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사진관 Dec 20. 2019

부모에게서 첫 독립,

어느 누군가의 세입자가 된다는 것

부모님과 같이 지내다 보면 20살 이후에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대학을 가서 자취를 하게 될 수 있고, 군대를 가서 집에서 잠시 떨어질 시간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이유에서 독립을 하게 되거나 등등 많은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서 살게 된다. 아버지는 늘 내게 그 시간이 곧 결혼을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결혼은 안드로메다급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이직을 하게 된 회사의 근무지가 제주도이다 보니 그렇게 제주도로 생애 첫 독립, 자취를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내게 맞는 집을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부동산 앱을 켜서 보는 집들은 왜 이렇게 채광이 들어가고, 하얗고 깔끔하기만 한지 

막상 가보니 사진과 다른 곳도 많았거나 좁거나, 채광이 별로였다.

이미 펜션 사진들을 보며 우리를 현혹해서 여행을 가서 당한 적이 많으면서 참


처음 구하다 보니 조건은 왜 이리 까다롭니다

신축, 전세, 회사 근처, 투룸 등등 조건을 적으니 말한다

"진짜 포기 못하는 거 3개 빼고 다 지워"

"야 맞아. 어차피 너희 집도 아닌데 그냥 꾸미는 재미로 살아"

이 말도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는데

글 쓰는 이 시점에는 계약이 끝났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거의 매주 제주도로 내려가 집을 알아봤다. 한정된 시간에서 이틀 동안 꼬박 빈집은 30곳 이상을 본 것 같다.

이 정도로 봤는데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니

아니 사실 처음 집을 알아봤을 때 헉했다.

원룸이라는 구조가 문을 여니 바로 옆에 신발 장위에 전자레인지가 있고, 문 앞에 침대가 있고.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내가 돈을 써야 하는지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차츰 알게 되었다.

한 달이 꼬박 지나 내려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이 집으로 할게요"라는 말이 나왔다.

계약 직전에 부동산 아저씨가 말했다. 여기 사실... 누수가 있어서..." 이렇게 많이 집을 봤는데

이렇게 아쉬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제주도 특성상 아니 모든 집이 다 그렇듯이 

남향이면 좋고, 습기, 곰팡이 그리고 화장실 물이 잘 내려가고, 콸콸 잘 나오는지 등등 


결국 돈이 많으면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으나

돈이 애매하게 있다는 사실...

현 직장 근무가 1년이 안되어서 대출도 어렵다는 사실..

아 이래서 선배들이 퇴사 전에 마통 마통 하고, 대출 잘 알아보고 생각해서 나가라고 했구나

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주도는 부동산 특성이 육지와 굉장히 다르다. 부동산 앱보다 교차로, 오일장을 통해 더 괜찮은 방들이 많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붙어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발품 하는 게 더 나은 구조였다.

그러다 알게 된 집이 있는데 가격도 너무 딱딱 맞았다.

"연세인데 부동산 통해서 굳이 해야 해?"

"제가 처음이라... 부모님이 꼭 부동산을 통해서.."


현제 세입자가 있어 집을 보지 못했고, 풀옵션이 아니다 보니 이것저것 궁금해 

세 번 이상을 전화하게 되었는데 아저씨가 언짢으셨는지 소리쳤다

"아 육지 것들 정말 까다롭네" 

태어나 처음 느낀 무례하다는 단어에 긁혔다.

"죄송한데 없던 일로 하시죠"


제주도에서는 늘 위로가 되는 좋아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마저도 위로가 되지 않는 무례한 순간을 만났다.

난 그저 깐깐하게 따지는 육지 사람었다.


100%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괜찮은 집을 구했다.


할머니가 어릴 때 중요할 때 쓰라고 만들어준 도장을 들고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고모가 최대한 어리바리하지 말고 당당하게 하고 오라고 했으니. 생각보다 모든 건 빨리 끝났다. 어느 정도의 목돈을 모으기 위해 회사를 다녔고, 집을 구하는데 두 달이 넘게 고생했는데 정작 집 관련 사인을 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환영합니다"라고 웃거나, 왜 내려왔거나 등등.


이 섬에서 나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에 대해 맷집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사람 고쳐 쓰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 섬에서 여행이 아닌 살아간다는 것, 일상이 된다는 것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가 없는 건 내가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만 해도 괜찮으니까. 제주도의 날씨는 따뜻한데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무척이나 낮아진다. 내가 체감하는 온도는 이미 적당한 거리두기부터 시작이었다. 잘 살아보자!


다 컸다고 생각했다. 삼수부터 취준생까지 많이 힘들어서 흔들렸어도 어찌어찌 지나왔고, 회사 생활도 어찌어찌했고, 이러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단단한 내성이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것 앞, 새로운 결정 앞에서는 부모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애처럼. 조언을 구하는 거지만 한없이 아이처럼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결국 내 고집된 결정으로 선택하겠지만 돈으로도 사지 못할 경험을 하지만 돈이 있음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

생각보다 귀하게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상 누구나 자식들은 귀하지만. 부모가 해주는 물질적인. 단순히 한 달에 용돈을 얼마 받았는지가 유년시절 부유함의 지표라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편안함 속에 곱게 커왔던 환경 속에 내가 있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다.

결론. 독립하려니까 만만치 않다. 유난스럽게 별생각이 다 든다.



늙어가는 기분이라 생각 말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그리고 전보다 더 많이 웃자.

그런 날이 많을 거야. 사랑해. 

-

위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불편했으면 죄송한 말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