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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Jun 07. 2024

학교의 갈등,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이거 학폭이야. 너 신고할 거야."

"이거 교권 침해야. 너 신고할 거다."

"이거 아동학대예요. 선생님 신고할 거예요."

"이거 갑질이예요. 저 신고할 거예요."


요즘의 학교는 그야말로 '신고의 일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고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 대화의 끝이 "너 신고할 거야"로 마침표가 찍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생끼리의 사소한 다툼도 학폭으로 신고하고, 이것이 다시 부모 간의 분쟁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뒷담화하고 째려보는 것도 종종 학폭 신고로 이어진다.

학폭보다는 덜하지만, 교육활동 침해 신고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교육활동 침해 신고는 도저히 지도가 불가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지만, 가끔은 수업 시간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학생을 바로 신고하는 선생님도 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가 되어서 이젠 잦아들 법도 한데, 오히려 체감상 더 많아지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 아이를 혼냈다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따뜻하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물론 교원지위법 개정으로 지금은 교사가 아동학대로 피소되어도 바로 직위해제가 되진 않고 사안에 대한 교육감의 의견서도 제출되지만, 그럼에도 신고가 된 이상 경찰 조사를 받는 등의 절차는 여전히 거쳐야 한다. 그야말로 교사에겐 극한의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는 시간일 것이다.

더욱 씁쓸한 건 아동학대로 피소된 교사 중에는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열정과 애정이 많기 때문에 때로는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훈계도 할텐데, 그 결과가 아동학대 신고로 돌아오니 결국 애정 없이 관심 끊고 딱 기본만(?) 해야 한다는 자조섞인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갑질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진작에 갑질 신고를 당했어야 할 상사도 있지만, 가끔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복무를 지적하는 관리자나 업무 갈등을 겪는 상사를 갑질로 신고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 그뿐일까. 공무직과 교직원, 교사와 행정실, 교사와 교사, 학부모와 학부모 등 학교의 모든 구성원은 그 대상을 막론하고 저마다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이런 갈등은 단지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모든 직업군, 모든 조직에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학교에서의 갈등을 당사자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신고를 통해 타자로부터 내가 옳음을, 상대가 틀림을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징계 조치가 내려지기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와의 다툼을 대화로 풀기보다는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걸 선택하고,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마음을 쏟아 가르치고 지도하기보다는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하며,

교사와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오해를 풀기보다는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짜 심각한 학교폭력도 많아졌고 학교폭력의 수위도 높아졌으며, 교육활동 침해의 심각성도, 악성 민원러의 숫자도 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갈등의 해결 방식도 '신고'로 귀결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심지어 학부모나 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엔 어린 학생들조차 갈등이 발생하면 일단 녹음이나 촬영부터 시작하곤 한다. 경찰인 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요즘엔 부모를 신고하는 청소년도 많아졌단다. 진짜 아동학대인 부모도 있지만, 부모가 혼낸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고 하니 이러다가 신고가 갈등 해결의 디폴트값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갈등을 '신고'하고 남에게 '판정'받는 것은 정말 최후의 선택이면 좋겠다. 학교 관리자의 갈등관리 역량이, 학교 구성원의 갈등 중재 역량이 좀 더 강화되어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갈등중재를 배우고 연구하며 학교 관리자나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갈등중재 연수를 계속 기획해보려 하는 이유이다. 부디 친구를 '신고'하기 전에 먼저 친구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학생을 '신고'하기 전에 한번 더 학생을 지도하며(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ㅜㅜ), 교사를 '신고'하기 전에 먼저 가정에서의 양육 방식을 돌아볼 수 있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


문득 이처럼 녹취와 신고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금 두려워진다.

그래도 아직은 공교육의 힘과 학교가 가진 영향력을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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