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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Oct 15. 2024

시골에서 살아봅시다!

도시 탈출을 꿈꾸다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만든

위성도시인 성남에서 태어나

평생을 경기도민으로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대비 인건비가 낮은

중국, 베트남에 공장이 있는 회사에 입사해서

파견 근무를 나가서야

사람보다 공간이 더 많이 보이는

시골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롯이 혼자라는 후련함.

타인의 들숨과 날숨이 느껴지지 않는

너른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항상 사람들에게 치여 살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

2부제로 운영이 되었을 만큼 학생들이 많았다.

조회를 마치고 전교생이 반으로 몰려가면서

좁은 계단과 복도에서 압사 직전에서야

겨우 무리에서 도망 나올 정도로

인파에 질식이 된 상태로 오랜 시간 살았다.


모두가 그렇게 살았기에 당연했다.


20대에 우연히 여자 혼자 귀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귀농을 꿈꾸었다.

(당시에는 귀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귀농을 하고 싶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도,

정보를 알 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일가친척이 모두 서울, 성남에서 살아서

물어볼 곳도 없고,

상경해서 회사에서 만난 동료한테 물어도

열에 열은 여자 혼자는 좀 그렇다고 했다.


모두가 결혼해서 같이 가거나

내가 가고 싶은 지역에 사는 남자와

소개팅을 해 보라고 했다.


소개팅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때,

친구의 친구가 사내결혼해서

시골로 내려갔다가

혼자 집에 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임신한 상태였는데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시골의 공동체 문화와 남녀의 다름이

당연했던 문화를 힘들어 했다고 했다.


임신해서 힘들겠다며

보살펴주겠다는 말에 시댁에 들어갔는데

농사철에 바빠진 시어머님이 하던

집안일까지 맡아서 했다고 한다.

집안일보다 더 힘들었던 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의 부재였다고 한다.


문을 잠그지 못하게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도 임신한 친구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며

아무 때나 와서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낮잠을 자는데 인기척에 놀라서 눈을 뜨니

동네 할머님이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놀랬던니 유산될 뻔할 정도로

기겁했다고 한다.


산부인과에 가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의사가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산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유산될 수 있다며

동네 어르신들 못 오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남편이 고대로 시어머니한테 하자,

모두가 다 걱정해서 하는 배려라며

"호강에 어 오강에 빠져 죽을 년"

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남편도 여기 문화라며

도시 여자라서 까칠하다고 했다.


다음 날 모두 밭에 나갔을 때,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그 길로 왔다고 한다.

친구는 공동체 문화라며 간섭과 잔소리가

일상인 곳에서 내가 말대꾸 없이

'네네'하면서 살 수 있냐고 물었다.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

불공평한 일에는 전생에 잔다르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들고일어나는 내 성격에

가당키나 하겠냐는 말로 많이 만류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우연하게 들은

팟캐스트 때문에 귀농을 완전히 포기했었다.


남자 사회자가 귀농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여자 3명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여자 2명은 친구로 번아웃 증세에 시달리다

지인의 소개로 시골에 있는

땅과 집을 임대해서 살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2명이서 농사를 지으려니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욕심부리지 않고 지역주민들하고도

잘 지내려고 행사에 참여해서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문제는 결혼하지 못한 미혼 남자들이 많은 지역에

싹싹한 결혼 적령기에 있는 여자 두 명이

둘 만 살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중매가 시작되었고,

둘이서 자유롭게 살 생각으로 내려왔던

여자들은 생각 없다고

일언지하에 잘랐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 동생 혹은 조카가

외지것들(지금도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한테

거절당하면서 그들의 복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온갖 트집을 잡는 것은 물론,

여기다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험한 소문을

퍼트려서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도망 왔다고 한다.


다른 여자 게스트 한 명도 귀농한 사연과 지역은

달랐지만, 도망 온 원인은 같았다.

(지금은 국제결혼으로 덜하다고 한다)

사회자가 게스트들한테 예쁘고 매력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라는 말에  세 명 모두 외모가 아니라

결혼 적령기 여자라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팟캐스트를 끝으로 귀농은 완전 접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중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해외여행질려

국내 여행에 눈을 돌리게 되었을 때,

지자체 지원금을 받으며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는 글을 봤다.


지자체에서 제시하는 기준으로

SNS에 여행기를 쓰면

일정 금액을 후불로 정산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정보를 찾다가 우연하게

한 달을 여행하거나

타 지역에서 거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앱을 알게 됐다


1달을 여행하면

최대 160만원 지원금을 주는 지자체부터

소액을 지불하고 참여하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행사들로 참여자를 찾는 공고가 많았다.


그중에서 내 눈에 확 들어왔던 곳이

전라북도 진안군의 

청년캠프 [마이쿡_진안을 맛보다]였다.


난 40대이기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

대부분의 지자체 기준(39세까지 청년)에서는 중년이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청년 나이를

45세, 49세로 지정한 곳이 있는데

진안군이 45세까지라서 난 지원할 수 있었다.


공고는 딱 3일 뒤가 마감이었다.

글을 봤을 때가 새벽 2시였는데 고민 1도 안 하고

바로 지원했다.


다음 날 063으로 시작하는 유선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처음 받아보는 063 지역번호가 낯설기도 하고

스팸이라 생각해서 받지 않았다.


잠시 후 [진안군귀농귀촌센터]라며

문자 확인하면 전화 달라고 했다.


문자를 보고 전화했더니 담당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이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짧게 전화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했다.


당황하기는 했는데

괜찮다고 했다.

여러 질문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딱 2가지였다.


한 가지는 요리를 잘하냐였다.

캠프이름이 [마이쿡_진안을 맛보다]로

요리를 주제로 진안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기에

요리 실력을 물어 보신 듯 했다.


외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해 먹지만

요리를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금 실망한 톤으로 말하는 담당자의

목소리에 이러다 떨어 지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남들한테 잘 말하지 않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다.


20대 때 남자친구도 있고, 결혼하고 싶었을 때라서

신부수업받는다는 개념으로 취득했던 자격증이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은 알지만,

맛보다는 규격을 중시하는 시험이라

자격증이 있어도 요리를 못했다.

그래서 사회 나와서 말을 잘 안 했는데

급한 마음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른 질문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데 문제가 없냐]였다.

브런치북[명랑한 은둔 백수]에서 쓴 것대로

난 2년 이상을 은둔 생활을 했다.


타인과 교류가 거의 없이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아서 어울릴지 않았으니

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했다.


잘 어울리냐라고 물었다면

아니오.라고 했겠지만.

문제가 없냐고 물었고,

문제는 없어(만나야 생기는 거니까)

없다고 했으니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인터뷰는 끝났다.


삼일 뒤에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 옆에 있는

이름도 낯선 진안군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내 도시 탈출!

시골살이의 전야가 시작되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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