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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치 Feb 09. 2024

마케터로서의 자질: 사회학적 상상력


"너 나중에 뭐해먹고 살거니?", "너희 과 나오면 취업은 잘 되니?", "거기는 뭐 배우는데니?" 전공이 사회학임을 밝히면 어김 없이 따라오는 질문이다. 경제학과라고 하면 나중에 은행 가겠거니, 컴퓨터공학과면 나중에 개발자하겠거니 하고 이른바 전형적인 진로를 한두개쯤은 떠올려주시던데 사회학과는 정말이지 그런게 없나보다. 이런 와중, 내 꿈은 마케터다. 사실 나도 마케터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힘들다. 같은 마케터라고 해도 하는 일이 워낙 천차만별이고 필요한 업무역량도 제각각이라 하나로 퉁치기가 어려운 느낌? 



그도 그럴 것이 학계에서조차도 마케팅은 합의된 정의가 없는 상황이라 여기저기 뗘다붙이면 다 마케팅이 되는 느낌이다. 워낙 업무분야가 광범위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마케팅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게 어떻게 보면 사회학하고 비슷한 측면도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오늘은 사회학과 마케팅 사이의 연관성과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먼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마케팅이란 "제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이전하기 위한 기획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촉진" 이라고 한다. 보통은 마케팅이라고 하면 광고를 만드는 일 정도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넓은 분야를 모두 포괄하는 분야가 바로 마케팅이다. 어떤 광고를 만들지, 누구에게 송출할지, 사람들 반응은 어떤지, 다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등등이 모두 마케터가 맡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쾌해지려고 사전을 찾아본건데 이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면 오히려 더 답답해질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무엇이든 현상은 복잡하고 본질은 단순한 법이다.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설득"이다. 소비자가 우리의 서비스나 재화를 구매하고 이용하도록, 기왕이면 많이 그리고 자주 이용하도록 사람을 구스르는 과정이 다름 아닌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설득은 대상을 눈 앞에 불러앉혀 놓고 진득하게 오랜 시간 말을 거는 행위 정도이지만 마케팅에서의 설득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다. 당신은 오늘 몇 개의 광고를 봤는가?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기억하지 못 하는게 당연하다. 광고를 보기 싫어 유튜브도 프리미엄을 쓰는 마당에 보여준다고 곧이곧대로 보고 있을리가 없으니. 



소비자를 향한 설득은 찰나에 승부를 봐야한다. 그러자면 단순한 정보성 광고는 더더욱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상품은 이래서 좋아요", "우리 서비스는 정말 저렴해요" 라고 외쳐본들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퍼질뿐 매출은 유의미하게 개선될 수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다. 마케팅에서 지향하는 설득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가치의 발굴"이다. 



우리가 맥북을 사고 아이패드를 쓰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한글파일도 안 열리고, 전용 충전기가 필요하고, 심지어 비싸기까지 한 이 전자기기를 과연 성능이 좋아서 쓰는 걸까? 애플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성능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더 싸면서 아이패드보다 우수한 성능의 기기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조그마하나 사과로고에 열광하는 건 그들은 애플에서 성능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디자인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를 스타일리쉬함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를 철학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애플의 "감성"에 집중한 셈이다. 인간의 뇌는 끊임 없이 세상을 분류하고 정렬한다. 눈 앞에 있는 물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의미가 부여되고 재해석된다. 상품을 상품 그대로만 진열해서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생산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맥락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만 비로소 소비자는 이끌리고 열광하는 것이다.



그럼 이게 사회학하고 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할 텐데 나는 사회학이야 말로 마케터들이 수련해야 하는 학문이라고 본다. 사회학의 핵심은 사회학적 상상력에 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기존의 현상을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량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학가에서 아메리카노 소비율이 유독 높은 현상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그냥 공부하느라 피곤했겠거니" 라고 지나칠 수도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대학생들의 소득과 커피 소비율 사이의 상관관계는 없을까?", "수능성적이 높은 대학교는 커피를 더 많이 소비할까?" 라는 식의 물음도 던질 수가 있다. 



핵심은 익숙한 걸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는 능력이다. 기존의 현상을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맥락을 부여하는 힘인 사회학적 상상력은 마케팅의 핵심은 설득을 가능하게 한다. 아무 설명 없이 가져다 놓으면 그냥 가죽가방일 뿐인 샤넬도 설명과 입소문이 더해지며 명품으로 변신하듯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잠들어 있는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는 일이 바로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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