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선배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로 멍한 며칠이 지나갔네요.
그렇게 선배님의 흔적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컴퓨터 속 디지털 사진폴더들은 많은데 선배님과 함께한 모습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많은 순간 중에 선배님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은 고작 몇 장뿐이네요.
우리의 시간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버린 걸까요?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세상 얼빠진 얼굴의 제가 보이네요.
그날 선배님은 제게 얼마나 크고 먼 존재였던가요?
인수봉 의대길 맨 앞에서 우리를 끌어올려 주셨죠.
저는 그날 선배님이 신은 릿지화가 뭔지도 모르는 풋내기였습니다.
오랜만에 앞잡이...
그것도 까마득한 인수봉을...
릿지화라뇨?
그걸 신고 선등을 한다는 의미가 어떤 건지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오르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선배님은 그날도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줄을 달고 출발했지요.
후미에 있던 저는 등반하는 동안 선배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선등자와 후등자의 그 아득한 간격이 사진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의대길 볼트 따기 마디에서 위쪽 어디선가 아련히 조언을 해주던 선배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릿지화를 신고 의대길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오름짓임을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또 다른 줄 묶음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까 다시 흔적을 찾아봅니다.
여심바위, 설악산, 삼성산, 춘클릿지, 강촌...
여러 해 함께했던 산제와 창립기념일, 송년회, 산악마라톤대회가 스쳐갑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기억은 왜 이다지도 얕기만 한지요.
선배님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제가 미워지기도 합니다.
선배님의 큰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는데도 선배님 옆에서 종종 듣던 ‘하, 저 새끼들…’
그 음성 하나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네요.
그러고 보면 가장 오래가는 기억은 소리인 걸까요?
마지막 뵈었던 안부를 묻던 그날도 선배님은 모습이 아닌 목소리로 생각납니다.
몸은 좀 어떠냐는 제 물음에 읊조리듯 덤덤하게 괜찮다며 등을 보이고는 이내 자리를 옮기셨죠.
그게 안녕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오래 얼굴 마주 보며 시간을 함께 할걸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마음이 좀 더 가벼울는지요?
너무 착한 형이라며 선배님을 이야기하던 또 다른 형님의 음성은 이렇게 또렷하건만
불과 한 달 전 선배님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는 이렇게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함께 웃으며 함께할 수 없다는 부재의 확인이 두렵습니다.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주면 좋았잖아요?
이렇게 조금만 더 원망하겠습니다.
그래도 혼내지 않을 선배님임을 알기에 이만 선배님을 향한 아린 마음을 남겨봅니다.
의대길을 오르던 그 가벼운 몸짓처럼
선배님의 마음 또한 따스한 봄바람되어
훌훌 날아오르기를 기도해 봅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훨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