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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Jul 09. 2020

어쩌다보니 제주도에서 회사생활

넌, 서울에서 살아서 좋겠다

"제주도 살아서 좋겠네" 

"그럼 너도 좋은 데서 살아볼래?" 

 

습해서 빨래가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벽지에 생길 수 있다는걸 알게 됐어. 벌래 장난아님 태어나서 이런 벌래가 있나 할 정도로 벌래와 인사하게 됨. 쓰래기 분리수거 철저히 해야해서 재활용센터까지 들고가야해, 읽고 싶은책 주문하면 5일은 기다려야해, 제주도 물가 비싸다고 욕하지? 물가 서울이랑 비슷해 여행지라 조금 더 비싸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흔하게 있는 동네 파리바게트, 올리브영, 스타벅스 반가움.  

생각해봐 봐 “서울에서 살아서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답할 거 같아. 내가 지내온 곳이 그냥 여기고, 대학생활하다 보니, 회사 생활하다 보니 어쩌다 보니 여기인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긴 제주도는 조금 다르다. 서울 한 달 살이라는 말보다 제주 한 달 살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어쩌면 여행지로 많이 오는 곳. 이사보다는 입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비행기를 타고 오가야 하는 ‘섬’이라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고 다짐하는데 기분이 태도가 됐다. 많이 예민해졌다. 첫 낯선 곳에서 일보다 첫 자취가 더 힘들었다. 제주도와 서울에서의 시간은 정말 다르게 흘러간다. 천성이 부지런하다 죽을 팔자인지 시간이 여유롭고, 천천히 흘러가는 속에서 나태 한걸 못 봐준다. 서울에서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보자고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엄마 잔소리 없이 시작하니 허전하다. 저녁시간은 약속이 없다면 아무리 뭘 해도 7시 10분이면 집이다. 서울에서 이렇게 생활했음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가끔 약속이 있어 술을 마셔도 늦게 들어가면 11시니 말이다.(노래방을 가지 못해서 그런가..) 평일 휴무는 주말과 달리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고, 벌써 6월, 1년의 반이 지났다.


제주도에 있는 지인제주도에 이따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사람들을 오랜만에, 우연스럽게 만난다. 대부분 여행으로 오기 때문에 밥 한번 먹자, 얼굴 보러 가게 들러주는 사람들 보면 정말 고맙다. 여행으로 오게 되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을 텐데 말이다. 예전에 제주도 지인한테 ‘한번 갈게!’, ‘다시 올게요’라고 했을 때 ‘네 그러세요’라고 돌아오는 답이 무심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왜 그렇게 답했는지 알 것 같다. 왜냐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도 그랬고, 너무 많다.  

기분이 태도가 됨

“제주도 살아서 좋겠네”라고 말하는, 대뜸 연락하는 사람. 오랜만에 연락하니까 그래 인정. 적어도 내 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제주도 여행 가는데 맛집이나 카페 추천해 줘라고 깔끔하게 사족 달지 말고 물어보는 게 더 좋다. 막 오랜만이라 반가워 꺄르르 할 정도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됐다. 다행히도.  

스트레스로 예민해서 제주살이에 대한 대답은 “응 좋아”라고 말하기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놀러 오고, 여유 부리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왔으니까, 무엇 하나라도 부러트려야 할 만큼 내 인생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내게 지금 위로가 되는 말은 ‘제주도 살아서 좋겠다’는 말보다.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는 말이 더 듣고 싶은지 모른다.  

내가 제주도 살아서 좋은 게 아니라,  

제주도에 친구 있어, 아는 후배, 아는 선배 있어 좋다는 말을 하도록  

난 더 여기서 잘 살아야지. 

제주도한달살이 VS 제주살이 현실

제주도 여행

숙소가 제주시, 서귀포 중요하지 않다. 방방곡곡

2박 3일 동안 제주도 한 바퀴 다 돌아 

카페 리스트 쭉쭉. 다 뽑아 버림.

카페 영업시간 나와 있는데 꼭 갈 때 전화함 

제주도 한 달 살이

1주차 : 어머 제주도 한 달 살이 핵

2주차 : 겁나 열심히 신상 카페, 지금 핫한 곳 다님

3주차 : 아차차 내가 여유를 즐기려고 왔지~라며 여유롭게

4주차 : 돌아갈 짐 싸야 함

한 달 살이는 진짜 강추. 좋았던 기억과 쉼만 가져 갈 수 밖에 없음

제주살이 현실은 타지생활과 똑 같다. 

원래 제주도 토박인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조금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 제주 시내에서 서귀포 시내 겁나 멈 / 가끔 여행 온 친구가 숙소 어디야? "서귀포" 헐................................. 

공항에서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 오늘 뭐 할 거야?" 

"올레시장(서귀포) 갔다가, 성산일출봉 갔다가" 

네?????????????????????????????????????????? 

