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룩의 시대, 관계의 온도를 생각하다

by 루시아 Lucia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마음의 온도는 여전히 따뜻하다.


"여기 뭐가 맛있어요?"


카페 카운터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카페는

저마다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기에 물어본 건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메뉴판 확인하고 주문하세요."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대화는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너무 부담스럽게 물었나?' 싶기도 했고

'요즘은 이런 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

집에 돌아와서도 그 짧은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불친절하다고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뭔가 아쉽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비슷한 경험담이 쏟아졌다.

"나도 편의점에서 물어봤다가

무시당한 적 있어"

"요즘 알바생들은 먼저 인사도 잘 안 해"

"세상이 너무 차가워진 것 같아"


정말 요즘 젊은 세대가

유독 더 불친절한 걸까?


젠지룩, 그게 뭔데?

요즘 이런 현상을 '젠지룩(Gen Z Look)'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고 한다. 깔끔하고 절제된,

동시에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스타일.


그건 단순히 말투나 표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인 것 같다.


개인화되고 디지털화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고

싶어 한다. 직접적인 만남보다 메시지로,

전화보다 채팅으로, 감정보다 효율로

세상을 살아간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한 거야?"

"세상 참 각박해졌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였다.


잠깐, 우리도 그랬잖아?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도 나이 든 어른들에게

"요즘 애들은 버릇이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우리가 이어폰을 끼고 버스를 탔을 때

어른들은 "세상이 각박해졌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말없이 카드를 내밀었을 때,

어른들은 "인사도 안 하냐"라고 하셨다.

그때 우리는 뭐라고 생각했었나?


"아니, 바빠 죽겠는데, 왜 매번

모르는 사람들한테 인사까지 해야 해?"


지금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도

아마 꽤나 비슷할 것 같다.

그들에게는 감정 노동이 당연하지 않다.

효율이 생존의 언어가 된 세대니까.


업무는 최소한만 효율적으로 하고

불필요한 대화는 줄이고

자신의 에너지는 지키는 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젠지룩 세대는 SNS에서는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관심받기 위해 꾸미고 표현한다.

결국 세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모두

연결되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온라인에서는 내가 원할 때 연결하고,

원할 때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번 문을 열면

그게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니

아예 거리를 두어 버린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말하고 싶다.

진짜 관계는 "내가 원할 때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관계에도 법칙이 있다

좋아요를 받고 싶다면

나도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

댓글을 받고 싶다면

나 또한 내 생각과 공감을 댓글로 남겨야 한다.

팔로워를 원한다면

나도 누군가를 먼저 팔로우해야 한다.


이건 비단 SNS만의 법칙이 아니다.

현실의 모든 관계가 그렇다.

관계는 내가 원할 때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만 맺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항상 쌍방향이다.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때로는 내 시간을

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비로소 관계의 온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온라인 속에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애쓰는 만큼,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만큼의 에너지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오버해서 다가가거나

부담스럽게 굴라는 말이 아니다.

버스 기사님, 식당 직원분, 경비원 아저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 짧은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


그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을 보이는 것.

그것만으로 세상이 거창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작은 따뜻함이 쌓여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사실 정답은 없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기보다,

세대가 다르고, 소통 방식이 다르고

각자 편한 거리감이 다를 뿐이다.


나는 여전히 처음 가는 카페에서는

"여기 뭐가 맛있어요?"

라고 물어볼 것 같다.

때로는 친절한 답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메뉴판 보세요"라는

답을 듣기로 하겠지만 그게 뭐 어떤가.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려고 한다.

짧은 인사 한마디, 따뜻한 미소 하나.


다른 사람을 억지로 바꾸거나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나 스스로 나의 하루는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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