컷 일부(출처: 작가 트위터)



기분 전환용 화장품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이라는 영화에서, 어릴 적 사건으로 인해 당시의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가 만든 마들렌과 홍차를 먹고, 그 향과 맛이 불러일으킨 무의식 안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한 뒤 이전보다 더 행복해진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한 장면 속 주인공(출처: 구글 검색)

향은 뇌의 연계 영역에서 인지하는데, 이 영역은 감정을 처리하므로 향과 감정은 유관하다고 한다. 이는 화장품의 효과를 단순히 피부에 한정하여 객관화하려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근거 된다.


 또, 레몬 향을 맡으면 뇌의 특정 부위와 그 연결 부분이 활발해지고 이 영역들은 신체 각성 효과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레몬 향기를 맡으면 시상하부(Hypothalamus), 미상핵(Caudate nucleus),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가 활성화된다.

각성 상태의 신체는 긴장 상태(alert)를 유지하며 집중력이 향상되므로 레몬 향기는 무력함을 타파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실제로 레몬과 시트러스 향을 맡거나 뿌리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는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준다.

내 맘에 드는 화장품은 향이 좋아서든, 색이 예뻐서든, 촉촉해서든 다 이유가 있다. 그것도 이렇게, 아주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이유 말이다.




개성도 유행이다?


화장품은 사용 시의 효과에 대해서 객관적,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도록 더욱 첨예해질 것을 요구받는 한편 초개인화 또한 함께 반영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러한 경향은 "우울할 땐 레몬이 좋다 해도, 난 레몬 말고 복숭아를 좋아하니까 슬플 땐 복숭아 미스트를 뿌려."라고 하는 소비자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선택에 비유할 수 있다.


정신 승리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사실 관계가 어찌 되었든 본인에게 유리한 대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아무렴, 실제로 손해를 봤더라도 어디까지나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과 행동에만 국한니까 문제는 없다.


정신 승리의 원조는 바로 루쉰이 쓴 '아Q정전'의 주인공이다.(출처: 하단 기재)

그런데, 이러한 심리는 '내(너)가 좋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너)대로 개인의 견해를 존중'한다는 것이니 개성의 존중과도 일견 닮아있다.


실제로 뷰티, 헬스 케어 산업에서는 지난 3년 간 ‘내 몸은 내 거니까 평가도 내가 해’란 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역설적이게도, '개성이 유행' 세상이 오고 있다.




특이점이 온 화장품


이제 화장품은 더 이상 보기에만 예쁜 제품이 아니다. 화장품의 정의가 제품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는 수준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발랐을 때 예쁘고 지속력이 좋고, 또 피부에 좋아야 함은 당연하다.


특이점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현세 인류(출처: 하단 기재)


그럼 화장품이 앞으로 기분, 개성 같은 주관적 개념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사람 기분이 어디 항상 똑같던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한편, 이미 약 6년 전에 소비자로부 화장품의 본질을 벗어난 충격적인 움직임이 하나 포착되었다.  


이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한 소비자의 후기

바를 때 너무 부드러워요, 퇴근 후에도 지속력 쩔어요, 자고 일어나니 광이 나요


새로운 화장품 사용을 개발한 소비자의 후기

가루가 될 때까지 깨부수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글리터가 촤르르 반짝여요, 립스틱 뭉개뜨리는 느낌에 힐링됩니다


섀도우를 부수고 립스틱을 뭉개는 영상이 나온 지 벌써 6년이나 됐다.(출처: 유튜브 캡쳐 편집)

같은 제품을 누구는 바르는데 다른 사람은 깨뜨리고 부러뜨린다. 이것도 일종의 개성이라면 개성이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화장품을 써서는 만족할 수 없는 심리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화장품에서 중요하다던 피부에서의 효능, 예쁜 발색 같은 요소는 이미 없어졌다. 남아있는 것은 사용할 때의 내 ‘기분’ 만이 온전하다.


그리고 소비자는, 

"아무려면 어때?"


기분이 좋다. 이 세계에서 최후의 승리자는 소비자다. 정신 승리가 가장 강하고 유쾌한 승리가 아닌가 싶다.



T유형이 로봇은 아니다

(표현형이 T고 유전형이 Tf)


이렇게 현재의 화장품 특히 주관성이 짙어지고 있지만 본래 객관적 증명과 주관적 감성이 합쳐져있다. 예시로 제품 극단적으로 객관적, 또는 주관적 측면 한 쪽으로만 인지·사용하는 소비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았다.


객관적인 정보만 생각하사람

오후 10시 취침 준비, 미온수 세안, 타월 드라이 후 에센스 펌핑 2회, 총 토출량 약 2.3ml. 창가에 둬서 조금 묽어진 탓에 많이 나옴, 미백&주름 이중기능성(아데노신 0.04%, 나이아신아마이드 2.00% 함유), 옅은 꽃 향기, 2주째 사용 중, 눈 밑 주름 조금 옅어진 것 같음(체감상)


② 그 보다 훨씬 더 감성적인 사람의 무의식

자기 전에 세수를 하고 에센스 뚜껑을 두 번 펌핑했다. 손바닥으로 덜어낸 내용물이 금방 흘러내릴 것 같아서, 서둘러 얼굴 위로 바른다. 따뜻한 손과 얼굴에서 약한 꽃향기가 피어오른다. 은은하고 깔끔한 농도의 향이, 잠자기 직전에 쓰기 좋다. 눈 밑 주름도 2주 전보다 옅어진 느낌이다.
동일한 제품이지만 오른쪽 사진이 더 감성적으로 보인다.

보통 사람은 위 두 가지 생각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MBTI도 상반된 T(Thinking, 사고형)과 F(Feeling, 감정형) 중에서 완전히 어느 하나의 요소만 가진 사람은 없다.


T유형과 F유형은 같은 말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출처: 구글 검색)

아무리 름이 펴지고, 형광등을 켠 듯 얼굴이 환해져도 뛰어난 효능만 가지고는 좋은 화장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감성과 개성, 취향이 전부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효과우선한다면, 아예 화장품이 아니라 잠깐의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보톡스를 맞거나 프락셀 시술을 받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시술만 찾았다면, 화장품은 진작에 없어졌을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맞춤형 화장품, 비스포크 에센스(출처:구글 검색)

 영역은 합쳐지거나 변형되지 않았다. 주관적인 나만의 감성과 개성이 반영된 화장품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그리고 좀 더 나중에 화장품이 화장품이 아니게 될 때, 그것은 뭐라고 불러야 하며 우리에게 어떤 만족을 주게 될지 상상해 본다.





이미지 및 논문 출처


https://www.ksmcb.or.kr/file/bio_2016/lectures/cv07.pdf

유튜브영상① [미니유 일탈 ASMR]섀도우와 친구들의 핑크파티 섀도우를 부수다:

https://youtu.be/bEwePZTkopg?feature=shared

유튜브영상② 코덕맴찢영상 힐링타임즈 전편 몰아보기:

https://youtu.be/XvcNFVYtdms?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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