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서희 Jul 11. 2024

이거 교권 침해예요, 아니예요?

"이거 교권 침해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전화했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신분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어느 선생님의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타깝게도 이런 익명의 선생님들이 언급한 사례들은 교육활동 침해라고 보기에 다소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심의위원도 아닌, 그저 업무 담당자에 불과한 내가 그건 교육활동 침해다 아니다를 판정(?)할 수는 없고 판정해서도 안 된다. 물론 사적인 견해를 묻는다면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기야 하겠지만, 앞뒤 맥락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침해 여부를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들은 뒤, 기본적인 매뉴얼에 근거한 답변을 최대한 친절하게,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게 최선이다.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단정지어 답변했다가는 더 큰 민원이 닥치기 십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명쾌하게 "네. 그건 교육활동 침해가 맞아요. 신고하시면 됩니다."라는 답변을 기대하고 전화한 선생님이라면 나의 원론적인 답변에 벌컥 짜증을 내기 십상이다. 대체 교육청이 하는 게 뭐냐고 따지는 사람도 종종 있다.

우리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교육청까지 가야 하냐고 따지는 학부모와 왜 교권 침해 여부를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냐고, 대체 교육청이 해주는 일이 뭐냐고 따지는 선생님의 전화를 매일 응대하는 건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난 99퍼센트의 학부모와 99퍼센트의 교사와 99퍼센트의 학생은 좋은 학부모, 좋은 교사, 좋은 학생이라고 믿는다. 그들 99%는 교원지위법을 비롯하여 일명 교육 5법이라 불리는 교육 관련 법령의 개정사항과 각 고시의 내용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할 일이 없다. 다만 막상 사안이 닥쳐서 '교육활동 침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법을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작년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교육 5법이 개정되었고 올해 3월 28일자로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육청으로 이관되면서 교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관심과 민감도도 아주 높아졌다. 그만큼 이게 교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신고할 수 있는 사항인지를 확인하려는 문의도 많아졌다. 학교의 말썽꾸러기 학생 사례를 긴 시간에 걸쳐 자세히 이야기하며 이 아이의 행동이 교권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전화도 심심치 않게 온다.


이런 문의 사례 중에 교원지위법과 교육부 지침(매뉴얼)에 근거하여 학생이나 학부모의 행위를 엄밀하게 따져보았을 때 교육활동 침해(교권 침해가 아니라)에 해당되는 경우는 제법 많다.

예컨대 수업시간에 계속 돌아다니거나 떠드는 초등학생에게 선생님이 여러 차례 지적을 했음에도 계속 돌아다니고 떠들어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면 그건 교육활동 침해가 맞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복도를 지나가는 여선생님에게 "선생님, 섹시해요!"라고 말한다면, 이 역시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한다.

하지만 설령 법리적으로 교육활동 침해가 맞다고 해도 이러한 행위가 과연 교육청에 '신고'할 사안인지, 아니면 선생님이 '교육'하고 '지도'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이 아닌 가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즉,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하여 교육청에서 변호사, 경찰, 학부모, 교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로부터 이 행위가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되는지를 심의받아야 할 사안인지, 아니면 중재와 지도가 필요한 사안인지에 대한 교육적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리적 해결과 교육적 해결, 둘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지 단정할 순 없다. 당연히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 고시에 명시된 침해행위 중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교육활동 침해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제2조 제 4호)의 경우,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것” 둘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는 것만으로 교육활동 침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쉽지 않은 문제라는 의미이다. 즉 생활지도에 불응하는 것만으로도 교육활동 침해로 신고할 수 있다 생각하는 선생님도 꽤 있지만, 엄밀히 보자면 단순히 지도에 불응하는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까지 해야 비로소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교육활동 침해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다 보면 거의 매일 신고할까 말까만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이런 침해행위는 교실에서 매일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원지위법의 문구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이게 교육활동 침해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이것이 신고할 사안인지 아니면 교육하고 지도할 사안인지 교사로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겠다.

그래야 진짜 심각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사의 교육횔동을 확실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강력한 심의기구로서의 사회적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회는 언제든 한순간에 교사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란 참 쉽지 않은 직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저한테만 그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