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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Oct 18. 2024

영원하기를 바라는 그 모든 이에게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 영원히 사는 방법


시지프스를 아는가?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이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림포스의 신들과 상당히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신들의 연회에 초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암브로시아를 먹는 게 허락될 정도였다. 암브로시아는 주식으로 먹을 시 불로불사를 가능케 하여 신들만 먹는 것이 원칙인데, 이를 간혹 시지프스에게만 특별히 허락해 준 것이다.


어느 날, 시지프스는 신들 몰래 암브로시아를 훔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훔친 것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자신이 받고 있는 신들의 사랑이 이 정도라고 신나게 떠벌렸다. 그는 당연히 이 행동으로 인해 신들의 진노를 사게 되어 벌을 받게 되었다.   


바위를 맨몸으로 굴리는 시지프스(Sisiphus)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무한한 반복


그가 받은 벌은 무간지옥 타르타로스에서 갈증과 목마름에 평생 시달리는 것, 그리고 하루 종일 높은 바위산 정상을 향해 크고 무거운 바윗돌을 굴려 올리는 일이었다. 그는 낑낑대며 온몸으로 바위를 밀어 올렸다. 그러나 가까스로 정상에 도착하면 그곳이 너무나 뾰족했기 때문에, 돌은 어김없이 반대편 아래로 떨어져 버리곤 했다. 돌이 맨 꼭대기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순간은 영영 오지 않았다.


절대 끝나지 않는 행위를 계속 반복하는 것, 이것이 시지프스가 받은 벌이었다. 그가 어차피 아래로 떨어질 돌을 굴리고 또 굴리는 행위가, 나는 마치 내가 모공을 비우고 또 비워서 잠시나마 피부를 깨끗이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피부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은 계속해서 각질과 피지 등의 노폐물이 쌓이기 때문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


물론 시지프스는 벌을 받은 거고 나는 내 피부에 대해서 죗값을 치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어느 것에나 지난(至難)한 과정이 있으며 그 결과는 아주 짧게 스쳐갈 뿐이라고 읽는다면,  인간사에서의 성취와 달성은 무엇이고 영원한 것이 없다. 하물며 지름 1mm도 안 되는 작은 모공임에랴. 그는 신들의 음식 맛만 안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또한 참 잘 알았다. 그래서 교만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지극한 인간이었다.


시지프스가 받은 벌 ‘정상에 돌 세워놓기’는 좀처럼 오지 않는 이상향이다. 시지프스가 굴린 돌은 떨어지기 직전 그 어느 순간에는, 산 정상에 닿았을 것이다. 그러나 굴려 올리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정점에 닿은 그 ‘찰나’가 너무나 짧았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던가. 이것을 절망으로 읽으면 시지프스의 이야기가 된다.   



영원한 것


한편, 시지프스가 돌을 굴리는 행위는 영원히 끝나지 않아서 영원하다. 그렇다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반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행동 그 자체는 영원하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끝나는 순간 또다시 시작된다. 그는 이 부질없는 행위를 뼈에 새기고 또 새기는 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와 우리가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행위는 ‘찰나’를 향해갈지 언정, 그 방향은 선(善, arete)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부질없지 않다. 어차피 지저분해질 테니 매일 세수 안 하고 살겠는가.


영광이 찬란한 것은 그것을 가지지 못하였을 때가 고독하기 때문이며, 본인 마음먹은 대로 누구나 쉬이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목표를 추구하며 매일 같이 작은 움직임이나마 꾸준하게 한 세상을 고이 살아간다. 작은 꾸준함. 유한한 인간으로 태어나 영광과 선을 지향하며 매 순간을 영원하게 사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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