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 키우기 +D 94
3개월이 이렇게나 긴 시간이었던가. 오늘도 잠에 깊이 들지 못하고 계속 일어나 어둠 속을 서성였다. 한 팟캐스트에서 아기를 키우는 100일간의 시기를 "짐승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자는 새벽의 어둠 속을 서성이는(서성인다고 표현하지만 아주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수면등 켜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손을 씻고 아기를 깨우고, 먹이고 아기가 먹다 자면 갖은 노력으로 깨우고, 만약 분유를 먹인다면 분유를 떠서 물 온도 맞추고 쉐킷쉐킷 골고루 잘 섞이게 흔들어주고 먹이고 나서 설거지까지) 엄마 또는 아빠의 모습은 잘 씻지도 못한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젖가슴을 풀어헤친 채 반쯤은 무의식인 "짐승"같은 모습이 맞다.
처음 한 달간의 산욕기에는 아기가 너무 놀라워서, 아기가 너무 예뻐서, 그리고 아기가 너무너무 너무나도 취약해서 그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었고 이상하리만치 호르몬도 도와주는 듯했다. 그다음 달부터는 부족한 잠과 아직은 알 수 없는 아기의 울음,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통제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고난과도 같이 긴 고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석 달째. 이러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버려 한밤중에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깨고 아기를 먹이고 나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지난 글에 썼듯이 92일의 기적, 93일의 기적에 이어 오늘은 94일의 기적도 일어났다. 기적이라 함은 불치병이 낫는 것처럼 도무지 예상치 못했지만 너무나도 바라마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일컫는데, 왜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라고 하는지 지금의 나는 정말 잘 알겠다. 어제 처음으로 아기가 네 시간 반을 자서 수유 텀이 다섯 시간이 되었다. 내 앞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믿기지 않고, 너무나도 바라왔던 일이지만 실감이 안나는 이 기적.
이제 100일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아기는 자연 그대로이다. 스스로 조절 능력이 없어 모든 것을 부모가 조절해줘야 하는 생명체. 가장 기본적인 감각기관의 조율(예를 들면 눈과 손의 협응능력) 뿐만 아니라 식욕조절, 수면조절, 오줌조절, 똥조절, 체온조절, 감정조절까지. 100일간 알게 된 사실은 아기가 완전히 조절제로 상태에서 하루씩 조절능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도 조금은 참을 수 있게 되니 밤 잠이 늘어나고, 잠에 드는 것을 엄청난 공포로 여기듯 울어재끼던 단계에서 "잠"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지 이전처럼 공포스럽게 울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발달이지만 부모에게는 동시에 기적과 같은 일이 된다.
어제저녁, 아기는 신생아시절에 울던 울음을 소환해서 몇 시간 동안 울어재꼈다. 그 울음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설움, 분노를 자신이 죄다 짊어진 듯한 느낌의 울음이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엄마를 너무나 지쳐버리게 했던 울음. 신생아 시절의 그 울음을 몇 달 만에 다시 우는 아기를 보며 '퇴행인가?',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그러면서 아기 신생아 시절에 어떤 분이 말씀해 주셨던 것을 떠올렸다. '아기가 갑자기 떼를 심하게 쓰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신호이다'. 웽웽웽 울고 있는 아기를 보며 그분의 말씀을 성경처럼 믿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아기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다 잠든 아기는 아주 깊이 잠들었고, 밤중 수유 텀이 길어진 데다, 일어나서는 엄마 젖을 너무 잘 빨아주는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아기는 젖을 먹지만 엄마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젖을 물리고 나서 하는 일이란, 아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 감촉을 느끼거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일이다. 오늘은 어둠 속에서 젖을 빨고 있는 아기와 멍하니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지면서 지금 우리 모녀가 함께 하고 있는 이 행위가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유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뒤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 곳곳에서 진행되어 왔을 "젖 주는 행위". 그토록 자연스러운 행위가 믿기지 않게 이상하고 놀랍게 느껴진 것이다.
새벽 시간에는 특히 아기가 엄마 젖을 빨면 젖으로 가득 차 있던 가슴에서 모유가 빠져나가면서 뇌에 신호를 준다. 프로락틴 호르몬이 말한다, "모유를 더 생성하라!" 그래서 아기가 젖을 빨면 빨수록 엄마 젖은 또 가득 차게 된다. 출산을 했던 병원과 산후조리원, 유튜브 채널에서 수십 번은 들었던 말이지만 이 시스템이 정말로 이 어둠 속에서 지금 나에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 내 눈앞에 엄연히 숨쉬고 있는 아기도 놀라웠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구상에 없었던 존재이다. 그 존재가 콩알만 하다가 조금씩 커져서는 힘들게 엄마 뱃속을 빠져나와 빼액 빼액 울다가, 어느 순간 엄마와 눈을 맞추고 알아보더니 지금은 엄마 젖을 쭈욱 쭈욱 빨고 있는 것이다. 정말 기묘하고 놀랍지 않은가.
