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실은 원자와 메모리로 보존될 겁니다
원자는 불멸하니까요.
영화 <애프터 양>에서는 테크노 사피엔스가 등장합니다. 흔한 표현으로 AI라고 할까요. 흔히 로봇이 사람과 너무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되면 '불쾌한 골짜기'라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요, <애프터 양>에 등장하는 테크노 사피엔스는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인간의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양' 또한 어찌 됐건 주인공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죠.
엄밀히 따지면 '양'은 제품입니다. 영화에서 라이프사이클이 끝난 데다 제조사가 불분명한 바람에 결국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가 로봇인 탓에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좋은 기억만을 메모리 형태로 저장해뒀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됩니다. 이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양'. 그는 정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먼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더 많은 상실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가깝게는 우리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반려견부터 상상하지 못했던 가족, 둘도 없는 친구가 그 대상이 될 수 있겠죠.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무리 강한 심장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마음을 툭툭 털고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겠죠. 미워하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지워낼 만큼인걸요.
'양'의 가족들은 영원한 형태로 보존된 그의 메모리에 의지해 그를 기억할 겁니다. 그의 다른 가족을 잃는다고 해도 분명 같은 식으로 기억하겠죠. 무의 상태가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순간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말은 조금 위로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건 원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영원불멸하다고요. 만약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원자는 남겨집니다. 원자는 죽지 않으니까요. 뿔뿔이 흩어져 어떤 존재의 일부가 될 뿐이죠.
분명한 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분명 상실감을 안겨줄 겁니다. 또 하나 변함없는 건 결국 그 상실은 저장된 형태의 좋은 기억과 원자로 보존될 겁니다. '양'이 그랬던 것처럼. 김상욱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