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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Jan 11. 2019

우리 오늘 영화볼까?

영화보는 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지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겨울밤 지글지글 끓는 구들장, 엄마가 깎아주는 향긋한 꿀사과의 냄새, 가족들의 내복냄새, 햇빛으로 바삭바삭 마른 이불. 그것들을 합치면 영화보는 날이 된다.

 

'우리 오늘 영화볼까?' 라고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 처럼 소근소근 얘기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처음보는 세상을 만난 아이같이 반짝반짝하는 빛이 서려 있었다. 항상 바쁘고 피곤해 보였던 엄마는 돌연 화색이 돌아 콧노래를 불렀고, 언니와 나는 신난 걸음으로 뛰쳐나가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서 엄마가 말해준 제목의 영화를 골라왔다.

 

우리의 영화보는 날은 항상 하루 일과를 다 마친 저녁에야 시작된다. 언니와 나는 뜨끈하게 데워놓은 구들장에 도톰한 이불을 깔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이 베개 두개씩을 얹어올려 영화를 볼 준비를 끝냈다. 가족들이 입은 내복에서 비누냄새와 살냄새가 폴폴 풍겼다. 순면, 햇빛, 따뜻한 숨결냄새. 엄마는 검은 바탕에 꽃무늬가 요란하게 그려진 작은 쟁반에 아빠 친구가 과수원에서 보내온 향긋한 꿀사과를 깎았고,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이불을 코 중간까지만 오도록 얼굴을 덮었다. 그러면, 드디어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를 볼 때 온 가족이 얼마나 숨죽여 집중을 했던지 텔레비전이 타 없어지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공기중에는 흥성흥성하니 떠오르는 열기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말도 하지 않고, 과자를 먹을 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누구 한명이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면 영화를 일시정지 해야 하므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 미리 화장실에 다녀와야했다.

 

지금와서 생각 해 보면 엄마가 영화를 고를 때에는 나의 나이같은건 별로 개의치 않아했던 것 같다. 우리가 보는 영화들은 대부분 명작이라고 불리는 고전 영화였기 때문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코흘리개였던 나는 러닝타임이 222분짜리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다가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하고 골아 떨어졌다. 영화가 끝난 후 엄마와 언니가 나누는 열띤 이야기들을 들으며 얼마나 분했는지 모른다.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 할아버지가 죽을 때는 엉엉 울었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에 눈물 콧물을 뿜으며 오열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나서는 시를 쓰겠답시고 일기장에 삐뚤빼뚤 짧은 시를 채워 넣기도 했다.

 

엄마의 명작 선정은 제작국가와 장르를 넘나들었다. <천국의 아이들> 은 나의 첫 이란 영화였고, <아무도 모른다> 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기 전까지 나에게 가장 슬프고 애달팠던 일본 영화였다. 그러나 엄마가 보여주는 영화들은 언제나 나의 가슴에 텅 하고 닿는 울림을 주었다.

 

눈물이 많아 영화를 볼 때면 휴지 한 통째 끌어안고 눈 옆에 휴지를 구겨넣다싶이 했던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영화를 좋아해?' 

 

'너네 할머니가 얼마나 영화 광이었는줄 아니?' 엄마는 못말린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아직 코흘리개였을 시절, 엄마와 나이 차이가 있는 이모는 거리 극장에서 표 파는 일을 했다. 상영되는 영화가 바뀔 때마다 공짜 표가 나왔는데, 영화라면 껌뻑 죽었던 할머니는 공짜 표가 나올 때 마다 집에서 가파른 산 고개를 하나 넘어 있는 거리극장으로 발걸음을 했다. 

 

할머니는 아직 아기인 삼촌을 포대기에 싸매서 등에 묶고, 엄마는 누룽지를 싼 보자기를 덜렁덜렁 들고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거리 극장으로 갔다. 사람들은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색도 없는 흑백영화는 아직 어렸던 엄마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투성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그 재미없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가고 차가운 새벽바람이 엄마의 볼을 꽁꽁 얼릴 때 까지 봤다고 한다. 몇일이 지나 프로가 바뀌면 또 그곳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를 보는 할머니가 그렇게 지긋지긋했다고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영화광의 유전자가 엄마의 엄마로부터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한가지 차이점은 나는 엄마가 보여주는 영화가 너무나 좋았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너무 길어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이보다 더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것이다. 할머니로부터 이어 내려온 영화광의 유전자 덕분에 우리 자매 또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영화중독자가 된 것이다. 가파른 산을 넘어 거리극장에 간 할머니처럼 우리도 매년 ktx를 타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간다. 개봉되지 않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가릴 것 없이 하루의 스케줄을 영화, 영화, 영화로 꽉꽉 채우고 잠시 부산에 내려가 살고계신 할머니 집에 기어들어가 피곤함에 쓰러져 잔다. 손녀들이 놀러왔다며 마냥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왜 부산 구경을 안하고 종일 영화만 보냐고 의아해 하시지만 우리는 이 스케줄이 할머니의 유산이라는걸 잘 안다.


혼자 나와 살기 시작한 후, 나는 집에서 프로젝터로 그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감상하고는 한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서 사과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복냄새와, 햇빛에 마른 이불냄새도 곧 뒤따른다. 기억에도 냄새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말에도 아마 나는 엄마에게 영화관에 가자고 할 것이고, 엄마는 틀림없이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얼굴로 아이같이 웃으며 좋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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