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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미 Jan 29. 2021

미국 간호대 편입 합격 이후, 비자(F1) 발급 이야기

합격이 끝일 줄 알았지만, 이제야 진짜 시작이었다니..!


미국 간호대 편입 지원 당시다섯  정도의 대학으로 간추려서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었는데, 출국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제일 먼저 연락이  대학으로 결정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연락   대학조차 예비하심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던 (나에게는 정말 컸던) 이유가 있었다.  엄청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단순히 대학의 위치 때문이었지만,  상황으로는 정말 찰떡이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에게 가장 먼저 합격 소식을 전했던 그 대학은 플로리다에 위치한 학교였다. 플로리다는 현재 부모님이 지내고 계시는 중남미 코스타리카랑 비행기로 2-3시간밖에 걸리지 않고, 시차가 같다는 점이 나에게는 엄청 위로가 되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이 사실이 감사할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혼자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그리고 직장까지 약 9년간 가족과 떨어져서 지냈고, 가족 한 번 보려면 비행기로 최소 36시간이 걸리고 간단한 통화 한 번 하려고 해도 시차가 15시간이어서 어렵고 서러웠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이 사실이 절대 사소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감사했다. 마음만 먹으면 방학 때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혹시나 나에게 또는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긴다면 2-3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라는 것, 비행기 값이 꿈도 꾸지 못할 만큼의 부담이 아니라는 것, 시차 계산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언제든지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 등 누군가에게는 참 사소하고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런 부분들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가운데 마음을 엄청 든든하게 지켜주는 생각보다 큰 요소들이었다.  참말로, 정말로 감사했다.




간호대를 가기로 마음먹는 과정부터, 나에게 맞는 조건으로 대학들을 선정했던 과정, 지원하는 과정, 등 모든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절대 간단하지도, 짧지만도 않았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최종 합격 연락을 받은 것이 끝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 이후부터가 새로운 인생의 챕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과정이었음을 진작에 알고 미리 마음 준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최종 합격을 해서 마음이 놓였는지, 그 이후의 현실적인 준비 작업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예상조차 못했다. 그중에 제일 중요했던 작업이 학생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이었다.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합격한 학교 측에서 보내주는 I-20 그리고 여권, 등 여러 가지 서류를 가지고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학생 비자 인터뷰를 진행을 했어야 했다. 이제 정말로 합격도 했겠다, 앞으로 미국 땅을 밟는 그날까지의 남은 모든 과정들은 전부 순순히 풀릴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역시나 내 생각이었을 뿐. 오히려 그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비포장 도로를 다시 한번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비포장 도로를 덜컹덜컹 달리면서도 마주한 기적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보호해주고 지켜줬기에, 이 또한 하나씩 기록해보려고 한다. :)




