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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뽕잎 Jan 06. 2025

엄마는 아플 수도 없나요

[갓난아기 키우기 +D 96], 육아와 함께 찾아온 조급함에 대해



하루하루 마법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단 하루조차 너무 길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들은 매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가기 때문이고, 어른이 된 후에는 시간이 쏜살같이 느껴지는 것은 시간을 뭉텅이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뭉텅뭉텅 시간을 사니, 큼직한 사건만 기억에 남고 그 외의 시간은 인지되지 못해서 나중에는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꽤 그럴듯한 설명을 예전에 어느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나서의 나는 정말이지 시간을 초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 때문에 단 하루조차도 엄청나게 긴 시간이 되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나는 조급하다


아기 100일 상을 주말에 미리 차린다고 친척들이 처음으로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지역 아이키움 지원소에서 백일상을 한 달 전에 미리 대여해 놓았다, 그걸 찾으러 가야 한다. 백일 떡과 경단을 맞췄다. 그것도 찾으러 가야 한다. 남편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떡과 백일상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대여한 백일상에 들어있는 꽃(조화)이 마음이 안 든다. 너무 허여멀건 하고 특징이 없다. 육아휴직과 함께 내 자리를 정리하면서, 필요할까 싶어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렸던 조화가 떠오른다. 삭막한 회사 분위기를 어떻게든 상쇄하고자 직접 골랐던 알록달록한 꽃들이다. 아직 대청소를 안 했다면 회의실 재활용품 통에 들어있을 것이다. 그걸 가지고 와서 사용하면 적절하겠다 싶었다. 회사가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충분히 갔다 올 만하다. 막 수유를 마친 터라 아이를 남편에게 건네고 서둘러 겉옷을 입었다. "얼른 다녀올게" 하며 급히 나서는 찰나, 오른쪽 옷소매가 현관문 손잡이에 끼임과 동시에 몸은 속도감 있게 밖으로 나가려는 반동으로 인해 손등이 손잡이에 박히면서 우지직 소리가 났다. "악!" 나의 외마디 비명에 분유 보충을 하고 있던 남편이 "왜! 무슨 일이야!"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먹이고 있어 일어나 나와 보지는 못한다.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얼른 왼손으로 오른 손등을 감싸며 다시 집을 나선다. 여전히 발걸음은 조급하다. 손등의 욱신거림이 서서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혼잣말이 나왔다. "그렇게 급할 필요가 없었는데. 너, 뭐 하는 거니.." 마음속에 나의 조급함에 대한 뚜렷한 깨달음과 자책감, 반성, 그리고 이렇게까지 조급하게 살고 있다는 연민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육아를 한다고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없는데. 그렇지만 여하튼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겨 먹었다.



회사에 가보니 역시 재활용품 통에 조화가 그대로 있다. 아, 다행이다. 이걸 쓰면 적절하겠어. 손등의 욱신거림이 조금 더 심해져 있다. 손목까지 아파오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꾸겨서 넣었던 조화의 줄기를 잡고 다시 펴본다. 내가 없는 동안 회사는 낯선 공간으로 변해 있다. 내 자리는 정리되어 내 후임이 사용하게끔 되어있었는데, 잠시 자리를 살펴보니 아예 직원들 자리 배치가 전면 바뀌어 있다. 내가 직접 인테리어 하고 꾸몄던 상담실의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바닥에 내려와 있다. 아아~ 생경한 느낌. 그리고선 다시 서둘러 집으로 나선다. 손등의 욱신거림은 조금 더 심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기는 남편에게 안겨 놀고 있었다. 조화를 수납장 위에 내려놓고 나서 남편에게 "아까 나가면서 손을 접질렸어"라고 말했더니, 평소에도 질병이나 통증, 아픔에 나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편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어우, 어떡해!"라고 반쯤은 걱정, 반쯤은 화내는 표정을 짓는다. "정형외과 다녀와야겠네" 아, 그 생각을 못했다. 나는 임신 전에도 후에도 언제나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가는 스타일이었다(웬만한 감기는 그냥 쉬면 낫는다, 두통은 내버려 두면 잦아든다, 장염은 식사를 중단하고 쉬면 낫는다 스타일).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병원에 다녀오는 게 나중을 위해 좋을 것 같았다. 혹시라도 뼈에 금이라도 갔으면 앞으로 아기를 안아 올릴 수 없을 테고, 집안일에도 제약이 있을 테니 확실히 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두어 시간 후면 이모네 가족이 올 텐데. 그전에 얼른 진료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집을 나섰다.






