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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Dec 28. 2019

모두가 인정받는 나라

의무투표제 도입의 필요성과 효용성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란이다. 표를 받은 만큼의 자리를 나누는 제도인 비례대표제는 말로만 들었을  매우 합리적인  같은데,  비례성을 늘리는 것이 논란이 될까? 비례의석을 고작 서른  정도 늘리는 것에도 단식과 투쟁과 고발이 난무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의석수를 늘리는데 실패했다. 분명 지금 제도가 문제가 있는  같은데,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그리고 이처럼 갈등만 난무하는 정치환경 속에서 뭐라도 바뀔  있을지....


그럼에도 우리는 더 나은 이상향을 그려야 한다. 모두가 더 나은 곳을 그릴 때, 실제로 조금씩 우리 사회는 진일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선거제도를 그려야 할까? 시민으로서 우리가 선거에 대한 어떤 이상향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분명 더 높은 비례성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실제로 비례성을 높이면 단순히 비례성 만 높아지는 것이 아닌 투표율도 함께 올라간다고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더 직접적으로 대표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이다. 하지만 비례성의 증가만으로 가져올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비례성을 높이는 것 만으로는 현재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성, 정치 엘리트들의 현저히 떨어지는 민감성, 그리고 정치 정당의 불만족스러운 개혁 등의 문제를 충분히 개선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이 국회를 통과하기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선거 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국민들이 선거 제도의 영향을 더 받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비례대표제와 별개로 제안되는 제도가 바로 의무투표제다.


의무투표제의 필요성과 효용성

의무투표제는 말 그대로 투표를 시민의 의무로 설정하는 제도다. 다시 말하자면 의무투표제 하에서 시민권을 지닌 모든 사람은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참여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정치철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 교수인 에밀리 채프먼(Emilee Booth Chapman)은 사람들이 의무투표제에 찬성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1]


(1) 대표성

민주사회에서 국회란 근본적으로 시민을 대표하는 대의 기관이다. 그리고 "대표한다"라는 말은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실천함으로써 도구적(instrumental)으로 국민을 대표한다는 것과 국민의 다양성을 의회 집단 구성에 반영함으로써 명목적(descriptive)으로 국민을 대표한다는 것 모두를 뜻한다. 물론 현재 의회는 도구적 대표성도 현재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국회가 국민을 명목적으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제도에 의하면 30%를 득표한 정당이 의회에서 40, 50%의 의석을 가져가기도 한다. 반면 10%의 득표에도 불구하고 의석은 5%만 가져가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유권자는 누가 되던 내가 원하는 공약을 실천해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X%가 뽑은 정당이 국회에서 X%의 의석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비례성이 국민 전체의 집단 의지(혹은 일반 의지)를 국회에서 가장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 민감성/평등성

명목적 대표성보다는 간접적인 효과이긴 하지만 의무투표제는 임금 불평등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명목적 대표성과 연결이 된다. 기존 제도에서는 비교적 투표율이 낮았던 저소득층을 비롯한 소수계층의 표심이 약했다. 하지만 이들이 강제로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면 이들의 목소리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표의 집결이 곧 힘이다 보니 정치인들은 표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표심이 가는 곳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경제 계층의 이익이 골고루 대표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보니 결국 국가 전체의 경제적 평등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선거제도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표를 동원할 수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표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 자본이 더 많이 집약되어있는 집단이 당연히 더 "좋은" 선거운동을 하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투표를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면 당연히 더 많은 이들의 이익계산이 고려되어야 하고 자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경제적 약자들의 반자본적 연대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보니 해당 연대의 눈치를 보게 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경제적 평등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정당성

A 지역구의 100,000명 유권자 중 50%가 투표장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제도에서 후보자 1이 35%의 득표율로 32%의 표를 받은 후보자 2를 제치고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후보자 1은 지역 유권자 전체의 17.5%만의 지지를 받고 그 지역의 100,000 전체를 다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후보자 1은 법정 정당성을 지닌다. 법적으로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국회의원이 과연 명목적 정당성을 지닐까? 더욱 강력한 명목적 정당성을 지니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가 선거의 비례성을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다. 의무투표제는 후자의 방법을 위한 제도다. 100,000명 유권자가 모두 투표장에 나와서 똑같이 35% 대 32%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후보자 1은 실제로 35%의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35%도 아쉽긴 하지만,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 개편이 불가능하다면 이거라도 어딘가?


