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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Sep 06. 2023

바다로 간 산꾼들

서천 송석마을 바닷가에서 즐기는 하계캠프

산악회에서 지금껏 하계캠프를 바다로 가본 적이 없어.

처음이잖아.

바다가 집 앞에서 바로 있어.

조개도 캘 수 있다는데?

끼니 놓칠까 그가 만들어준 우정 김밥

이건 무조건 가야지.

그렇게 퇴근하자마자 태릉입구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바로 서천으로 향했다.

세 시간을 달려 앞마당이 바다인 곳에 차려진 우리들의 베이스캠프에 짐을 내렸다.

먼저 내려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선배님들의 얼굴이 불콰하다.

다들 뭔가 들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어릴 적 소풍날처럼 설레던 것이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참석 댓글이 없던 승원 형님의 목소리가 타프 위에 퍼진다.

괜히 더 반갑다.

92살이라고는 믿기는 않는 어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우리를 반긴다.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와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전혀 아랑곳없이 당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여간 정겹다.

'엄니, 사흘간 잘 부탁혀요'

홀로 속삭이며 대충 짐을 풀어놓고 마당으로 나갔다.

"우리 바로 앞이 바로 바다니까 절대 저 앞으로는 가면 안 된다"

총무님의 당부에 어둑해져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말 바닷가가 코 앞에 있네. 언닌 좋았겠다'

이곳에서 어린 날을 보냈을 산악회 언니와 엄니의 기꺼운 초대가 없었다면 못 누릴 캠프가 아닌가.

엄니가 내어준 바닷가 앞마당에 기다랗게 펼쳐진 타프와 올망졸망 자리 잡은 텐트.

베이스캠프에 자리 잡은 텐트들

그 아래 둘러앉은 회원들.

2박 3일간의 캠프는 그냥 이 장면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적막을 깨어주는 이들의 목소리가 이 여름 바닷가에 퍼질 때마다 홀로 이 모든 고요를 받을 어무니의 조용한 일상이 잠시나마 왁자지껄하게 웃음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집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마당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여흥은 아침으로 이어졌다.

살짝 잠든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밝았다.

일출이 궁금해서 잠깐 자리에 일어났다가 금세 다시 눈이 떠져 동네 마실을 다녀왔다.

몇몇 분들은 일찌감치 바닷가 산책을 하면서 만난 바위를 만지며 등반을 이야기했다고 하니 못 말리는 이 꾼들...

내가 만난 마을은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왼쪽으로 파릇한 벼 이삭이 자라고 있어 푸름이 깊었다.

마을 마실

한 시간 남짓 동네를 거닐다 땀이 나올 때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마터면 다시마국이 될뻔한 사연 많은 미역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다시마를 향한 어무니의 귀여운 투정이 갑자기 생각난다.

'어무니, 그 다시마는 어찌 됐을까라?'


맛깔만 음식들로 차려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국립생태원으로 향했다.

너무 더워 걷는 내내 그늘을 찾고 있는 나와 볼거리가 많다며 꼼꼼히 관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시원한 냉풍기가 가동되는 극지관만 기억에 남았다.

땀에 젖어 거의 시들어 갈 때쯤 다행히 생태원을 나왔다.

국립생태원 나들이

오늘은 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서둘러 생태원을 빠져나와 서천 시장 구경을 했다.

하계캠프에 참석한 산악회 회원들에게 일바지 일명 몸빼바지를 선물하겠다는 회장님의 말씀에 따라 10여 벌에 옷을 고른 후 저녁에 먹을 음식들도 사고 어죽 한 그릇을 먹고는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여전히 강한 오후 햇살에 몸이 노곤하였으나 한껏 차려입은 몸빼바지를 입고선 선배님이 꼭 먹어야 한다며 만들어준 촥촥 감기는 맛의 감자전을 맛나게 먹고는 갯벌로 향했다.

섬을 바라보며 썰물이 만든 바닷길을 좌우로 왼쪽에는 조개 찾기 실패.

언니가 재빨리 해루질 장소를 오른쪽으로 옮기자 그때서야 눈에 보이는 조개들이 짜릿함을 더했다.

이토록 집중해서 뭔가를 해본 적이 얼마만인지?

이런 즐거움이라면 한없이 조개를 캐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구나.

재미에 흠뻑 취해 있을 때 아쉽게도 철수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해가 저무는 바다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저마다 추억을 한 바구니 챙겨 집으로 향했다.

다 같이 잡은 조개가 담긴 바구니를 보며 나는 시원한 국물 맛을 떠올렸는데 초대해 준 언니는 어머니가 까야할 조개 양이 보였으리라.

그 생각은 못하고 짧은 해루질을 아쉬워한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잡는 것만 생각했지 저걸 일일이 깔 생각을 전혀 못해봤군.

죄송해요.

나의 즐거움은 누군가의 고난이 될수도...

뻘물을 씻어내고 한숨 돌리자 어느새 저녁밥 때다.

거한 저녁 한상과 함께 형님들의 칠순 잔치로 바닷가가 또 한 번 들썩거린다.

형님들의 얼굴에 서린 미소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덩달아 나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밤이 깊어지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자리를 파한다.

이렇게 두 번째 캠프 밤도 끝나고 다시 아침.

어제 잡은 조개를 듬뿍 넣어 끓인 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왕언니가 급 바닷가에 차린 명실싸롱에서는 순식간에 후배들의 헤어 스타일을 완성시켜 주었다.

미용실에서 온 것처럼 거침없는 손길이 꽤나 정성스러워 감동 먹었다.

'이 미용실 잘하네'

한껏 들뜬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도 둥 떠오르고 사람들과의 기념 촬영을 하며 이렇게 올해 하계캠프를 마쳤다.


바다로 떠난 첫 하계 캠프

산이 아니어도 나는 그저 좋았다.

거기에서도 여전히 함께하는 우리들.

어딘들 좋지 아니할까.

엄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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