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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희 Jun 21. 2024

왜 저한테만 그래요?

패드립의 일상화

교권보호위원회에 참석해서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선생님은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교직생활 20여 년 동안 이런 경험은 처음이란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충격과는 별개로 학생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지든 다만 징계가 목적이기보다는 아이가 건강한 가치관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진술을 마쳤다.  


학생 진술 차례가 되어 위원회에 들어온 아이는 교사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시종일관 억울한 표정이었다. 겨우 이정도 일로 여기까지 온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함께 동행한 학부모님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묻는 심의위원의 질문에 아이는 억울함이 잔뜩 묻어있는 어투로 말했다. 


"다른 애들도 다 그런 말 해요. 나만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닌데 왜 저한테만 그래요?"


교실 칠판에 선생님에 대한 성 패드립 낙서를 한 학생에 대한 교권보호위원회 자리였다. 

학생이 낙서를 한 내용은 차마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소리를 내어 사안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민망한 성 패드립이었다. 고작 중학생이 어떻게 이런 용어를 쓸 수 있을까, 설마 이 말의 뜻을 알고 쓴 것일까, 만약 알았다면 대체 어떤 경로로 이런 말들을 알게 되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학생 진술보다 앞서 진행된 교사 진술 시간에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요즘 학교는 그야말로 '성 패드립의 일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아이들 사이에서 성 패드립이 난무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거의 없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사를 향한 성 패드립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끼리 서로 낯뜨거운 성 패드립을 주고 받는 것도 그저 사소한 농담 정도로 여기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걱정이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서 깊은 근심과 고민이 느껴졌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지도하려고 해도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학생보다는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억울해하고 따지고 반감을 갖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교육청의 교권보호위원회까지 온 학생은 이 자리 자체가 주는 엄숙함 덕분에 조금은 긴장했을 테고, 동행한 학부모님도 처음에는 전투력(?)을 장착하고 들어왔지만, 본격적인 심의가 진행되자 비로소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으니 아이가 이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기대를 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교권보호위원회의 목적은 잘못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 학생이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굳이 학교 내에서 조용히(?) 해결하지 않고 교육청까지 사안을 가져와서 적지 않은 행정력을 동원하여 변호사, 경찰, 학부모 등이 참여한 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것은 교사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함이 우선된 목적일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애들도 다 그러는데, 왜 나한테만 뭐라 하냐고 따지는 아이들에게 교권보호위원회라는 다소 엄숙한 자리를 통해 잘못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징계라는 수단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고하며, 이를 계기로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학부모도 아이의 말만 듣지 않고 객관적인 눈으로 상황을 봄으로써 자녀를 훈육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것.

교사 역시 이 기회에 버릇없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는 분노보다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학생이 잘못을 깨닫고 태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교육자로서의 바램을 피력하는 것.

교권보호위원회가 지닌 가장 바람직한 순기능인 이런 부분들이 잘 구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


덧. 

교보위 결과와는 별개로 선생님이 토로하셨던 '학교에서의 성 패드립에 대한 문제의식의 부재, 성 패드립의 일상화'라는 난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이들은 빠르게 변하고 교육 현장은 갈수록 근심이 늘고 있다.  


※ 본 사례는 실제 사례를 각색한 것으로,  실제 발생한 사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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