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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a Aug 05. 2019

그릿 - 앤젤라 더크워스

2017.12 필사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린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니체



게틀먼의 여정은 나침반과 같은 열정을 보여준다. 나침반은 만들고 방향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제대로 맞춰지면 길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원하는 곳으로 끝까지 길을 안내해준다.



이런식으로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왜냐하면..” 이라는 답변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목표의 위계에서 최상위 목표에 이르게 된다. 최상위 목표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다. 일부 심리학자는 최상위 목표를 ‘궁극적 관심’이라고 부른다. 나는 최상위 목표를 모든 하위 목표에 방향과 의미를 제공하는 나침반으로 생각한다. 



셀리그먼의 학습된 무력감 실험

우리에 갇힌 개의 뒷다리에 전기충격을 가함. 개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전기충격이 5초간 지속되지만 우리 앞의 패널을 코로 누르면 바로 멈춘다. 옆 우리의 개에게도 똑같은 간격으로 전기충격이 가해지지만 거기에는 전기를 차단할 패널이 없다. 즉 첫번째 개만 전기 충격이 지속되는 시간을 통제 할 수 있다. 다음 날은 셔틀박스라고 이름 붙인 우리에 개를 한마리씩 넣는다. 셔틀박스의 한가운데에는 개가 뛰어넘을 만한 높이의 칸막이가 있다. 고음의 신호가 울리면 곧이어 셔틀박스에서 개가 서있는 한쪽칸의 바닥에만 전기가 흐른다. 전날 패널을 눌러 전기를 차단할 수 있었던 개는 거의 대부분 장벽을 뛰어넘으면 된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그에 반해 전날 전기충격을 통제할 수 없었던 개는 3분의 2가 형벌이 끝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웅크리고 낑낑대기만 했다. 이 중대한 실험은 무력감을 낳는 요인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해줬다, 문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통이었다.


낙관론자는 으레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일시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찾는 반면 비관론자는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원인을 탓했다. 샐리그먼과 그의 학생들은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구별하기 위해 검사지를 개발했다. 그 검사지 문항의 예를 하나만 들자면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당신이 일을 전부 끝내지 못했다고 해보자. 이제 그렇게 된 주원인을 상상해보라.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이런 일련의 가상 상황을 읽고 작성한 답들이 일시적 원인 대 영구적 원인, 특수한 원인 대 전반적 원인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당신이 비관론자라면 “나는 모든 것을 망쳐놔” 라거나 “나는 실패자야”라고 말할 것이다. 이는 영구적 원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다. 반면 당신이 낙관론자 라면 “내가 시간관리에 실패했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원인들은 전부 일시적이고 특수한 원인으로 ‘해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극복할 동기를 부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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