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미리 Feb 01. 2021

부케 다섯 번 받은 여자

나도 이제 부케를 던지고 싶다

평소 결혼이 늦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 내가 괜찮지 않구나 라고 느낄 때가 있다.  

모임을 가질 때, 친척들을 만날 때, 부모님이 자꾸 결혼하라고 재촉할 때...

그런데 최근 들어서 친구가 준 부케를 볼 때가 추가되었다.


작년 말. 코로나를 뚫고 친구가 결혼을 했다. 나는 친구의 부케를 받게 되면서 지금까지 받은 부케를 세어 보았다. 부케 받은 숫자가 헷갈릴 정도였다. 결론은 벌써 다섯 번째가 됐다. 매번 부케를 받으면서 '이 부케도 마지막이겠지' 싶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부케 기록을 깨게 됐다. 그럼에도 부캐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건 이제 남은 건 나뿐이라며 받을 사람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있기에 이 기록은 또 깨질지도 모른다.


분명 친구의 행복한 결혼에 부케를 받게 돼서 기뻤고 영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집에 걸린 말린 부케를 볼 때면 가끔씩 분통이 터질 때가 있다. 도대체 이게 몇 개째야? 어후...


내가 이렇게 결혼이 늦어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39살이 됐고, 취직이 되면 결혼하자고 했던 남자친구의 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도 괜찮은 거라고, 우린 조금 늦게 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내 눈에 들어오는 말린 부케는 희망을 상징하는 예쁜 꽃이 아니라, 빨리 처리해야 될 꽃으로 여겨진다. '아 맞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결혼 서둘러야지?'


이게 다 부케의 미신 때문인가. 부케 받고 나서 6개월 안에 결혼하지 못하면 3년 동안 결혼을 못하게 된다더니, 진짜 부케를 받고 나서 6개월이 지나면 몇 년간 결혼을 하지 못했다. 괜히 말린 부케를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나고,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집으로 놀러 온 남자친구 앞에서 난 부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제 축하받고 싶다고, 부케는 이제 그만 받고 싶다고 한탄했다.

"몰랐어? 부케는 받은 만큼 행복해지는 거야."


아... 얄미워... 입만 살았다고 말하며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남자친구 말이 맞았다.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건, 영국에서 유래된 것인데 신부가 다른 사람에게 행운을 준다고 생각해 하객들이 신부의 옷이나 꽃을 서로 가져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에 신부는 하객들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꽃다발을 던지게 된 것인데 이것이 결혼식에 하나의 이벤트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한다.


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행운을 주는 신부의 부케를 다섯 번이나 받았으니 그만큼 다섯 배로 행복해질 거라고. 볼 때마다 속 터졌던 부케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기로.


언젠가는 나도 부케를 던질 날이 오겠지.

남자친구는 올해 안에 부케를 꼭 던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 올해는 꼭 던질 거야. 꼭."


내 부케를 받을 친구는 누가 될까? 그 친구 역시 내 다섯 배의 행복과 행운을 이어받기를!

작가의 이전글 "내가 몇 번째 여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