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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 Jun 26. 2024

20.05.02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ㅇㅇ로봇 출근 완료!

우리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다 못해 로봇이 되기로했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

힘든 일이 있을 때마 '나는 로봇이다'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식의 주문을 걸어댔다.

나 자신을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부터, 직장 동료나 상사의 몰상식한 발언으로 부터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다. 

여러모로 힘든 일이 겹쳤다. 참 많이도 울다 지쳐 잠이들곤 했는데, 잠조차 잘 수 없는 날엔 끊임없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달라지는 것 없이 하루를 끝내고 똑같은 마음으로 다시 잠자리에 드는 나에겐 실체없는 메아리일 뿐이 었다. 어느 날부터는 자기전에 행복해지게 해달라는 주문대신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게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나를 억누르는 이 감정으로부터 무뎌지길 바랬다.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든 줄 모르고 싶었다. 나는 감정을 통제할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자괴감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나약하고 의지부족이라고 비난하던 사람의 모습이 딱 지금의 나였다. 의지도 목표도 뚜렷했던 나였는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내 자신을 보는게 괴로웠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감정의 바운더리가 다르다. 누군가는 한없이 예민하고 누군가는 한없이 무디다. 감정이 바운더리가 작게 태어난 사람들은 감정의 바운더리가 넓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위 예민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상처투성이다. 끊임없이 상처받고 그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방어기제가 생기고, 작은 일로 한없이 우울에 빠져들기도 했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우울로부터 빠져나오는 자신만의 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알고보니 내가 바로 그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온 나의 모습은 감정을 잘 통제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잘 극복하며, 사소한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은연 중 타고나길 무딘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라는 담담한 대답을 뱉었던 김연아 선수와 같은 마인드로 살고 싶었다. 그저 그날 주어진 것에 전력을 다하는 삶. 


나를 가장 힘들게하는 것은 상황 자체보다도 '이런 일에 힘들어하는 내 자신'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겨우 이 정도 일에 힘들어하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내 문제다' 와 같은 생각들로 힘든 상황의 원인을 나에게 돌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경우 원인은 본인 탓일 확률 30%, 직장이 탓일 경우 30%, 그냥 본인과 직장이 안맞을 경우 30% 정도 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확률로 본인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자연스레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먼저 찾는 것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오래된 통념인 것 같다. 남 탓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듯 싶지만, 남 탓은 하소연 식으로 표면에 드러나기 때문에 더 많이 부각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본인의 문제는 으레 속으로만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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