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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Jul 12. 2024

내 생일날 우린 헤어졌다.

내 생일이었다. 우리는 저녁에 만나기로 했었지만, 그는 내 생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아침에 여러 명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 나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들이 올라왔으니, 아마 아침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따로 생일을 축하한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차피 저녁에 만날 테니까. 뭐.’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기필코 이야기해야지.’ 약속 장소로 가는 내내 내가 할 말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약속 장소에 그가 먼저 와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고르고 함께 먹었다. 그는 나에게 와인을 한 잔 해도 괜찮다며 웃었다. 나는 와인을 한 잔 주문했고, 그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에게 꽃을 선물했다. 생일인지 몰랐다고, 그래서 급하게 준비했다며, 그래도 삼겹살 집이 아니라 이렇게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보기로 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나도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꽃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타이밍을 보고 말을 꺼냈다.




그와 나는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사귀는 듯 사귀지 않는 애매한 썸을 타는 사이? 아니면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그런 사이? 예전에 그가 말했듯 친구가 0이고 연인이 1이라면 0.8 정도의 애매한 그런 사이. 그리고 나는 이 사이를 정리하고 싶었다. 어느 쪽으로든. 앞으로든, 뒤로든 걷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멈춰있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내가 이 말을 꺼냄으로 인해 아마도 멈출 것을 알지만, 살짝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1이 되지 않을 거라면 0이 되고 싶다는 말에 그는 0이 되겠다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함께 식당을 나왔다. 지하철 역까지 함께 걸어가며 무의미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눴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서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고마웠어.”라는 말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지하철에 내려서 추운 겨울바람을 피해 롱패딩의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목까지 지퍼를 올렸다. 어두운 밤, 검은 털모자, 그리고 마스크. 추워서 그런가 보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 안에서 나는 울면서 걸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집으로 걸었다.


다음 날은 집에서 혼자 소리 내어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며 운 게 얼마만인지.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너무 허전하고 힘들었다. 다시 연락해서 어제 한 이야기를 취소할까 고민했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이런 애매한 사이도 괜찮다고 말할까 고민했다. 다행히도 그런 나를 잘 눌러 참았다. 힘들지만 견뎌야 할 시간들이다. 다시 되돌리면 또 도돌임표로 나는 그 안에 갇혀 버릴 것이고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갈 것이다.


하루 종일 울고 또 울다가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울면서 토해내듯 말하는 내 이야기를 한참을 다독이며 들어주다 이야기했다.

“예전에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기억나?

“나는 내가 선택한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라고.

나는 항상 이걸 선택할까 저걸 선택할까 한참을 고민하고 막상 선택하고 나서도 저걸 할 걸 그랬나 봐. 후회하는데. 너의 그 말이 엄청 크게 와닿았어. 그렇구나. 선택했으니 더 이상 후회도 미련도 없이 받아들이면 그게 바로 최고의 선택이 되겠구나. 했어.”




그 이야기를 듣자 내가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었지.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수기를 집에 들였을 때도, 엄마가 “그거보다 이게 더 좋은데. 이걸로 하지 그랬어.”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아니야. 이게 이러이러해서 더 좋아.”라며 이야기했고, 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엄마는 늘 그랬다.

“항상 너는 네가 선택한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

이런 생각들이 나면서 정신이 약간 돌아왔다.

그래. 지금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프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다. 이런 애매한 관계는 확실히 정리하는 것이 맞다.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언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 기억나? 우주님 책 말이야. 거기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잖아.”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씨와 결혼하고 싶다.라고 주문하면 이뤄질까요

하지만 이 주문을 내고 우주 중매 네트워크의 미도리 님에게 인연을 다시 이어 주기를 부탁하면 아마 미도리 님은 몹시 곤란해할 것이다.

당연히 곤란하지. 주문대로 기껏 만나게 해 주었는데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없어 헤어졌잖아. 그 인연을 다시 이어달라고.... "


아마 그래서 이렇게 된 걸 거라고. 행복한 인연이 아니기에.

맞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창 ‘끌어당김의 법칙’에 빠져있을 때 내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언니에게 소개해줬던 책이었다. 잊고 있었구나. 싶어졌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그 책을 다시 펼쳤다. 그 부분을 찾아 다시 읽었다.



# 당신의 눈앞에 2천 개 정도의 수도꼭지가 늘어서 있다.

그런데 우연히 5번째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맛있어서 줄곧 그 수도꼭지의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 경우 어떻게 할까?

더구나 다른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 잘 나오고 있다.

어쩌면 그중에 맛있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을 수도 있다.

[2억 빚을 진 내가 뒤늦게 알게 된 소~오름 돋는 우주의 법칙] 중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사람. 이 아니라 행복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연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과는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렇게 된 것 일수도 있겠구나.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우주님 책 1,2,3권을 모조리 읽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이해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올 것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조금 더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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