<출산 직후 첫 젖을 물리던 순간---이때는 몰랐다. 길고 긴 분투가 시작됨을...>
젖을 준다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모유수유가 유별난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말할 수 있지만 출산 초반의 모유수유는 나에게 출산 과정보다도 더 힘겨운 싸움이었다. 어떤 이는 출산 다음날부터 젖이 펑펑 나온다는데, 나는 자연분만이었음에도 너무 천천히 젖이 돌기 시작했다. 조리원에 있을 때도 모유 양이 도무지 늘지를 않은 데다 젖꼭지도 아기가 빨기 힘들게 생겨서 젖을 "물리는" 일 조차 힘겨웠다. 아기는 배고파서 빼액 빼액 울고, 조리원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모유수유보다는 아기 몸무게 늘리는 일이 과업이다 보니(보건소에 보고한다고 한다), 밤중 수유콜을 지양하는 분위기였다. 낮 시간에도 아기가 울면 빨리 젖병을 물리는 일이 익숙하다 보니 내가 그렇게 따로 수유콜을 부탁했음에도 아기는 어느새 젖병과 분유에 익숙해졌고, 젖양과 젖꼭지 등 모든 부분에서 모유수유에 불리했던 나는 계속해서 고군분투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세상에, 이렇게 포유류로서 이어져내려 온 유서 깊은 자연의 행위가 나를 둘러싼 "문화"와 싸우는 투쟁의 행위가 되다니!).
조리원에 있었던 어느 날(아기 생후 열흘 정도 되었을까)에는 쭈쭈 젖꼭지를 차고 애써서 물려가며 모유 한 방울도 더 먹이려고 쭈쭈 젖꼭지에 마지막 모유를 담아 아기에게 먹이려다, 아기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수유쿠션 위로 쏟아져버렸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렇게 "주고 싶은데", 넉넉히 줄 수가 없고, 내게 있는 이 작은 것조차 아기가 거부하는 느낌이, 나의 원가족과 부모님과 관련한 깊은 물질적 결핍에 대한 상처를 건드렸던 것이다. 자식에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그렇지만 내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많이 줄 수 없는 상황, 그런데 내가 주려는 작은 그마저도 자식이 거부하는 처절한 마음... 당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정적으로 널뛰기를 하고 있을 때라 더욱 서러웠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는 쭈쭈 젖꼭지를 졸업하고 유두보호기로 갈아탔다. 확실히 아기도 힘이 세지고 가슴 상태도 모유수유에 맞춰지고 있어서 아기가 젖가슴을 거부하는 일은 없어졌지만(이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전히 젖 양이 많지는 않았다. 분유로 보충을 하고 있었지만 육아 공부가 충분치 않아 분유를 적게 주었는지 아기가 포동포동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산후도우미 분이 집에 오셨는데, 내 가슴을 보고 "빈젖"이라며 아기를 굶긴다고 말했다. 그 말 정도는 넘길 수 있었는데, 그 도우미 분이 내 아기가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급격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상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눈물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지만(자신의 첫째 딸이 분유를 거부해서 모유만 먹였는데 잘 안 자랐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이후 자라면서도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반응을 보고 나니 나 역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았다. 급히 도우미를 교체하고 새로운 분이 오게 되었다.
새로운 분은 20년 넘는 베테랑이셨는데, 딸 둘이 상반된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경험이 풍부했다. 첫째 딸은 모유 양이 너무 많아서 넘쳤지만 젖꼭지가 수유하기 힘든 형태여서 젖몸살로 힘들어했고, 몇 년이 지나 유방암에 걸렸다고 했다. 둘째 딸은 젖꼭지는 적절한 형태였지만 모유 양이 많지 않아 결국 완분으로 넘어갔다고 하면서 나보고 너무 모유수유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분의 소개로 출장 가슴 마사지의 도움을 받아 여러 조언을 들었는데, 정말로 모유 양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 엄마가 잘 자고 이완을 잘해야 모유 양이 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아하!" 하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 같다.
나는 각성이 잘 되고 이완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늘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엄청난 속도로 일처리를 해서 느릿느릿하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별로 권장할만 하지 않은, 그러나 한국 현대 사회에서는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만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새롭게 깨달아졌다. 나 자신을 좀 더 풀어주고 이완하지 못하니, 모유가 늘지 못할 수밖에! 이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과 지금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면서 모유수유를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모유가 나올 때까지는 간식처럼 먹여보자고 한 것이 이제 94일 째다. 마음이 편해지니 오히려 모유 양이 늘어서 지금은 분유보다 모유를 더 많이 먹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며 지난 100일 동안 있었던 모유수유 분투기를 돌이켜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모유수유는 내게 좌절감, 욕구불만, 수치심, 미안함, 죄스러움과 동시에 따스함, 자랑스러움, 감사함, 뿌듯함, 사랑의 느낌을 모두 주었다. 점점 부정적인 감정에서 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고, 이제 아기에게 넘쳐나지는 않지만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기는 모유를 정말 많이 먹이기 시작한 뒤부터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를 보면 아주 예쁜 미소를 짓는 순한 아기가 되었다. 강성 울음도 그즈음부터 거의 없어졌던 것 같다. 100일 이후 단유를 할지 고민을 했지만, 내 아기의 성향이 정서적 애착을 너무나 필요로 하는 기질인 것 같은 데다 갑자기 단유 하는 것도 억지스러워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모유가 나올 때까지 계속 먹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정되지 않을까. 모유 양이 줄어들고 자연 단유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아기가 분유나 모유 중 하나를 선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간추려서 적었음에도 젖 주는 행위와 얽힌 94일간의 이야기는 길고 길었다. 가장 자연스럽고 유서 깊은 행위가 어느 순간 가장 기묘하게 느껴지고,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의 발달이 너무나도 큰 기적처럼 느껴지니, 어느새 신을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이는 누구인가. 이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낸 우주에 경탄을 보내본다. 그리고 양이 많지 않다고 쓸모없다고 미워했던 내 가슴에게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해본다. 나는 이제 잃어버렸던 내 몸의 감각을 다시 되찾으려 한다. "엄마"의 몸은, 젖가슴은 수유 기능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