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만큼 부족함 없이 살려면 대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야.'
부족한 게 많아 하나씩 채우며 사는 삶입니다. 가끔은 현타도 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평범한' 삶을 살려면 대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냉장고 열 듯 들르던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이유입니다.
연휴 하면 넷플릭스 아니겠습니까. 이번 구정은 <이 구역의 미친 X>로 정했습니다. 여기엔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요, 흔히 말하는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부족한 존재입니다. 남주는 분노조절장애를, 여주는 공황장애, 망상을 겪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서로 상종 못 할 것처럼 부딪히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혹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응원하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한국판 <실러라이닝 플레이북>이라고 할까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무엇보다 눈이 가는 건 두 사람의 히스테리컬한 모습이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특정 장면에서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인데요, 특히 여주인 민경이 그랬습니다. 민경은 전 연인에게 데이트폭력, 불법 촬영, 그로 인한 협박 등에 시달린 후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공황 장애와 망상 또한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묘사되죠. 그가 믿을 수 있는 건 반려견 '호의' 뿐입니다. 이런 민경이 술에 취해 자기 고백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는 현재 자신의 겪고 있는 정신적인 것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이 특히 신경 쓰였던 건 최근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경의 말처럼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에 남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닐까 깨달은 순간입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부족'은 신뢰입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고 할까요. 전 같았으면 그러거니 말거니 무심했을 타인의 말과 행동을 요즘에는 애써 의미를 찾으려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심지어 발화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내 식대로 해석을 해버릴 때도 있고요. 마치 <이 구역의 미친 X>의 민경이 휘오가 자신을 미행한다고 착각하는 것처럼요. 정작 나는 남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잘도 하면서 말이죠. 참 피곤한 인생입니다.
현실은 인스타그램과 달리 좋고 멋짐만 있지 않습니다. 단지 인스타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는 부족함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도 삶의 일부다,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 믿음이 흔들렸던 요즘입니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하고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랄까요.
"세상의 모든 찌질함을 사랑합니다." 브런치 대문에 걸어둔 글귀를 '찌질함' 대신 '부족함'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세상의 모든 부족함을 사랑한다. 자신의 찌질함을 마음껏 뽐내는 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나쵸 리브레>, <델타 보이즈>의 인물들을 사랑한다, 일부 사람들의 '정상' 잣대로 볼 때 '하자'가 있는 존재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는 <내 사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톰보이> 등의 영화를 사랑한다.
모든 불행은 남들과 비교에서 온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이미 나는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까먹었을 뿐. 그래도 멘탈이 안 잡힐 때면 <이 구역의 미친 X>의 휘오, 민경의 말처럼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친 거다, 몽니를 부려보겠습니다.
오늘은 캔을 쥔 손이 얼 정도로 바람이 차서,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좋은 날입니다.
https://youtu.be/w4XU3Viix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