토요일 열 시 경의 연합의원은 바글바글했다. 특히 지금 엄청나게 유행이라는 독감으로 인해 마스크를 쓴 각종 어두컴컴한 빛깔의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대기인 30명... 그래도 관성의 법칙으로 일단 등록부터 해보자, 하고 컴퓨터 등록 화면이 지시하는 대로 나의 인적 사항을 손가락으로 툭툭 클릭해 내려갔다. 잠시, 판단을 내리기 앞서 일단 등록은 해놓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이 행위를 멈추고 다시 집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존재했다. ‘등록해 놓고 나서 잠시 숙고한 뒤 집으로 돌아갈지 판단해야지.’

   그런데 등록을 마치자마자 원무과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네, 아침에 손등을 찧어서 접질린 것 같아요. 주민등록증 주세요. 어, 지갑을 분명히 챙겼는데, 보이지 않는다. "지갑을 안 가지고 왔나 봐요"라고 하며 마음속으로는 '지갑이 없으니 어차피 집으로 가야 하겠네. 잘됐어'라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런데 간호사가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어요. 여기 큐알 코드 찍고 들어가셔서 인증한 뒤에 갖고 오세요"라고 역시 IT 선진국다운 서비스에 대한 안내를 경쾌한 발성으로 해준다. '아...' 나는 시키는 대로 한다. 역시 IT 선진국답게 온라인 업무가 신속하고 원활하다. 인증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마음속에 '등록은 했지만 나는 돌아가야 해'라는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이번에도 간호사가 개입했다. "먼저 X-Ray 찍으실래요? 저쪽 가시면 바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라고 나를 조종한다. 병원에 바글바글한 대기인들은 거의 다 유행을 타는 사람들이었다. 독감 유행. 손을 접지르는 것은 유행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정형외과 쪽 X-ray에 대한 수요는 두어 명 밖에 없었다. 우측 촬영실 쪽으로 향했다. 우중충한 환자들이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앉아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 기다리니 촬영사(직업명이 있을 터인데, 잘 모르겠다)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아까 들은 꼭 같은 문구로 내게 물어본다. 네, 아침에 손등을 찧어서 접질린 것 같아요,라고 나도 똑같이 대답한다. 어쩌다가 그러셨어요, 아, 급히 집을 나서다 소매가 현관문 손잡이에 걸려서요... 촬영사가 내 손등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아, 조금 부어 있네요,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라고 한다. 그러면서 직업 정신을 발휘해 오른손 촬영을 안내해 준다. 웃옷을 벗어주세요. 네? 저 손등인데... 촬영할 때 움직여야 해서요.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아, 네... 손을 쫙 편 버전, 집게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붙이고 손등을 살짝 틀어 나머지 손가락 세 개를 바닥에 붙인 버전, 두 번째 버전에서  엄지 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만 살짝 뗀 버전으로 세 장을 촬영했다. "다 되셨습니다"



다시 중앙 홀로 나와보니 사람이 더 늘었다. 커다란 TV 화면 속의 대기인 명단 속에서 내 이름은 세 번째 페이지 중반쯤에 위치해 있었다. 촬영한 게 아깝긴 하지만 그래,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어,라고 마음먹은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내 안에는 ‘지금의 나는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인이 서른 명이 넘어", "그럼 그냥 집으로 와. 이모님 벌써 오셨어." 앗, 이모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마음이 더 바빠진다. 왜 하필 손님 오는 날, 바로 직전에 나는 손을 접질린 것인가. 액땜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갔다.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나서, 다시 병원을 둘러보았다. 생경한 느낌, 스산한 느낌. 그런데, 오히려 남편이 "그냥 와"라고 한 것이 나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손등이 아프다. 접질렸을 수도 있어. 그런데 X-ray까지 찍어놓고 그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에서 조금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인 것인가? 나 자신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아까 전에도 내게 했듯이 비슷한 말을 건네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집에 가야 한다는 마음과 병원에서 결과를 들어야 한다는 두 마음이 싸운다.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간호사에게 물었다. "죄송한데, 제가 급하게 나와서요. 지금 대기인이 너무 많아서 제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땡땡땡이요" "별로 없는데요.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아, 이렇게도 시각이 다를 수 있구나. 간호사에게는 내 순서가 앞에 대기인이 별로 없는 편이고, 40분 정도는 짧은 시간이구나 싶었다. "제가 급하게 나와서, 그럼 40분 정도 뒤에 오면 되는 거죠?" "아뇨, 그냥 있으시는 게 나아요. 별로 안 걸리니 있으세요"


