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잠 살려줘
드라마 같은 일은 드라마이만 있는 걸까?
3년 만에 엄니를 간병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왔다.
그해보다 훨씬 쪼그라든 몸처럼 엄니는 자다가도 소리를 지르곤 했다.
건넛방에 잠든 나에게까지 그 비명이 들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난 일이 반복될 때쯤 우리 자식들은 어렵게 엄니의 수술을 결정했다.
엄니는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상태에 따라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수술이 엄니 뭐 마음대로 되나?
검사해서 못하는 사람이면 못하는 거지?
그런 마음으로 검사를 하고 한 달 만에 갑작스레 수술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입원.
창가 자리라 그런지 지난번 입원검사 때 머물던 6인실보다 널따란 느낌이다.
자리를 배정받자마자 맞은편 창가 자리에는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어르신은 꽤나 괴로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딸이 서둘러 커튼을 닫으며 말을 건넨다.
“보시면 괴로울 거예요”
“저흰 괜찮아요. 갑갑하실 텐데 그냥 걷어둬도 돼요”
5인실인 병실엔 창가자리 두 곳을 자리 잡은 우리들만 있어서 뭐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엄마의 상태는 차치하고 건너편 할머니의 상태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연거푸 깜빡거리는 불빛.
엄마의 심장이 수명을 다해가는 거라고 딸이 알려준다.
부정맥으로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할머니의 상태를 알려주는 빛이 유난히 커져 보인다.
코로 음식을 삽입해서 주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지 눈물을 훔치며 엄마 미안해를 속삭인다.
커튼을 쳐드릴걸 그랬나 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찰나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오늘 밤엔 할머니 저의 옆에 두고 지켜볼게요라고 말하며 침대를 끌고 나간다.
잠시 침묵.
홀로 멍하니 보호자 침상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몸을 일으킨다.
어디서 왔냐는 예의 물음이 오고 가고 간병은 꼭 돈 없는 자식이 한다며 설핏 웃는다.
아주머니의 말투를 미루어 나와 고향이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남쪽이란다.
나도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은 벌교가 고향이라고 말한다.
어쩐지 익숙하더라.
저도 벌교예요.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요.
나이 터울이 커 안면은 없지만 누워있는 엄마를 향해 엄마 저분이 장양이 집이라요 했더니 귀신같이 그 말을 알아듣고는 엄마도 반가워한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고 하니 당신 어머니도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하셨다고 알려주신다.
아…
엄마가 말귀만 밝았어도…
그 할머니가 좀 더 건강한 얼굴로 마주쳤다면…
무진장 반가워하셨을 텐데.
분명 서로를 알아볼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괜히 슬퍼진다.
할머니가 머문 요양병원에 대한 아주머니의 넋두리와 간병기를 듣는 동안 할머니가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마주치지 않으면 좋았을 병원이라는 장소이기에 마움이 여러모로 편치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수술을 앞두고 긴장을 해서인지 엄마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아침이 되어 다시 병실로 돌아온 할머니를 반가워할 법도 할 텐데 엄마 눈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아시는지 가뜩이나 조용한 병실이 더 적막하다.
가라앉은 공기를 깨고 들려오는 할머니의 개미만 한 목소리.
“나 잠 죽여줘”
“나 잠 죽여줘”
이럴 땐 엄마가 잘 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 숨이 멎었던 나도 못 들은 척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미안해”
……
흐느끼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병실을 나가려는 찰나 고통스러워하던 할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다시 내 귓가를 울린다.
“나 잠 살려줘”
올해 아흔셋의 할머니의 삶을 향한 의지가 너무 가냘프여 가슴이 에여왔다.
‘나 잠 살려줘’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본다.
어떤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숨죽여 시간을 흘렸다.
무언가 무너져 내린다.
부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떠났다고 했다.
나를 살려달라던 고향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밝게 웃으며 벌교에서 인사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그저 바라는 가을밤이다.
엄마는 여전히 입원 중이고 나는 이 모든 게 어서 끝났으면 하고 바란다.
이 드라마의 끝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