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은 없다
요즘 나는 이때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방식으로 건강한 하루하루를 살고있다. 내 일에 집중해서 나름의 열정을 쏟고 있으며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있다. 성평등분과에서 활동하면서도 시간이 없다며 겉핥기 식으로만 공부했던 페미니즘을 다시 역사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며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다. 최근 흑인 페미니즘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우리는 조금 더 다른 그룹의, 다른 계층의,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연대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대라는 것은 지지와 협조, 우정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내 삶에 긍정적인 반향을 불어일으킬만한 행동이다. 나는 개인적으로의 자각이 사회적으로의 자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자각하지 못했을 때 개인의 인생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 적어보고싶다.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그룹이다. 어떤 사람은 이 최초의 사회 그룹에 문제없이 적응할 수 있으며, 사회 구성원들에게서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받는다. 이 사람은 애정과 지지를 바탕으로 개인적 자아를 만들어나간다. '나는 할 수 있다' , '나는 더 많은 도전을 하고싶다' 기본적으로 이 두가지가 바탕이 되는 자아는 추후 더 큰 사회그룹에 적응할 때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데 거침이 없으며,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삶과 그 안의 것들을 다각도로 보고 자신의 주관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환영받고 호감적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지지와 애정을 받으며 실제로 완전히 사회에 나갔을 때 자신이 만들어온 주관을 가지고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 그룹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다. 방치, 학대, 과잉보호 등 어렸을 때 어떠한 이유로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개인적 자아를 만들 때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으며, 다른 권위자의 (가족 내에 권력이 있는 사람) 자아를 자신의 자아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면화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지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자아 롤 모델 (부모, 가족이 원하는 상) 을 내면화하여 자아로 굳힌다. 첫째 딸 콤플렉스로 인해 어머니를 자아상으로 굳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자아상은 굉장히 제각각으로 만들어진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개인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개인적 자아는 항상 불완전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항상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긍정적인 자아정체감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부재로 방황하는 디즈니의 공주님이 왕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해진다는 이 환상은 이로부터 나온다. 개인이 자아를 확립하고 나아가 사회적인 자아를 찾아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대신 평생동안 자신의 옆에서 사랑을 쏟아줄 보호자를 맹목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들의 옆에서 평생 안전기지를 확보해줄 헌신적인 사람은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정한 자아를 가지고 평생 있지도 않은 환상을 찾아 헤메이게 된다.
때문에 이 사람들이 일생동안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어떤 사람과 사귀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자아정체감을 얻게되면 그 순간 그들은 안전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완전히 포용받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에 눈에 비춰진 자신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고싶어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브레인워싱을 당하거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부당한 취급을 당한다. 온전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와 존재의 관계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고 입맛대로 길들이는, 길들여지면 당근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채찍을 주는 폭력적인 관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는 여성들은 냉철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이들은 끝없이 감정노동과 꾸밈노동, 심지어 성적노동에 시달리며 매우 힘들어하지만 이 모든걸 '사랑은 원래 아픈 것' 이라고 생각하며 합리화 해 버린다. 또, 남자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할 때에도 이 점을 콕 꼬집어 말하면 그가 떠나갈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넘어갈 때도 많다. 한때 나는 친구들이 연애할 때 묘사하는 남자의 모습과 헤어진 후에 묘사하는 남자의 모습이 대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판이하다는 것을 몇번이나 경험한 후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이별한 친구들과 이야기 중 함께 충격을 받았던 것은, 우리가 연애를 할 때에는 어떤 불편함을 느껴도 그것을 문제 삼으려 하지 않고 적당히 합리화해서 기억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또, 이러한 눈물나는 합리화를 하며 아무리 필사적으로 상대의 이상을 내면화하려고 한다고 해도 상대와 장기적인 관계를 지속하기는 힘들다. 