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파이시너드클럽 Dec 05. 2021

부디 나의 싸부님이 되어주세요!

제발...

오랜만에 전 직장 편집장님과 사수를 만나 술 한잔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 감사한 분들인 게 콘텐츠 기획하는 법, 이를 결과물로 잘 내어놓는 법, 양질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법 등 많은 걸 알려주셨더라고요. 자주 연락드리진 못했지만, 그 시절을 곱씹어 보니 감사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요즘 일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사수, 개인적인 표현으로는 싸부가 없다는 점입니다. 싸부가 있을 땐 물어보거나 같이 고민해볼 수 있던 것들이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게 어떨 때는 쓸쓸함마저 느껴졌습니다. 매일 매일 정보가 전혀 없는 상대와 심리전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개인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 잘 아는 사람에게, 즉 싸부에게 조언을 받는 것, 둘째, 전문 서적을 찾아 읽는 것, 셋째, 울고 불며 어떻게든 붙들고 용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노력해보고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요, 매사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사람 죽겠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의 문제다 보니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땐 후폭풍이 너무 셌습니다. 새삼 인생은 실전이다 ㅈ만아!, 깨닫는다니까요. 주변에 싸부가 많다는 것, 정말 뺏고 싶은 능력입니다.


그 연장선으로 최근에는 한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글을 집착하듯 찾아 읽고 있습니다. 항상 레퍼런스로 삼아 언젠가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것 같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봉준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말글부터 최근에는 스포츠 레전드, 타투장인, 스시장인, 대배우 등 그 분야가 걷잡을 수 없게 넓어졌습니다.


특히, 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는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을 보면 그의 경지에 어떤 경외감마저 느껴지더라고요. 다만 한 모금이라도 그가 선 위치의 산소를 훔쳐 마셔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노파심에 일러두자면, 호흡이 가파를 땐 절대 읽지 마세요. 산소가 부족해지는 느낌입니다. 현타 씨게 온다는 얘기에요.



사실 싸부님들의 말글은 대체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분야도 같지 않거니와 마주한 상황 자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은 게 뭐냐면 일에 대한, 또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함께 그만의 철학을 합법적으로 훔칠 수 있다는 겁니다. 고수는 쉬이 생각을 일러주지 않으니 찬스가 났을 때 잘 주워 담아야 합니다.


최근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덕에 바둑기사 이세돌 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바둑 둘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어무X100 궁금해 물었더니, 점심 뭐 먹지, 상대와 같이 먹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자주 한다더라고요. 자신의 사고의 깊이를 딱히 특별하게 느끼지 않는 탓일까요, 웃는 것 외엔 어떤 리액션도 하기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꼴이더라고요. 김연아 님에게 "(스트레칭  ) 무슨 생각하면서 세요?" 물은 다큐멘터리 PD님이요. 짤로도 박제됐죠, 당시 여느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웃음) 내가 참 고생이 많다."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형님들은 많습니다. 부디 나의 싸부님이 되어주세요. 곧 <논어> 원문이라도 읽을 기세라고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유전자가 도와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