이쯤 되니 나는 마음을 정해야 한다. 집까지 갔다 온다고 해 보았자 집에서 있는 시간은 십 여분일 테고, 그 사이 내 차례가 혹시나 지나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내가 지금 아픈데, 내가 없다고 우리 집이 망하는 게 아닌데, 친척들을 대접하고 백일상차림을 안내하는 일을 나 밖에는 할 수 없나?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자기야. 나 병원에 있다가 결과 듣고 갈게. 결과만 전화로 알려줄 수는 없대. 40분에서 한 시간 걸린다는데, 그 정도도 할애 못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자기 없이 지휘할 수 없잖아… 알았어. 애기는 지금 순하게 잘 놀고 있어"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화면에서 대기자 수가 줄어들면서 내 이름이 리스트 위로 올라가는 속도를 조급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 조급함을 명확히 인지하면서, 나는 시간을 참아냈다. 대기자 명단을 바라본다고 빨리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마치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때가 되면 온다. 그 생각에 미치자 토요일 아침,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고 병원에 온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회색과 검은색 또는 갈색의 겨울 겉옷들.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거의 다 채도가 낮은 색을 입고 있었기에 그중 하얀색 후리스를 입은 안경 낀 젊은이가 상큼해 보일 정도였다.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마스크 안에서 자유롭게 기침과 재채기를 하며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기인 중에는 아이도 세명 정도 섞여 있었다. 노인은 의외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100일 가까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사회적인 공간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렀던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그렇게 석 달을 살았던 작고 좁은 아기와의 세계가 새삼 느껴졌다.



길고 긴 기다림. 드디어 내 앞의 대기인이 세명으로 줄었다. 간호사가 나를 다시 호명했다."땡땡땡 님, 2 진료실 앞 의자에서 대기해 주세요"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떻대?" "이제 내 앞에 세명 있어" "응. 올 때 급하지 않게 조심히 와. 또 빨리 온다고 서두를까 봐" "알았어" 갑자기 나 없이 손님맞이를 해야 하고 100일 행사 준비며 소고기 뭇국이며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나에게 그냥 돌아오라던 40분 전의 "불안해서 조급했던 남편"은 이제 "나를 생각하는 여유로운 남편"으로 변해 있었다. 내 앞의 세 명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조급함은 여전했지만, 대기인이 줄어드는 꼭 그만큼 비례해서 내 마음도 편해져 갔다.



의사 선생님은 주말 아침에 이렇게 많은 환자를 신속히 진찰하고 안내하면서도 친절했다. 세 번째 듣는 똑같은 질문.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아, 네. 아침에 손을 접질려서요." 세 번째 똑같은 대답.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내게 답을 줄 수 있는(괜찮다, 안 괜찮다)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의사는 X-ray 상으로는 이상이 없다면서도 신중하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어쩌다 그러셨어요." 또 똑같은 대답. "여기가 살짝 부어있네요. 자, 여기 누르면 아픈가요?" "아뇨" "여기는요?" "안 아파요" "여기는요?" "아! 아파요" "아 여기가 살짝 아프군요. 여기가 4번 뼈예요. 여기 끝에서부터 이제 손목뼈가 시작돼요. 촬영 상으로는 손목뼈는 이상이 없네요. 인대도 늘어난 것 같지 않고.. 여기는 어때요?" "여기도 살짝 아파요. 근데 아까 거기가 더 아파요" "여기는 5번이에요. 4번이랑 5번 끝 부분이 살짝 아픈 정도네요. X-ray상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초음파로 한번 더 확인합시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진료실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초음파실로 안내했다.