대체로 남자 쪽에서 엄청나게 잘못해서 여자가 자각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관계는 보통 남자가 주도적으로 끝내버린다. 이 때, 여자에게 이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의지해왔던 애착대상의 갑작스러운 증발과 그로인해 위태로워진 자아감에 대한 공포로 다가온다. 정상적으로 건강한 관계에서 이별을 맞이한 여자가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의 애착박탈 극복의 단계를 거치며 다시 자신의 페이스로 돌아와 적응하는 반면, 이 여자들은 아직 분노와 슬픔도 삭히지 못한 채 다른 애착 대상을 찾아 헤메인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완전한 애착 상대를 다시 꿈꾸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나는 본래 다른사람과의 애착관계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다. 어렸을 때 자아감이 확실하게 잡혀있었으며,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남들이 대체 어떻게 끊임없이 연애를 해대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했다. 그때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무력하고 거의 치욕스럽게 느껴졌으며, 때문에 몇번의 짧은 연애에서도 '너는 너무 독립적' , '너무 개인주의적' 이라는 평을 받고 끝났다. (아~애착을 가지면 부담스러워하고 독립적이면 서운해하고 어쩌란말이냐?)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채로 부모님과 분리되어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분리불안을 느끼며 남자를 찾아 헤메게 되었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관계중독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다행인것은 나는 브레인워싱이나 데이트폭력을 당하기에는 너무 자아가 확실하고 자의식이 강해서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남자들을 차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과 헤어진 후에는 허전하지만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 더 강해서 끊임없이 애착관계를 찾는 짓을 멈출 수 있었다.
몇번의 경험으로 내가 깨닫게 된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자아가 흔들리고 있거나 확실히 없다면 남들이 대신 나의 자아를 만들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실 나는 비싼커피를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하며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내 자아가 확실히 없다면 관계를 맺는 사람이 선호하는, 예를 들어 가성비를 따지며 식사를 하고 요리와 집안일을 좋아하며 남자의 말을 귀담아들어주고 자신은 뭔가를 잘 주장하지 않는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나 여자나 애착관계 상실에 의한 관계중독은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사회는 남성에게 사회적자아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소년만화에서의 주 내용은 어떠한 신념이나 목표를 가지고 모든 것을 물리치고 나아가며 성장하는 (개인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로 형성되는) 내용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하지만 그 어떤 만화에서도 여성에게 야망을 가지고 신화가 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설령 여성 전사가 나와 싸우는 만화가 있다고 해도 그 끝은 언제나 사랑이다..그러므로 남성들은 성 자체가 가진 권력으로 여성보다 쉽게 사회적으로 각성할 수 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인생에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사회가 성 자체에 부여한 족쇄로 인해 사회적으로 각성하기가 어렵다. 친구들이나 가족, 친척들에게 '너는 뭘 배우고싶니?' '요즘 관심있는 분야는 뭐니?' '어떤 일을 하고싶니?' 라는 말 대신 항상 '살 좀 빠졌니?' '예뻐졌구나' '남자친구는 있니?' '시집가야지' 등의 말을 들으며 자라온 여자들에게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사실 자아정체감은 평생에 걸쳐 확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쌓으려면 자신의 취향이나 호불호, 그리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을 어떤 목표를 가져야한다. 그 목표는 완벽하지 않아도 좋고 중간에 수없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추구하고 싶은 사회적 목표나 가치가 있다면 생각만 하지말고 직접 행동하고 참여해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직접 가져와야한다. 당신이라는 개인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아젠다를 만들어나가야할지 생각해보는 것은 덧없이 사라질 한순간의 사랑이나 연애와는 차원이 다르게 중요하다.
그냥 여기서 말하고싶은게 있다. 당신은 누구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 없이도 당신 그대로 괜찮은 사람이다. 그냥 겉멋들린 위로의 말이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 한군데씩 몹시 찌질하고 한심한 구석이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 괜찮다. 그리고 아직 당신이 독립적으로 설 수 있을 정도로 자아를 확립하지 못했어도 괜찮다. 이 사회가 여태까지 여성에게 가한 세뇌는 당신을 충분히 그렇게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남자나 연애가 대신 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은 나이들어갈거고, 결국 사랑은 끝나고 연애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멋있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라이프 스타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하고싶었던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는 자신의 일에 심취해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당신에게 구원이 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것이다. 입문부터 시작해도 좋으니 이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묶여있는지 개인적인 자각을 통한 사회적 자각을 이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