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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kyea Nov 23. 2020

호주 로드트립 | 얀쳅 국립공원

캥거루로 시작해서 캥거루로 끝난

얀쳅 국립공원 (Yanchep National Park)는 호주 여행에서 손에 꼽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해가 저물 시간 즈음에 도착하여 얀쳅 국립공원 내에 있는 캠핑지 Harris Park를 가기 위에 입구에 들어서서 얼마지 지나지 않아 드넓은 공원이 보였다. 그리고 너무도 갑작스럽게 내 눈 앞에는 캥거루들이 푸른 잔디 위에서 각자 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노을 지는 분홍색 하늘에 키 큰 나무들이 우거져있는 국립공원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동물원에서 보던 생기 없는 캥거루들이 아닌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진짜 캥거루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 놀라서 우리는 우르르 달려가 저만치서 캥거루들을 한없이 감상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호주에서만 사는 동물 캥거루, 진짜 호주에 왔구나 싶었다.

캥거루들, 바닥에 똥이 가득한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해가 빠르게 지는 탓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캠핑지로 이동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국립공원 내 표지판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반복해서 돌고 돌았다. 끝끝내 찾을 수 없자, 입구가 아닌 출구용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를 힘으로 들어 올려 들어가 볼까 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우리가 무식한 짓을 하기 전에 저 멀리 한 남자가 보였다. 어서 달려가 해리스 파크 가는 방향을 물어보았고, 다행히도 친절한 안내를 받아 무사히 우리는 돌고 돌아 해리 스파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리스 파크라는 이름에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듯한 David Letterman을 닮은 백발의 아저씨가 트레일러에서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 분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게 어울리는 분이 있을까 싶다)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우리의 자리에 차를 대고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이곳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캠핑장보다 더 캠핑장스러운 곳. 우리의 SUV 차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카라반 또는 트레일러를 가져왔다. 우리는 주섬 주섬 가로등 빛 하나 없는 곳에서 손전등에 의지한 채 텐트를 쳤다. 6인용의 큰 텐트임에도 이 광활한 캠핑장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귀엽고 작아 보였다.


주린 배를 잡고 밥을 먹기 위해 공유 주방으로 갔다. 널찍한 공용 주방에서 마트에서 구매한 재료들을 때려 넣어 대충 파스타를 해 먹었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만찬이었다. 주방은 야외이다. 그 말은 우리 주변으로 캥거루가 그냥 지나다닌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주방을 나서자마자 동글동글 캥거루 똥 천지다. 그런데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풀 뜯어먹고사는 캥거루들은 똥냄새가 나지를 않는다. 거짓말 좀 보태서 해변 모래만큼이나 많은 캥거루 똥인데 냄새가 안 나다니, 역시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게 맞는 거 같다.

오밤 중에 캥거루, 뭘 보니?

언니들보다 뒤늦게 텐트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언니들이 급하게 오더니 나한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이때가 언니들한테 무척이나 감동했던 순간인데, 갑자기 하늘을 보라고 하더니 " 별이야!!! "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수많은 별을 선물은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현재를 즐기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사실 별을 봐도 감흥이 없는 사람이었다. 퍽퍽한 시력 때문에 번져 보이는 별을 보면 내가 과연 별을 보는 게 맞는지 의심만 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선물해준 별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너무 아름다웠고, 번져 보이는 별도 더 빛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텐트로 들어가 셋이 나란히 누워 텐트 문 밖으로 별을 쳐다보다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쨍한 햇볕에 피곤할 새도 없이 금방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뜨고 텐트 밖으로 나가자마자 까꿍! 캥거루들이 또 우리는 반겨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는데 몇 번 좀 마추졌다고 그새 친근해졌다. 전날 저녁에 입구에서 잠시 밖에 마주치지 못해서 아쉬웠던 캥거루였는데, 전혀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캥거루 이즈 에브리웨어. 우리는 더 이상 캥거루에게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굿모닝, 캥거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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