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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Aug 19. 2021

유난히 들떴던 35살 생일을 보내며

유난스러웠던, 유난히 들떴던 생일주간을 보내고, 생일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들뜬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응? 님 현실 아님?


늘 생일에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한편 보고 시작한다. 마치 어린 왕자를 나이 때마다 보면 다른 느낌인데, 내게 이 영화도 그렇다. 서른다섯 살 생일을 맞아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쓰고

서른다섯 살

내가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오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긴 내가 제주도에 살고, 직장 생활을 안 하는 자영업이라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말이다.

불과 10년 전인 25살엔 지금의 나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아니 5년 전만 해도 지금의 나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기록의 의미로 오랫동안 일기를 썼던 덕분에 돌아보니

그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정말 애 늙은이 같다 등등의 생각들 

부끄럽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싸이월드 감성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나는 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과 타인이 보는 나와 내게 보는 나 스스로가 너무 달랐다.

근데 그 불안감은 대체 어디서 부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다면 ㅡㅡ... 상담 한번 받아 보고 싶을 정도. 

또  돌이켜보니 나는 나에 대해 자신감이 낮았다. 이건 자존감과 다른 결이다.

유튜브를 해라. 누가 편집해 줘

새로 나온 플랫폼을 해봐라. 생각보다 게을러요 

가지고 있는 플랫폼을 하나만 그리고 꾸준히 하기도 힘들다 등등 

글도 쓰고 싶고, 책도 읽고 싶지만 

막상 서울 오면 이래저래 사람 만난다고 정신없고, 밀린 병원, 카메라 수리 등등하느라 정신이 없다.

언제 내가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살았을까 

서울에 살 때는 필요 없었던 차가

제주공항에서는 내리자마자 찾게 되고 

서울 살 때는 필요 없던 것들이 제주살이에서는 필요하고

제주 살 때는 필요 없던 것들이 서울 살 때는 필요하고 등등 

제주도로 내려온 과정은 기억이 안 나고 왜 그랬을까 싶지만

진짜 내려와서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 최근에 느낀 거지만. 아니 어쩌면... 난 굉장히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나의 일과 고민이 중요하다.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캠핑을 가면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다. 공주다 공주. 아무것도 안 해서 밉상일 것 같아 뭘 하려고 하는데 그냥 애들이 웃겨달란다. 미안하다.


가끔은 이렇게 허세를 부리다 보면 돈이 좋은 것 같다. 사람이 최고라는 말보다 돈이 최고지 뭐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나한테 궁금할 때가 많은데 

진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궁금하다..

서른다섯 살 

정말 오래 살았다 웃긴 소리지만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가난해서 싫을 것 같고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가난해서 싫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가난은 금전적인 부분 보다 앞, 나의 내일에 대한 불안감이 컸을지 모른다. 

돌아보니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어떤 것을 해도 좋으니

자신감 있고, 허세 있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8월 운이 좋게 프리랜서로 콘텐츠 관련 업무를 다른 회상 와 진행하고 있다.

굉장히 감사할 일인데 프리랜서는 한번 일을 삐끗하면 안 좋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책 읽을 시간도, 글 쓸 시간도 없어 

- 요즘 블로그는 기록의 의미 

- 예전에 열정적이던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육아에 매진하다 보면 튀는 것이 전부였던 때

스펙보단 스토리를 외치며 튀는 것이 전부였던 우리에게 평범하게 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신입사원 때 유행했지 

이제는 그 선배들의 마음을 이해할 때 

- 해외여행이 막 자유롭기 시작했던 때 열심히 더 다닐 걸 그랬다.

- 우리나라는 혼자서 뭘 하면 되게 눈치 주던 사회였는데 어느 순간

집에 순이, 지비 콕, 혼자 있어도 편하고 눈치 주지 않는 사회가 됐다. 너무 좋다. 

- 언제나 회자되는 2002년 월드컵

- 구슬 꼬치, 싸이월드, 전화선을 연결해 인터넷을 하고, 삐삐 치던 때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부족함 없이 다해줬다

내가 말하는 가난은 스스로 자존감과 자신감에 대한 가난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보자

여기서 치열한 건 돈돈돈 거리는 게 아니고

철없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에 진심을 다해보고 싶다.

서른다섯 결혼도 아직 안 해서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디서부터 어떤 글로 서른다섯 살 생일에 대해 이야기할지 뒤죽박죽 

무탈히 보내고

무탈히 지내온 내게 토닥토닥 



생일 주간이라 들떠있던 마음을 조금은 차분하게 하고 이제는 하반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자영업이라는 게, 제주도 스냅이 당장에 잘 된다고 해서 어깨 뽕들어 간 게 아니라

롱런할 수 있게, 겸손하고

사진 좀 잘 찍자 제발!!! 


잘 살았다.

내가 최고, 엄지 네가 최고야 

생일 축하해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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