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 목욕탕>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사입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 친구들은 골탕 먹일 생각으로 교복을 숨겼습니다. 체육복 차림으로 울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엄마의 말에 용기를 얻어 투쟁 끝에 교복을 받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마중 나온 엄마에게 말하죠.
"엄마의 유전자가 도와줬어."
영화 <행복 목욕탕>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사입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작위로 배정되는 듯한 가족의 형성 과정에 거부감을 느꼈고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가난이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방을 가져본 적 없는 형편이었으니 더더욱. 그때보다 형편이 나아진 지금도 집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쥐가 들어온 게 아닌가 의심부터 합니다. 그 날섦은 결과적으로 가족을 향한 거겠죠.
어찌 됐건 홀몸이니, 월급이 많건 적건 거기에 맞춰 살면 된다며 커리어에 대한 진지함도 크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얼마 벌 때까지 존버 간다는 식의 목표 의식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오히려 아둥바둥 기를 쓰고 사는 사람을 보면 멋 없다고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2019년 4월 23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요, 아버지의 빈 자리는 책임감으로 채워졌습니다. 누군가는 생계에 대한 책임의 바통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 누군가는 분명 나일 테니 몸이라도 풀어놔야겠죠. 참고로 엄마는 아직도 주에 하루 쉬고 일을 하는데요, 새벽에 나가 저녁에 들어옵니다. 아무리 강한 엄마라도 늙고 병들 날이 올 텐데. 어느덧 육십을 훌쩍 넘겼으니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심지어 몸이 축날 만큼의 노동량이라고요.
남들이 이미 건넌 강을 뒤늦게 건너려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갈 길이 구만리인데 아직 이렇다 할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했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일과 커리어 관리에 제법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반짝이는 사람들과 좋은 기회 덕에 목적지를 향해 꾸역꾸역 노를 젓고 있다는 겁니다. 형편이 전보다 조금은 나아진 것도 사실이고요. 개인주의적 성향을 고집했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다니 염치 내려놓고, 대놓고 내비게이션을 찍어 볼게요. 이른 시일 내에 외제 차, 이왕이면 독일 차로 엄마를 단골 미용실에 데려다주는 게 1차 미션입니다. 미용실 이모와는 오래 알고 지넨 데다 서로 깊숙한 사정까지 알고 있으니 쓱 물어보겠죠, 요새 아들 형편 좀 나아졌나 봐.
그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보며 대답할게요. 엄마의 유전자가 도와줬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