■ 벌레에 대해서 그다지 무감각한 편인데. 곤충도감에도 나오지 않을 벌레들 총집합. 진짜 최악. 거미는 남자친구보다 더 많이 만남  

■ 습함. 근데 또 적응되면 괜찮은데 재습기 꼭 있어야 한다. 

■ 집에 곰팡이가 왜 생기는지 알 수 있음  

■  친구들, 엄마 친구들 다 전화 와서 맛집, 가야 할 곳 알려달라고 한다. 미칠 노릇이다. 내가 여행사도 아니고.. 그냥 쉽게 웃으면서 알려주면 되는데 꼭 이런 전화는 바쁠 때 온다.  

■ 교보문고로 책을 주문하면 5일쯤 지나 도착한다. 제주도에 있는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긴 하지만 그렇게 기다린 책이 파본이 올 때 심정이란  

■ 생각보다 분리수거 철저함. 동네마다 분리수거 센터가 따로 있어서 들고 다녀야 함. 그래서 제주도에는 차 안에 쓰레기를 들고 운전할 때가 많음 분리수거 센터 나오면 버려야 하니까 

■ 가스보일러? 의미가 좀 다름 

■ 맨날 흑돼지 먹을 것 같지? 생각보다 돼지양념갈비 많이 먹고, 육회가 반찬으로 나옴  

■ 이케아 배송비 아낀다고 여러 사람 모여서 공구하는데 보통 공구하면 500만 원 정도 엄청 삼. 근데 중요한 건 공구한 사람 집으로 배송이 다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집이 이케아 박스로 가득 차게 됨  

■ 여름휴가 = 서울  

■ 캠핑 몇 번 따라가봄......... 결국 캠핑 장비 빨... 그러다 결국 차를 바꿔야 한다는 연타가 옴  

■ 도민 맛집이라고 하는 곳 혼자 알고 싶다가도 소셜미디어에 올림. 진짜 사람 많아지면 짜증 냄  

■ 생각보다 여름에 날씨가 안 좋음. 비오거나 흐린날 진짜 많음  

"어머 내가 본 사진들은 날씨 좋던데?" "날씨 좋은날 사람들이 사진 많이 찍으니까" 

"내가 갔을땐 날씨 좋던데?" " 기분 탓아님?"  

■ 비행기 마일리지 많겠다? 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제주도민 마일리지 부자입니다!!!!!!! 도민 할인은 비행기표 정가에서만 할인. 그냥 어차피 특가 항공권이 저렴 

맨날 예쁜 카페 가고, 캠핑 가고 그럴 것 같지 

여기서도 그냥 회사 생활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우유와 시리얼로 후다닥 아침을 때우고 7시 30분에 출근한다. 적어도 아침 부지런함은 서울과 같은 시간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래저래 청소하고, 재고 정리를 하면 9시쯤 되고 택배를 보내야 하는 날이면 택배를 들고 우체국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다녀오면 9시 50분쯤 되고, 본격적 영업 시시 간 이러니 일어나서 5시간 노동을 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고 예민할 수밖에, 하지만 손님들은 꼭 28분에 오신다 그럼 30분부터 점심시간입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데. 내 마음이 이미 힘들어 있기에 이때 모시는 분들한테는 서로 미안하다. 시간이 미뤄지면 점심도 못 먹지만 점심시간 택배를 보내야 할 경우는 더 아쉽다. 진짜 불가피하면 점심을 늦게 먹어서, 택배를 보내야 해서 10분 늦게 문 연다고 하면 점심시간 이후 시간을 맞춰 오는 분들한테도 미안한 일이다. 혼자 일하는데 전화가 폭발한다. 특히 오픈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걸 왜 물어보지 생각하는데 제주도 특성상 급하게 문 닫는 카페들이 많아서 습관처럼 전화하는 것 같다. 근데 나 또한 음식점 갈 때 전화한다. 여름방학, 여름 시즌이 되니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온다. 여름까지 마스크를 하니 진짜 힘들다. 오후 4시가 되면 같은 말을 반복한지 100번쯤 되는데 이때 오는 현자는 이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든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거 그냥 로봇에 설명 넣어놓으면 굳이 사람이 할 일인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가 등등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데 잠이 온다. 일주일에 책 2권은 읽는데 못 읽은 책이 20권 쌓였다. 처음 자취를 할 때 집이 너무 낯설어서 자주 있지 않은 공간인데 이제는 집에서 저녁에 티브이 켜놓고 맥주 한 잔에 책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나는 적어도 내가 행복하고, 훗날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선택했는데 

작정하고 끝장내고 싶은 일인데. 당장에 너무너무 힘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도 존버라 쓰고, 존나라 읽는다. 


"제주도에 살아서 좋겠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이런말 하지 않았으면... 

확실히 내 성격을 알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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