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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세담 Jan 18. 2020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김프로, 김프로가 술을 그렇게 잘 마신다며?"

"아 네, 잘 마시기는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이야,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마시냐"


회식자리에서 자주 듣는 질문에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타박을 듣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냥 술이 세서 술을 '많이' 마실 수는 있을 뿐, 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즐겨' 마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는 싫어하는데) 자꾸 술을 잘 마신다고 더 권하시면 정말 곤욕스럽다.


2019년에도 어김없이 우리나라가 알코올 소비량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세 이상 한국인이 한해 먹는 술이 (평균) 맥주 148.7병, 소주 62.5병

주말을 포함한 휴일 수가 116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일에는 거의 매일 소주와 맥주를 마신 것과 같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알코올 소비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해.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어서일까? 술 말고 다른 놀이 문화가 별로 없어서일까? 회식이라는 것이 회사생활의 일부처럼 여겨 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이 많아서?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내 돈 내고 직접 술을 사서 마실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술을 마시는 건 회사 회식 때뿐이다. 물론 요즘은 예전처럼 강권하는 회식문화가 거의 없어지긴 했지만 회사생활에서 회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회식자리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회사에 입사해서 참석한 첫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술을 엄청 권하시던 선배님이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해."로 시작해서 "야, 넌 일 잘하겠다"라는 말씀을 끝으로 택시에 실려 집으로 가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술을 권하는 걸까.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좋아하는 걸까.


술 잘 마시는 것이 마치 큰 역량이나 자랑인 것처럼 여겨지는 작금의 상황이 나는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한테 불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회식한다" 하면 '오늘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자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술 잘 마시는 것도 역량인가요?


회식을 좋아하는 상사라면 회식자리마다 참석하는 후배를 좋아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술까지 잘 마신다면 더없이 예뻐할 수밖에 없다는 선배가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회사 밖에서 술을 같이 마시는 것이 역량이나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회식은 회식이고 업무는 업무이니 평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선을 긋는 분들도 있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는 존재인가. 아무래도 가까이서 자주 얼굴 보고 장단 맞춰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기 마련인 게 사람의 마음인 것을 누가 모를까.

  

술을 마시면 조금 편안해져서 서로 서운했던 것도 얘기하고 쑥스러워서 말 못 했던 것도 얘기하고 좋지 않냐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닐 때 (술에 취해서) 한 말은 새겨듣지 않는다. 맨 정신에는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고 술의 힘을 빌려야지만 할 수 있는 얘기라면 마음에 담아 들어야 할 만큼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 가보면 대학교 동아리 선배들이 술을 '끝까지' 마시다 보면 뭔가 그게 특별한 추억이 되어 서로 특별한 관계가 된다고 하길래 그 특별한 추억이 뭔지 너무 궁금하여 정말 날 잡아서 끝까지 같이 가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만취해서 쓰러진 선배들, 동기들 택시 태워 보낸 거, 다음날 점심때 다시 만나서 해장국 먹으면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재밌었다는 얘기 했던 거, 단지 그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걸 나는 다 기억이 나서 그다지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던 경험이었다.


술 말고는 대안이 없나요?


학교때부터 그렇게 술로 관계를 만들고 이어오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회사이다 보니, 결국 회사에서도 그런 방식이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심을 전하는 방법이 술 말고는 없는 것인가. 고생한 팀원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신뢰와 지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술을 같이 마시는 것밖에는 없는 것일까.


싫든 좋든 팀원으로서의 나는 이러한 문화를 다 바꿀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 때문에 나는 '나중에 내가 팀의 리더가 되면 우리 팀원들과의 단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그런데, '술 말고 다른 좋은 대안은 없을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어쩌면 나도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부터도 이런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세대가 바뀌면서 회사에서도 더디긴 하지만 점차 바뀌게 될 거라 생각한다.


술 잘 마시는 게 회사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나쁠 것 없는 역량이라면, 그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런 문화가 지속되기를 원할까 싶기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음식에 대한 선호를 존중하고 강요하지 않듯 회식자리에서도 술에 대해서도 강권하지 않아야 하고 회식은 어떤 형태로든  팀원들이 '함께 하는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팀워크를 다지는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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