학생비자F1 인터뷰 신청 및 과정


예전 글에 언급했듯이, 나는 미국 간호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위해 당시 본가인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 한국으로 왕복 비행기 표를 끊고 입국을 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 사황이었다. (나름 여유가 있게 시간을 계산해서 비행기를 끊었었다.) 하지만 대학 최종 합격 연락이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은 더 걸림으로, 의도치 않게 비자를 발급받을 시간이 촉박해진 상황이 닥쳤다. 얼마나 똥줄을 탔는지, 지금까지도 정확한 날짜들이 기억이 난다. 11월 말에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아서, 학교로부터 한국까지 서류가 도착하는 시간은 최소 4-5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내가 코스타리카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비행기표는 12월 13일이었다. 정말 촉박했다. 그래도 진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류가 도착하기 전에, 얼추 그 도착 시간을 계산해서 비자 인터뷰를 미리 신청을 해놓을 계획이었다. 그 결과, 최소 "12월 3일" 전에는 비자 인터뷰를 진행해야 내 출국날짜인 12월 13일 전에 학생 비자가 찍힌 여권을 배송받을 수 있을 거라 계산을 하고 인터뷰를 접수하러 대사관 사이트로 들어갔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모든 신청 절차를 마치고, 비자 인터뷰 날짜를 선택하는 과정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멘붕이 들이닥쳤다. 그 당시 여전히 11월 말이었는데, 12월 16일까지 대사관 사이트에 뜨는 비자 인터뷰 스케줄에 남는 자리가 단 하나도 없이 꽉 차있었고, 12월 17일에도 아침 8시 단 한자리만 남아있었다. 13일 날 출국을 해야 하는 나는 엄청난 페닉의 상태가 되었고, 어지간하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부모님의 차분함까지도 흔들어 버렸던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 순간 하늘에 계신 그분이 잔뜩 미워졌다. 분명 당신이 나를 보내시기로 작정을 하셨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셔야지 이제 와서 또 이런 식으로 길을 막아버리시면 어떡하냐는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었다. 비행기 표를 미뤄야 하나, 미룬다면 그 돈은 또 어디서 구하나, 참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그 당시 나의 최선은 수시로 사이트를 들락 거리면서 호오오옥시 누군가 비자 인터뷰를 취소했을 때, 그 빈자리를 기적같이 줍는 일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틀 내내 온 신경이 비자 인터뷰 하나에 곤두서서 하루 종일 대사관 사이트를 30분에 한 번씩 들락날락거렸지만, 도저히 내가 기대하고 있던 기적의 기미가 1도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 결국 무작정 미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걸어서 직원분께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고, 혹시 자리가 다 차있을지라도 나와 같이 당장 출국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존재하는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한 줄기의 빛을 바라듯 간절히 질문을 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다행히도 나처럼 출국 날짜 때문에 급한 사람들을 위한 지름길의 방법이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친절하게 그 방법으로 인터뷰를 예약하는 순서를 차근차근 알려주신 것도 모자라, 내 개인 이메일로도 한번 더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그 방법이 추가 비용이 꽤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새로 끊는 값보다는 백번 양호하니까 지불하고 진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직원 분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마무리 인사를 전하고 있는 그 순간에, 직원분이 다급하게 "어?! 잠시만요! 출국을 13일 날 하신다 하셨죠?"라고 물으셨다. 잉? 이미 얘기 다 끝났는데 갑자기 왜 물으시지 싶었지만 맞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돌아왔던 직원분의 말씀은 정말 정수리부터 엄지발가락 발 끝까지 소름이 쫘악 끼치게 했다. "지금 방금 12월 3일 비자 인터뷰 누가 취소하셔서 한자리가 났는데 이걸로 예약해 드릴까요?". (세상에, 마상에 이런 일이... 내가 출국 전에 비자를 받으려면 늦어도 12월 3일에는 인터뷰를 봐야 한다고 했었는데... 어쩜 이렇게 딱 맞춰서... 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네?! 대박.. 헐 네 지금 바로 그걸로 예약해주세요!!"라고 세상 다급하게 대답을 드렸다. 얼떨결에 인터뷰 예약을 미치게 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와... 솔직히 이번에도 기적이었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건이 또 하나 추가되어 버렸다.


극적으로 무사히 예약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면서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를 드렸다. 아빠는 이미 비행기표를 새로 알아보는 중이었고, 엄마는 그 옆에서 안달볶달 하고 계셨다. 그 황당한 사태에 대처를 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방금 일어난 소식을 전해 드렸더니, 두분도 한참 말이 없다가, "하나님 참 다 내려놓게 하시네... 우리도 그분이 니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알 수가 없다. 다 드려라."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최종 합격을 했다고 마음 놓고 칠렐레팔렐레할 나를 미리 아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게 나를 인도하셨구나 싶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는 정말 합격 이후로도 주어졌던 당황스러운 상황들 덕에 매 순간 그분과 대화를 하며 도와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늘에 계신 그분, 정말 위대하시다.




이후 나는 원래대로 12월 3일에 무사히 출국을 해서 다시 본가인 코스타리카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시차 적응을 하며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들이랑 시간을 진득하게 보냈다. 물론, 미국에서 시작될 나의 새로운 여정에 대해 준비하면서 마음으로는 기대하고, 고대하고, 긴장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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