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현장직 근무자셨다. 간단한 수리보수부터 대규모 공사지휘감독까지 현장일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었다. 바깥일 하시는 분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도 빠릿빠릿함을 강조하셨다. 일은 무조건 빠르고 정확하게. 당신의 모토였다.
나는 손이 곰살궂지 못 해 간단한 심부름에도 애를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신발끈 묶는 법을 배웠을 정도였으니... "너 군대 가면 많이 고생하겠다"라는 말은 정말이지 수도 없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일 잘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요령이 생기면서 허드렛일이나 문서작업에는 도가 텄다. 오히려 꼼꼼하게 잘 했다고 칭찬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겉으로는 허허 웃으며 겸손을 떨었지만 내심 어깨를 으쓱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으스대곤 했다. 하지만 세상 일엔 언제나 그 다음이 있다고 했던가 골머리를 않는 일은 또다시 나타나고 말았다.
우연찮은 기회로 남들 앞에 설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회장을 했고, 군복무 중에는 부대대표병사를 했고, 지금은 동아리회장을 하고 있다. 시키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을 분배해야 하는 입장으로 튕겨져 올라왔다. 사람 하는 일 거기서 거기겠거니 싶었지만, 달랐다. 생각보다도 더 많이.
이제사 인정하는 거지만 나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리더는 멀리 봐야 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한테 당연히 보이는 것들을 무시한 채 애먼 곳에 정신을 팔던 그런 종류의 인간.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는 그 동기나 모양새에선 더할나위 없었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 문제였다.
인테리어라는 걸 한다고 생각해보자. 같이 사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게끔 가구를 들여놓고 실내를 재단장하는 일. 이유도 그럴듯하고 잘 꾸며놓는다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테리어의 취지가 어떤지와 이걸 진짜 해야만 하는가는 또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착수한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할건지, 인원은 몇 명을 부를건지, 돈은 얼마나 쓸 건지, 그동안 가구는 어디 보관할건지 등등. 당장 생각나는 문제만 해도 이 정도인데 진지하게 인테리어라는 걸 한다고 하면 실제로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명분은 좋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지지부진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그게 나의 최대 단점이었다.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소리 듣기를 여러번. 내 이런 단점은 사뭇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내가 내는 의견이 형편없다고? 그럼 아무도 반박 못 하게 더 완벽한 의견을 제시하면 되겠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해야 피드백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반박없이 따라와줄까하고. 전제 자체가 글러먹은 발상이었다.
당장 인테리어 같은 간단한 예시에만도 사족이 한 움큼은 따라붙는다. 더 복잡하고 중요한 다른 일에는 오죽할까. 애초에 한 사람이 이걸 다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 할까"보다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혼자서만 끙끙 않는 건 아무 의미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내가 놓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협업이란 그런 것이고 대표자의 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혼자 고민하지 말자, 같이의 가치를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