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타인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은 마음의 불편함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특히나 그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거기에 나는 점점 얕아지고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함만 짙어져 간다.
2015년 6월 13일...
뒤집힌 안전벨트를 바로 잡느라 지체된 시간을 메우려 제대로 신지도 못한 암벽화를 발에 꾸겨 넣으며 취나드 B 앞으로 뛰어갔다. 이건 내 호흡이 아닌데... 빨리 오라며 나를 찾는 목소리에 기가 죽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조차 눌린다.
부랴부랴 첫 마디 앞에 서니 어느새 앞잡이는 출발을 앞두고 있다. 가는 모습을 잘 봐 두어야 하는데 숨이 가빠 몽롱하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씀은 알겠는데 따르지 못하는 몸뚱이의 느림을 보고 있으니 등반의 흐름을 끊는 민폐자가 되는 것 같아 남의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도 모자라 후진 정신력에 순간 이것이 나의 길인가 의심이 인다.
"완료"라는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잡이는 벌써 자기 확보를 끝마쳤다.
둘, 셋 곧이 어 내가 오를 차례가 되자 심장이 아랫배까지 내려앉는 느낌이다.
잘 부탁한다.
바위야...
왼편 크랙에 손을 넣을까 넓적 바위에 손을 올릴까
번갈아가며 고민하다 내 편한 방법으로 왼손은 바위 위에 오른 손은 크랙에 끼고 올라간다.
연이은 슬랩,
비교적 경사면이 낮은 바위와 발 올림이 여럿 있어 조금 안심이다.
아직까지 바위는 까마득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잡을 곳을 찾으며 오르다 힘들면 볼트를 잡아도 된다는 말씀에 유혹을 느낀다. 망설여진다.
두려움에 마구마구 오른다.
느슨한 줄을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하다.
상대의 줄 당김 호흡을 조절하며 오르란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내 조급함이 끈 넘어 전해 졌겠다.
이윽고 한 마디가 끝난다.
오아시스에서 확보를 마무리하는데 다른 팀과 볼트 위치가 엇갈려 끈 사이로 번갈아가며 자리를 바꾼다.
그리고 두 번째 마디...
선등자가 옆으로 게걸음 치듯 트래버스를 언더크랙으로 가는 보는 순간 퀵드로우가 없다면 시계추처럼 추락 폭이 넓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오름 대기...
조여 오는 암벽화에 발가락이 아파 신발을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어디선가 버버버벙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울림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거짓말 같은 모습.
산 아래로 쓸려가는 사람들...
'보지 말아야겠구나.'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떨려오는 몸을 들킬까 조바심을 느끼며 가방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달라고 부탁하니 뒤돌아보지 말라는 선배님의 말씀이 귓가를 울린다.
등반을 계속하려면 보지 말아야겠구나 했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오전 9시 50분
119 신고... 20여분 후 구조대 도착.
대장의 하산이 결정되고 오아시스로 탈출한다.
사고 현장 코스를 오르던 내가 다친 줄 알고 인수 B에 계시던 선배님께서 하얗게 질려 취나드 옆길로 건너오셨다는 말에 핑 눈물이 돌았다.
슬랩에서 확보를 보던 선생님의 걱정 어린 말씀에 아찔했을 그 마음이 전해져 왔다.
조금 더 지체하여 올랐다면 나도 그 안타까운 사고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부지런하라는 조언이 아프게 스쳐가고 나와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 같은 어색함은 죽음을 비켜간 자리에선 그저 핑계일 뿐임을 무섭게 깨닫는다.
밤새 쓸려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꿈속에서 반복되었다.
신께서 나를 그 자리에 세우지 않은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아프게 가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친 분들의 쾌유를 바라며
산 아래 살아있는 사람들의 자잘한 소동을 보니 그 쓰라림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를 비켜간 사고를 보며 살아있어 느끼는 고통이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나는 저 위대함 앞에 잠시 "있다가는"
그저 사람 하나에 불과한 작은 존재인 것이다.
바위, 그 아득함 만큼 먼 듯 가까운 죽음을 비켜간 후 비로소 삶이 다시 보이는 것 같다.
살아있으라...
비록 아프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