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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un 11. 2023

훨훨(김기택 형님을 추모하며)

그랬으면 좋겠다

선배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로 멍한 며칠이 지나갔네요.

그렇게 선배님의 흔적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컴퓨터 속 디지털 사진폴더들은 많은데 선배님과 함께한 모습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많은 순간 중에 선배님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은 고작 몇 장뿐이네요.

우리의 시간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버린 걸까요?


2014년 10월 9일 한글날

세상 얼빠진 얼굴의 제가 보이네요.

그날 선배님은 제게 얼마나 크고 먼 존재였던가요?

인수봉 의대길 맨 앞에서 우리를 끌어올려 주셨죠.

저는 그날 선배님이 신은 릿지화가 뭔지도 모르는 풋내기였습니다.

오랜만에 앞잡이...

그것도 까마득한 인수봉을...

릿지화라뇨?

그걸 신고 선등을 한다는 의미가 어떤 건지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오르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선배님은 그날도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줄을 달고 출발했지요.

후미에 있던 저는 등반하는 동안 선배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선등자와 후등자의 그 아득한 간격이 사진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의대길 볼트 따기 마디에서 위쪽 어디선가 아련히 조언을 해주던 선배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기억납니다.

릿지화를 신고 의대길 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오름짓임을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인수봉 의대길 하산 중

또 다른 줄 묶음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까 다시 흔적을 찾아봅니다.

원주 간현암에서 선등
삼성산, 춘클릿지

여심바위, 설악산, 삼성산, 춘클릿지, 강촌...

여러 해 함께했던 산제와 창립기념일, 송년회, 산악마라톤대회가 스쳐갑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도 기억은 왜 이다지도 얕기만 한지요.

선배님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제가 미워지기도 합니다.


선배님의 큰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는데도 선배님 옆에서  종종 듣던 ‘하, 저 새끼들…’

그 음성 하나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네요.

그러고 보면 가장 오래가는 기억은 소리인 걸까요?

마지막 뵈었던 안부를 묻던 그날도 선배님은 모습이 아닌 목소리로 생각납니다.

몸은 좀 어떠냐는 제 물음에 읊조리듯 덤덤하게 괜찮다며 등을 보이고는 이내 자리를 옮기셨죠.

그게 안녕인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오래 얼굴 마주 보며 시간을 함께 할걸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마음이 좀 더 가벼울는지요?

너무 착한 형이라며 선배님을 이야기하던 또 다른 형님의 음성은 이렇게 또렷하건만

불과 한 달 전 선배님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는 이렇게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함께 웃으며 함께할 수 없다는 부재의 확인이 두렵습니다.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주면 좋았잖아요?

이렇게 조금만 더 원망하겠습니다.

그래도 혼내지 않을 선배님임을 알기에 이만 선배님을 향한 아린 마음을 남겨봅니다.


의대길을 오르던 그 가벼운 몸짓처럼

선배님의 마음 또한 따스한 봄바람되어

훌훌 날아오르기를 기도해 봅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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