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꿈꾸기 딱 좋은 나이

나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by 루시아 Lucia

어느새 2025년도 11월이 되었다.

내년이면 나도 마흔다섯이 된다.


5년 전 마흔을 앞두고 썼던 글,

<마흔, 꿈꾸기 딱 좋은 나이>

마흔 다섯을 앞둔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때의 나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었고,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5년이라는 시간

5년 전의 나는 이렇게 썼다.

"마흔이 되면 인생에 대해 큰 고민 없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에 매진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이제서야 새삼 깨닫는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인생은 내가 그린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20대에 그렸던 30대의 모습,

30대에 그렸던 40대의 모습은 분명했는데

40대에 그린 50대의 모습은 여전히 흐릿하다.


엄마가 아닌 '나'를 찾아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십 년 동안

나의 30대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매년 세우던 1년, 3년, 5년, 10년 계획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 멈췄다.


'나' 혼자만을 위한 인생 계획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덕분에 정말 행복했지만,

동시에 '엄마가 아닌 나'는

없어져 버린 것 같은 공허함,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꿈은

꿀 수 없는 건가' 하는 두려움은

늘 내 마음속에 존재했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의식적으로

그런 감정을 외면하려고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이 아닌 그냥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 또한 '나'임을

인정하는 데까지 십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5년 후

5년 전, 마흔이 되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내가 궁금하고

세상이 궁금하다. 마흔이면 한창 일할 때고

마흔이면 아직은 더 새로운 꿈을

꾸어도 될 나이이다."


그리고 내년이면 마흔다섯을 앞둔 지금.

그 다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지난 5년간,

일도 관계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장 변하지 않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여전히 꿈꾸고 싶은 나이다.


마흔다섯의 발견

5년 전의 나는 "마흔도 충분히 젊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는 "마흔다섯은 더 좋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마흔에는 없던 것들이

마흔다섯에는 있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

모든 걸 다 이루지 않아도 된다는 평온함,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자유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조급함 대신

"지금이 딱 좋은 때"라는 확신이 생겼다.

충분하다는 말의 함정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책임질 것이 너무 많지 않냐.

이제는 아이들 잘 키우고, 일 잘하고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인생이다."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이제는 새로운 꿈을 꿀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 감사하고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 감사한다"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꿈꿀 필요가 없다"는 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지금 내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한다.

아이들도, 일도,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도.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일,

아직 해보지 못한 꿈을 꾸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꿈을 꾸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가 가진 삶에 대한 열정이자,

삶을 가장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만의 철학이기에,

나는 오늘도 꿈을 꾸고 싶다.


120세 시대의 마흔다섯

이제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온다고 한다.

옛날이면 마흔이면 중년,

쉰이면 은퇴할 때라고 했지만 지금의 마흔다섯은

경험도 쌓이고 인간관계에도 노련해진

업그레이드된 청년 정도가 아닐까.


마흔다섯이 되었다고 본인 스스로

나는 이제 중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중년이라는 말이 생의 중반쯤을 사는

시기라고 생각해 보면 이제는 중년이

40대가 아니라 60대 정도라고 보는 게 맞다.


마흔다섯이면 한창 일할 때고,

마흔다섯이면 아직도, 아니 이제야 비로소

진짜 하고 싶은 꿈을 꾸어도 될 나이이다.


지금, 여기서

나는 여전히 내가 궁금하고 세상이 궁금하다.

세상의 많은 일들에 여전히 의구심이 들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한다.


열정을 담되 불필요한 감정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나는 지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아직도 매일 고민하며,

인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늘 노력한다.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아마, 5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마흔다섯, 꿈꾸기 딱 좋은 나이

5년 전 "마흔, 꿈꾸기 딱 좋은 나이"라고 썼을 때보다

지금이 더 확신한다.

마흔다섯은 꿈꾸기 딱 좋은 나이다.


이제는 안다.

나이가 들수록 꿈은 사치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는 것을.


마흔다섯의 꿈은

스물다섯의 꿈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를 위한, 나에게 솔직한,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꿈이면 충분하다.


그런 꿈을 꾸기에

마흔다섯은 정말 딱 좋은 나이인것 같다.



P.S. 5년 후, 쉰이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그때도 여전히 "쉰, 꿈꾸기 딱 좋은 나이"라고

쓰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진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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