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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리 Jan 23. 2021

"내가 몇 번째 여자야?"

여친이 물어보거든 이렇게 대답을

 서른두 살에 결혼하는 게 꿈이었던 난, 서른두 살에 제대로 된 연애를 처음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궁금한 게 생겼다. 나는 저 사람이 첫사랑이나 다름없는데 저 사람은 내가 몇 번째 여자일까? 물어보기도 전에 나는 질투가 났다. 결내가 먼저 밑밥을 깔았다.


 “내 마지막 연애는 6개월 전이었어.”

 왠지 이 나이 먹고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는 얘기는 비정상으로 보일 것 같아 약간 거짓말을 했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6개월 정도 사귄 남자친구와 6개월 전에 헤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나도 연애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22살 때 한 달간 사귀다 가까워지는 게 무서워져 문자로 그만 만나자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던 경험도 있고, 30살 때 22살 때의 벌을 받은 건지 한 달 동안 만나다가 남자친구가 무슨 일에서인지 잠수를 탔던 경험도 있다. 뭔가 이런 부끄러운 경험들은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6개월간 연애를 했었다는 구라를 치고 난 뒤,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전 여친하고 언제쯤 헤어졌어?”

 “움… 헤어졌다 만났다 반복하다가 한 한 달 전?”

 그리고 2년 정도 만났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것도 20대의 어린년과 말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지만 표정관리를 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몇 번째 여자야?”

 “어. 네 번째.”  


 걸려들었어... 남자친구는 내 낚시질에 걸려들었다. 그때 이후부터 나의 괴롭힘은 시작됐다. 데이트는 어디서 했냐, 첫 키스는 어디서 했냐, 왜 헤어졌냐 등 전 여친과의 스토리를 캐내고 싶었다. 남자친구는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하냐 한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여친에 대해 질투를 느끼는 것은 물론, 내가 뭔가 손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남자를 만나보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친구들도 연애를 하기 시작할 때, 전 여친이 굉장히 신경 쓰인다는 말을 했었던 게 기억났다. 그때마다 지나간 과거를 왜 신경 쓰냐며, 괜히 남자친구 괴롭히지 말라고 쿨하게 말했던 나였는데 내가 이렇게 질투를 느낄 줄은 몰랐다. 남자들도 그렇겠지만 여자들은 유난히, 유별나게 남자의 전 여친을 매우 궁금해한다.


 친한 동생한테 전활 걸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남친의 과거 때문에 열이 받아서 미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더 말했다. 여기서 멈추라고. 더 이상 알아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동생 역시 남자친구와 전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서, 괜찮으니 다 얘기해보라고 했었다고 한다. 결국 동생의 남자친구는 전 여친과 잠잔 것까지 이야기했고 첫 경험이라고 하더니 능수능란했다는 둥 디테일한 잠자리 에피소드까지 말해 대판 싸웠다고 한다. 그 후 계속 전 여친과의 잠자리 에피소드가 생각나 열받았던 경험이 있으니 언니는 절대로 남자한테 전 여친과의 스토리에 대해 많은 걸 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아무리 꼬셔도 절대 전 여친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 6개월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없고, 남친이 나의 첫 남자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남자친구는 작전을 바꿨다. 내가 전 여자친구에 대해서 또 슬슬 묻기 시작할 때마다 시치미를 뚝 떼곤 했다.

 “무슨 소리야? 자기가 내 첫 여자인데? 그때 내가 네 번째라고 얘기한 건 썸 탄 여자가 3명이고 자기를 처음으로 사귀었다는 이야기야.”

 뻔뻔하게 웃으며 거짓말을 하는 작전으로 바꾼 것이다.


 과연, 과거를 묻는 여자친구의 질문에 남자친구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남자들 사이에서 국룰이라 통하는 것은

“니가 처음이야.”라는 대답이다.

그러나 이건 여자를 더 환장하게 만든다.


 이번엔 남사친에게 물었다. 자기도 이것 때문에 여자친구들과 싸웠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갈궜고, 숨기면 계속 캐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했던 가장 좋은 방법을 말해줬다.

 “사귄 적은 아홉 번! 근데 결혼 생각을 한 건 니가 처음이야.”

 그리고 이후엔 결혼 생각이 왜 들었는지 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아무리 연애 경험이 화려하더라도 다 용서가 되는 한 마디였다.


 이 말을 듣고 난 남자친구에게 정답을 말해줬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당연한 듯이 말한다.

 “나도 진짜 결혼 생각은 자기가 처음인데?”

 그러면서 그동안 얼마나 이상했던 여자를 만났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지를 말해줬다. 나는  이야기가 진짜일 거라고 믿으면서도, 전 여친에 대해 묻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와 사귄 7년 동안 끊임없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 중이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

"아니 왜 갓난아기 때부터 날 만나지 그랬어."


남자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현재 연인에 대해 집착하고
여자는 현재 남자친구의 과거 연인에 대해 집착한다더니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미 끝난 여자에 대해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평생 남자친구를 괴롭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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