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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Jan 07. 2019

인디언 썸머

선물 같은 여름

인디언 썸머 (Indian Summer)

: 가을이 깊어가면서 겨울이 오기 전 잠깐 동안 여름날과 같은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인디언들은 다시 찾아온 짧은 여름동안 겨울을 나기 위한 사냥을 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이 기간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렀다.

16년에 다녀와서 쓴 여행기를 주말 동안 다시 읽어봤다. 허술하고, 부족한 글이지만 생동감과 활기가 느껴지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기억과 느낌을 그대로 담아 쓴 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나는 글 거리가 있다면 메모장을 켜서 간단히라도 그 순간의 느낌을 남기려고 애썼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났을 시기 사실 나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독립도 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던 내게 퇴사 후 부모님의 집은 가시밭처럼 느껴졌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가는 부모님의 발자국 소리에 침대에서 깨어있는 채로 숨죽였고, 앞으로 내 삶에서 어떤 것을 목표로 달려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룰에 숨 막혀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바랬지만 어른이 된 후에도 나는 보이지 않는 어떤 룰에 따라야 했던 것이다.


다시 공부를 해야 할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어쩌지? 수많은 질문과 걱정들이 나를 추격하며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밤에 잠이 들 때면 운동량이 부족해 축 늘어진 살 위로 시커멓고 커다란 돌덩이 같은 것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숨을 헐떡이며 쉬어야 할 만큼의 무게감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아마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귓가에는 어떤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동안 넌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았어! 그래서 바로 심판의 때가 온 거야. 이 게으름뱅이, 넌 실패했어. 넌 네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라. 아마 너는 재능이 없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게 속삭이는 목소리로부터 나를 도망치게 해 준 것은 여행이었다. 두 달여간의 여행 일정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짜는 동안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찾아야 하는 꿈도, 미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두 달, 그게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삶의 기간이라는 듯 나는 돈도 안전도 별 염두에 두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여행을 떠나면 답이 없는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처럼 답답한 내 인생에 어떤 명쾌한 주관식 답란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여행 에세이, 사진, 게시글을 보다 보니 여행이란 삶에서 중요한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실제로 여행을 다니면서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믿었다.

'좀 더 이상하게 살아도 된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화내고 슬프면 소리 내서 울고 기쁘면 소리 질러도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을 숨기지 말고 안아주면 된다. 어떤 사람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면 바로 칭찬하면 된다. 좋은 음악이 들리면 일어나서 춤을 추고, 데이트하고 싶은 남자가 있으면 데이트를 신청하면 된다. 나에게 호의를 표하는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표하고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에게는 욕을 날려주고 도망가면 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된다. 삶은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행 중 답 없는 낙관으로 범벅된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언니가 댓글을 달아왔다.

"근데 서울에 돌아오면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이 생길 게야......"


그때는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가더라도 항상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언니의 말이 맞았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니 반드시 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겨 내 주위에 진을 쳐 놓아 버린 것이다. 다시 일자리 구하기, 이력서에 채워 넣을 자격증과 어학능력시험 치기, 일러스트레이터 배우기 등등.. 다시 너무나 현실적인 현실의 삶으로 돌아온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긴 여행이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나에게 '자, 이게 여행의 대가야'라고 하며 여행의 종착역에 선물을 턱 하고 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행이 끝난 후 2년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나는 그 기간이 나의 인디언 썸머 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먹고사니즘에 파묻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나의 가능성과 가치를 말살하는 어떤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2개월간의 선물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때 쓴 글들을 돌이켜 보면 단조로운 노동으로 한 땀 한 땀 이어진 나의 삶에도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뽐내는 자수가 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또 다른 선물이 있다. 바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어릴 적 폭풍 같은 기세로 가감 없이 솔직한 글을 써내어 상을 휩쓸었던 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니터의 창백한 민낯 앞에서 온통 두려움으로 말라 쭈그러들은 조미료 투성이의 글을 쓰게 되었던 나는 어느 시점 글을 쓰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다. 내가 어릴 적 글을 썼던가의 기억도 흐물흐물 흩어지게 됐다. 가끔 기막히게 잘 쓴 글을 보게 될 때면 마음 한 구석에서 연기같이 피어오르는 잿빛 질투심과 함께 어쩐지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내 글이 해체되고, 평가받는 게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여행기를 쓰면서는 그런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내 작품성과 기발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기억과 느낌 그대로를 술술 풀어낼 수 있었다. 내 여행기를 보고 용기를 내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여행을 가는 건 귀찮아하지만 내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둘 다 좋았고, 내가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


그 후로는 그냥 글을 쓴다. 글을 쓴다고 해서 내가 굳이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예술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예' 자의 끝을 조금 늘려 이야기한다. '예에-술.' 그게 의미하는 것은 예술을 뭔가 거창하고 심오하며 아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예술이다. 그들의 잣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찢어발겨지고 냉혹한 평가를 받아 너절해지는 그 '예에-술.'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 예에-술을 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눈에 들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안달이 났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예술을 하는 데에 숙련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에

"오늘 춥지,

따뜻하게 입어요'

같은 글을 싸지르고 작가님 소리를 듣는 사람을 향해 비아냥이 담긴 목소리를 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가가 뛰어난 재능을 원래부터 타고났다거나, 위플래쉬의 앤드류처럼 영혼을 갉아먹히는 혹독한 숙련을 통해서만 될 수 있는 어떤 고차원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자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예술적인 본능을 타고났고, 가지고 있는 재능의 정도는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표현을 시작한다면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에 대고 독백을 읊어보는 것이다. 내가 의미를 찾은 어떤 반짝이는 순간을 병에다 담아놓고 나중에 그것을 꺼내어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혹은 시간이 지나면 물에 흐트러진 밀가루 반죽처럼 사라질 기억을 단단히 반죽하여 휴지 시켜놓은 후에 숙성된 반죽을 구워 바삭하고 고소한 빵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돌을 바라보며 돌 속에 숨어 있는 형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단순히 돌을 부수고 긁어내어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돌이 품고 있는 형상을 찾아 끌과 망치로 그 형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짧게 주어진 인디언 썸머가 나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무뎌지고 퇴색되어 딱딱하고 차가운 네모 석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계속해서 나에게 '나다울 것'을 강요했다. 이 세상에 답은 없어. 여행에도 답은 없어. 너답게 살아, 네가 어떤 사람이고 너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알아봐. 이게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 준 전부이다. 나는 세상에 흡입되어 무뎌지는 석고의 모퉁이를 부수고, 갉아내면서 그 안에 파묻혀있는 나의 어떤 형태를 끄집어냈다. 혹독한 숙련을 통해서, 인간적인 행복을 희생해서가 아니라 일상을 관찰하는 어떤 조용한 시선으로부터 나다운 글을 계속해서 써 내려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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