"자, 조금 차가워요~" 선생님은 손등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기기를 대었다. 내 손가락과 이어지는 손등의 뼈를 펌핑하듯 눌러가며 설명을 더 해주셨다. "자, 여기 누르면 여기가 움직여요. 보이죠? 이상은 없네요. 인대도 손상되지 않은 것 같고요. 뼈가 작동을 잘하고 있어요" "네~ 그렇네요" "4번 뼈, 5번 뼈..." 선생님은 이제 스스로도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된 듯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 나에게 "최후 확답"을 해주었다.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 "이상은 없어 보여요. 피 고임도 없고, 통증이 조금 있는 거는 부어서 그런 것 같고요. 처방을 따로 할 것은 없고 돌아가셔서 일주일 동안은 아까 그 부분이 아픈 행위는 하지 마세요. 일주일 동안요. 그럼 나을 겁니다" "네, 찜질 같은 게 도움이 되나요?" "냉찜질이요" "네, 냉찜질이요" 나는, 괜찮은 것이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나는 진단된 손등과 함께 왠지 모르지만 치유된 마음을 느꼈다. 의사 선생님이 할애해 준 6분 여의 시간이 진단을 받기 위해 기다린 50분 여의시간을 포근히 덮는 느낌이었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왜 괜찮은 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 나의 안위를 위해 한 시간의 시간을 보냈고, 나의 안위는 괜찮으며,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고 친절했다. 남편과 아기, 그리고 친척들은 저마다의 할 일을 하며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기다려서 진료를 보기를 잘했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 보니 이모는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있었고, 아기는 역류방지쿠션 위에 누워 갑자기 변화된 환경을 순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이모부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친척동생은 멀뚱히 서 있었고, 남편은 부엌 쪽에서 이모를 도우려는, 도와야 한다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친척동생의 남편과 5살 된 아들은 잠시 편의점에 갔다고 했다. 내가 없어도 이 모든 건 돌아가고 있었다. 별일 없었다. 5분, 10분, 아니 15분쯤 더 늦게 왔어도 별일 없었을 것이다.



아기의 100일 잔치 준비는 신속하게, 그렇지만 꽤나 화려하게(회사에서 가져온 조화와 그 과정에서 짓눌린 손등도 한 역할을 했을만큼) 잘 치러졌다. 이모네는 식구 모두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상차림과 설거지, 이후 아기의 100일 상차림과 꾸밈과 촬영, 이후 대여용품 정리까지 속전속결로 해내고는 이제 가본다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기는 때마침 피곤했는지, 혹은 헤어지기가 싫었는지 칭얼대며 투정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아기를 돌보느라 나는 이모네를 천천히 배웅하고 서로 따뜻하게 포옹하지는 못한 채 안녕 안녕 손을 흔들어야 했다. 오늘의 만남과 헤어짐은 이렇게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없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역시 가족 아니랄까 봐. 빠르고, 효율적이고, 일을 쳐내고는 담백하게 사라지는군.





나의 조급함은 언제, 어디에서 생겨났고 무엇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을까? 내가 이완과 휴식의 느낌을 가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있긴 있다. 아기를 배불리 먹이고 나서 소파에 앉은 채 아기를 안고 아기가 베개에 발차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나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루종일 육아를 하고 나서 오후 네시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나도 피곤하고 졸려 아기를 너무너무 재우고 싶어 진다. 밤 여덟 시, 아기에게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난 뒤에는 나 역시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문제는 그 밖의 시간에 가동되는 나의 모터. 내 몸의 신경생리는 아기를 낳고 난 뒤 매 순간 매 초를 사는 파워 모터로 변신했다. 에너지가 풀 가동되어 웽웽 돌아가니, 그 가속력으로 급하고 빠르고 조급한데다, 그 속도가 몸에 배어버렸다. 그래 서였나보다. 잠을 자지 않아도 이전보다 피곤함을 덜 느끼고, 동시에 많은 일을 해내며, 밤중 수유를 한 뒤에는 다시 잠드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아기를 낳고나서 머리 말리는 시간이 아까워 산후도우미 찬스로 한시간 정도 외출해서 단발로 싹둑 자르고 왔다. 그때 이후로 늘 내 머리는 끈 하나로 질끈 묶인 스타일이고, 매일 매일 머리를 감던 내가 이제는 이틀에 한번만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고 나서도 전체를 천천히 말리지 못하고 드라이기로 두피만 말린다. 머리를 말리며 때로는 글감을 정리한다. 지금 이 글을 적어 내려 가는 새벽 시간도 아기가 깨기 전에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과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위가 온몸에 스며있어 모터는 여전히 빠르고 머리는 훽훽 돌아가고 손가락은 그 속도를 따라간다.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다. 그러한 나의 세계에서 시간이란 상대적으로 느리게 느리게 흐른다. 이런 내가 정말 괜찮은 게 맞나, 싶다. 손등은 괜찮다고 진단 내려졌는데. 내 속도와 조급함도 누가 괜찮다고, 진단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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