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건강합시다.
술을 좋아합니다. 술 약속이 없을 땐 혼자서 마실 정도입니다. 때문에 숙취는 다반사로 겪고 있고요, 낮엔 술기운에 죽겠다가도 퇴근 시간만 되면 다시 술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변태적 기질의 발현일까요, 최근에는 숙취 후 찾아오는 적당량의 우울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우울감은 일종의 '스프링 효과' 때문에 발생한다는데요, 술 마실 때 들뜬 기분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서 발생하는 기분의 낙차가 원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엔 과음한 다음 날 점심 먹은 이후가 특히 그렇습니다.
사실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지만, 그 순간을 즐긴다고 말하는 건 그때의 생각들 때문입니다. 뭐랄까, 머릿속이 복잡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떠도는 와중에 평소 떠올릴 수 없는 아이디어가 나온달까요. 실제로 그때 느끼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메모해두는데 이를 글 쓸 때나 일상에서 드립(!)을 칠 때 활용하곤 합니다. 다만, 괴로운 것은 배설에 가까운 생각을 맨정신에 마주하는 겁니다. 분리수거가 필요한 이유겠죠.
인생의 변곡점은 항상 우울했던 시기에 찾아왔던 거 같아요. 가령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기력함을 등에 지고 살았었는데요, 사람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라 빈 시간을 영화나 음악으로 채웠습니다. 그것마저 지겨우면, 정말 할 게 없으면 수능 특강을 들었는데 그것들이 도움이 될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또 한 번은 직장에서 번아웃을 겪고 될대로 되라고 되라고 해 퇴사를 했는데요, 오히려 그때 느낀 여러 고민들이 인생의 또 다른 변화와 기회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은 우울감에 압도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요. 다행인 건 비슷한 감정을 겪을 때 쌓은 작은 승리들이 가라앉은 기분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겁니다. 과거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일종의 '역스프링 효과'라고 할까요.
더 이상 보탤 말이 없는 걸 보니 작은 우울함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네, 술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일의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바라며.
모두 적당히 우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