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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파이시너드클럽 Nov 14. 2021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돼."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돼."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 중 최고는 <원스(Once)>이지만, 위 대사가 나온 <비긴 어게인>도 사랑합니다. 물론, <싱 스트리트>도 좋아요, 그냥 다 좋아합니다. 


평소 플레이리스트를 강박적으로 정리하는 편입니다. 사실상 나라는 사람을 투영한다고 할까요. 과거에 좋아했던 음악, 요즘 좋아하는 음악, 이 계절에 듣기 좋은 음악 등 일단 보관함에 때려 넣고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200 종목을 고심하듯 어떤 노래는 제외, 어떤 노래는 신규 편입하는 식으로 관리합니다. 누가 들어도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취향이구나' 느껴질 수 있게 말이죠.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도 늘 궁금합니다. "그 사람을 알게 돼"버릴 찬스니까요. 다른 사람의 차를 타면 대화를 나누다 가도 '네 플레이리스트나 틀어 봐',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합니다.


한편, 인생의 한 구간을 가득 채웠지만, 플레이리스트에 절대 채우지 않는 노래가 있습니다. 대체로 우울증이 심한 시절의 유행가입니다. 듣고 싶어 들었던 게 아닌, 어떻게 해도 듣게 되는 노래들이죠.


1998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만치로 불면증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려 병원에 가기도 했는데요, 뾰족한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밤이 자동재생되는데, 그게 바로 S.E.S의 <느낌>과 g.o.d의 <어머님께>, <서세원 쇼>의 클로징 음악입니다. 후자의 경우, 개그콘서트의 클로징 음악을 나오면 '아, 월요일이구나'라고 인식되는 것처럼 '아, 이제부터 정말 괴로운 싸움의 시작이야'라며 식은땀이 나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잠이 안 오면 넷플릭스, 유튜브로 시간을 지워버리거나 만취해 뻗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때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누워 째깍째깍 시계 소리를 괴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식은땀이 나네요.


2004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우울증이 극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당장 1년 후 수능이라는 큰 벽이 있었고요, 대인기피증이 심해 해가 뜨기 전에 학교에 가고 야자로 해를 밀어내고 귀가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유행한 노래가 바로 에픽하이의 <평화의 날>, 바비킴의 <고래의 꿈>입니다. 일종의 극복되지 않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기분입니다. 심지어 가사 내용이 '평화로워' 더욱 불쾌하달까요. 지금도 두 노래가 나오면 집중력을 잃는 게 사실입니다.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레 그 무력감의 날이 무뎌지긴 했지만, 지금도 좀...


대략 이런 식입니다. 이 리스트를 짤 때 컨셉은 '가을은 짧으니 노래로 기억하자'였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음악은 기억과 감정을 로켓배송합니다. 때문에 음악이 좋기도, 나쁘기도 합니다. 이제는 감정선이 옅어져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배달하는 노래는 많지 않습니다. 취향도 워낙 뚜렷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아무 때나 흘러나오는 노래에 기억이 담기는 경우도 없고요. 이런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무난 떨기엔 최근 평생 플레이리스트에 못 채울 노래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최애 아이즈원의 노래입니다. 바로 <평행우주>라는 곡인데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해체 발표 날의 충격이 고스란히 재생됩니다. 지금도 아프네요. ㅎ


단숨에 울적해졌습니다, 그럼 이만 가을밤 산책에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짜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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