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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Jun 26. 2021

당신의 밀실은 어디인가요

우린 모두 광장과 밀실, 2개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도 광장에서만 살아갈 수 없고 그 누구도 밀실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광장에서는 광장의 논리와 문화를 따라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상처와 피로를 동반한다. 이것은 밀실에서 치유되고 회복된다. 반대로 밀실에서는 자신만의 생각과 반성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자신만의 망상이 아님을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2개의 공간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2개의 공간을 모두 지닌 사람이 있다. 하지만 광장이 전부인 사람도, 밀실이 전부인 사람도 있다. 광장이 전부인 사람은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할 가능성이 크고, 밀실이 전부인 사람은 자신의 유아론적 망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미 '회사'라는 광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광장에만 있을 순 없다. 언젠가 밀실로 돌아가야 한다. 그 밀실이 무엇인지는 내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광장과 밀실을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을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언젠가 광장에서 물러나야 할 때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을지 모른다.


철학은 나에게 완벽한 밀실을 제공했다.


- 유튜브 채널, 5분 뚝딱 철학 중에서






나의 밀실은 어디인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로 하여금 치유, 반성,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엔 없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몇 가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대자연으로의 여행. 최대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이나 바닷속을 좋아합니다. 내가 사는 사회와 환경도 사람도 정반대 되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이죠. 그런 곳은 대개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불편하고 긴장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아, 그동안 내가 어떤 '틀'에 갇혀 있었구나 혹은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구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해주는 곳이 자연입니다.


또 하나는 러닝. 강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강을 따라 자주 뜁니다. 저는 이것이 이렇게도 좋은 것인지 몰랐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서 잘 정리가 안되면 일단 뛰어 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기분이 처지면 일단 뛰어 봅니다. 몸에 기운이 없다 싶으면 일단 뛰어 봅니다. 햇빛을 충분히 쬐고 몸에서 열이 난다고 느껴질 때까지, 내 마음에 뭔가 변화가 일었다고 생각될 때까지 그냥 뜁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꼭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안 생기는 도 밥맛은 확실하게 좋아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렇게 매일 뛰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써보는 것이죠. 지금 하고 있는 이것. (아, 물론 유튜브 채널은 책이 아니지만) 음, 뭐랄까요. 저는 드라마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합니다. 영상을 시청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런데 가장 진득하게 '생각' 이란 것을 하게 하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글까지 쓰게 만드는 건 역시 책인 듯합니다. 주제와 장르가 끝이 없는 것도, 일대일로 대화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게다가 글이란 것은 희한해서 여기서 출발해도, 저기서 출발해도 반드시 '나'라는 지점을 통과하거나, '나'라는 지점에 종착합니다. 그러하니 글을 쓰다 보면 싫어도 '나'를 만나야 하고, 결과물 자체가 '나'일 때도 있습니다. 일기처럼요. 이것이 어찌나 상쾌하고 뿌듯하고 설레는 동시에 두렵고 혼란스럽고 쑥스러운 일인지.    


어쨌든 간에 저의 밀실은 대체로 이런 것들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저 채널의 주인처럼 좀 더 파고든 '소재나 테마'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자연이라 하면 각종 섬이라든지 사막이라든지 아님 온갖 신비한 곳을 다 가본다든지. 책이라면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냥 저 밀실들을 대충 자유롭게 누비는 정도로도 충분한 듯합니다.  


저에게도 밀실이 있었다는 게, 게다가 3개나 있었다는 게 다행이네요. 이미 당신만의 완벽한 밀실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p.s

그런데 말입니다. '밀실'을 친숙하게 말하면 '취미'인 것 같네요. 취미는 자소서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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