(4) 박애성

투표했으니 됐다? 어쩌면 의무적으로 투표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정신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무투표제 하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았고 투표의 효용에 대한 기대감은 더 낮았으며, 이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는 등 직접적인 민주적 기재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시민들의 정치적 민감도는 더욱 높아지고 반면 "투표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라는 인식은 오히려 사라진다는 것이다. 채프먼은 나아가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투표는 국가적 축제로서의 강력한 상징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전 국민의 참여가 선거를 "일상을 벗어나 정치권을 향해 모든 시민의 동등한 권위를 피력하는 민주적 광경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 설명한다.

When characterized by approximately universal turnout, elections interrupt the ordinary, delegated business of government with extraordinary spectacles of democracy that command the attention of the general public and manifest the equal political authority of all citizens (Chapman 2019, 103).



반면 채프먼은 의무투표제에 반대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1) 값싼 투표권

어떤 이들은 의무투표제의 시행이 투표권의 가치를 갉아먹는다고 주장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투표장에 가서 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행위와 국가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서 아무나 찍고 나오는 행위의 가치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야 말로 투표권의 가치 그 자체를 해치는 주장이라고 채프먼은 설명한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 투표장에 나갔는지"가 투표의 가치를 바꾼다면 1인 1표라는 현재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질질 끌려 나가던 자발적으로 나가던 시민의 표는 모두 동등한 권위를 지닌다. 투표하기도 전에 제도가 먼저 시민들의 판단력과 의지를 인위적으로 재단해서야 되겠는가?


(2) 자유 침해

어떤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채프먼은 정부가 시민에게 투표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그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다. 눈앞의 자유만을 생각한다면 투표하지 않을 자유도 개인의 자유 그 자체로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자유, 즉 공동체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로서의 자유를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무투표제 자체는 개인의 인생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더욱 커지는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강화시켜주는 이유는 개인이 시민으로서 더 많은 정치적 선택권을 지니게 되고 나아가 더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투표할 가능성이 낮은 이들에게 정치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반면 분명 내가 투표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리고 나와 연대를 이룬 나와 비슷한 이들이 함께 모여 정치적 힘을 발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 내 목소리가 정치권에 들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자유를 잃은 것일까 자유를 얻은 것일까? 


이와 연관하여 채프먼은 의무투표제를 현실적으로 더 나은 투표제도로 만들기 위해 투표를 하지 않은 이들에게 가하는 처벌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의 경우 실제로 투표를 하지 않은 이들의 1/4 정도 만이 실제로 벌금을 낸다. 나머지는 정당한 이유를 제공하건, 벌금을 낼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피력하던 다양한 방식으로 벌금을 면제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가 아주 높은 수준의 투표율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이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반자유적 의무감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닌 국민의 의무로서 존재하는 투표라는 제도에 내재된 그 의미를 진정으로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채프먼은 말하고 있다. 


(3) 무능한 시민

더 많은 무식하고 정치에 관심 없는 이들을 투표장으로 끌고 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마음을 품은 자들은 무능한 자들과 무관심한 자들이 하는 투표가 결국 국회의 대표성을 더욱 떨어뜨릴 거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결국 "엘리트적 민주주의"의 관점을 피력하는 것이다. 모르는 자들이 간섭해서 제도를 더욱 망칠 것이라는 믿음, 이것은 결국 엘리트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채프먼은 오히려 의무투표제가 무지하고 무관심한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질 동기를 제공할 것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그녀는 의무투표제가 정보의 흐름 자체를 더욱 유동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주장한다. 실제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의무투표제가 교육적인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 제도에서 투표하지 않았을 이들에게 실제로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는 것도 밝혀졌다.  


 

보라색 = 의무투표제 시행 국가


나가며


의무투표제가 아주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는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비례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할 수 없다면 의무투표제는 분명 아주 유용한 대안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모두가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나라다. 모든 시민이 스스로 국가의 주인 됨을 경험하고 공표하는 것, 이것이 시민의 존엄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의무투표제는 우리 모두가 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더욱 강력하게 경험하게, 그리고 공표하게 해 줄 것이다. 






[1] Chapman, Emilee Booth. 2019. "The Distinctive Value of Elections and the Case for Compulsory Voting."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63 (1): 1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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