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놓치면 5분은 기다려야 하는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놓칠까 헐레벌떡 뛰어들어 탄 엘리베이터 안. 선크림만 겨우 바른 채 눈썹도 그리지 못한 민낯으로 출근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 부서 여자 상무님께서는 오늘도 완벽한 풀셋팅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계셨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니 그런 우아한 분 옆에 웬 눈썹이 반밖에 없고 머리는 산발한 여자가 하나 있다.
설마... 저게 나야? 정말?
아... 그래, 저게 나구나.
우아하고 싶다!
우아하고 싶다!
절대적으로 우아하고 싶다!
엄마가 되면서부터 내 인생에 우아함이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목 늘어난 티셔츠, 아이가 토사물이 묻은 티셔츠는 기본이요, 가까이 있으면 아이 변 냄새까지 풍기면서 몇 년을 보냈다면, 아이가 걷고 뛰면서부터는 혹시나 넘어질까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쫓아다니고 뛰어다니고 했었다.
그러다 '이제 첫째가 초등학교 간다'라고 하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초등학교 가요? 와, 이제 다 키웠네요~
이게 무슨 강아지가 야옹하고 우는 소리인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도 아이들을 돌봐주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는 달리 초등학교 1학년은 1시만 되면 학교 수업이 끝난다. 그 뒤로는 최소한 6시까지 돌봄 + 방과 후 + 학원으로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8살 어린 아들이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릴까 하루에도 몇 번씩 GPS로 위치 조회를 하며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아침은 더 가관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아침 또는 오전 간식을 주지만 학교는 그런 게 없으니 하루 종일 밖에 있을 아이를 생각해 어떻게든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여서 보내려고 온갖 음식을 종류별로 다 준비해보지만 어른도 그렇듯 눈뜨자마자 먹어야 하니 아이는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
하긴, 아침식사로 씨름하기 전에 깨우는 것부터가 큰 일이다. 우리 아이는 저녁에서야 돌아오는 엄마가 그리워 늦게까지 얘기하고 놀다 늦게 잠들었는데 엄마가 출근을 해야하니 다른 아이들보다 20분은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한다. 교실은 열지도 않은 시간이라 학교 도서관에 가는 길에 등교하는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다. 그 뒷모습이 너무 짠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도 쓸쓸한지 꼭 한 번은 뒤돌아 보며 손을 흔든다. 혹시라도 뒤 돌아봤을 때 엄마가 가고 없으면 아이가 실망할까 봐 아무리 바쁜 날에도 그 시간만큼은 지금도 꼭 기다린다.
아이가 잘 일어나서 아침밥 잘 먹고 웃는 날로 학교를 가는 날만큼 기분 좋은 날이 없다. 반대로 아이가 잘 일어나지 못하거나 밥을 잘 먹지 않거나 꾸물거리거나 해서 출근도 늦어버리고 화도 내버린 날에는 하루 종일 미안함과 속상함에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 나는 나 스스로를 '에너지 넘치는 엄마, 같이 놀면 재밌는 엄마'라고 늘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이가 '엄마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써온 시를 보고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짜증 한 번, 후회 한 번
어라~ 라임까지 넣어서 잘 썼네~ 하면서 읽어 내려오니 '엄마는 힘들어한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로 시가 마무리되고 있어 울컥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을 잘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필을 줄 아는섬세한 아이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까지 이렇게 걱정해주고, 저녁 퇴근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아파한 줄은 미처 몰랐다.
아이에게 늘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 보고 있었구나 싶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슬프기도 하면서 행복하기도 했다.
그래, 좀 우아하지 않으면 어때.
아이와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이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을 것임을 잘 알기에 오늘 하루도 우리가 함께 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하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생각하던 우아한 하루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묘연해 보이지만, 우아하진 못해도...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우리 아이가 이렇게 밝고 깊게 잘 크고 있으니...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