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둥두 Jun 14. 2024

JUST DO IT

그냥,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는 상황을 이르는 말. 그냥이 그냥인 이유는 그냥 그래서인데 나는 이 말이 참 싫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 사람들이 하는 말, 심지어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까지. 액면으로 드러나는 현상 아래에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그 밑바탕이 되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집요하게도 되물었다. 그래서 왜 그런거냐고. 꼬치꼬치 캐물을때면 다들 당황하곤 하던데 오히려 당황한 사람은 나였다. 내 사전에 그냥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요즘도 그랬다. 도무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가라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자꾸만 몸이 쳐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썩은 동태 눈으로 딱히 유익하지도, 재미있지 않은 영상에 코를 박고는 몇 시간이고 시간을 죽였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이제는 일어나 할 일을 해야한다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이미 가속이 붙어버린 관성을 통제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뭐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한두번 이런게 아니었으므로. 나름대로 해결책도 있었다.



몸이 피곤한가 싶어서 내리 잠만 자기도 해봤고, 외로웠나 싶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놀아보기도 했고, 보람이 부족했나 싶어서 일을 열심히 해보기도 했다. 그닥 진전이 없었다. 이럴 때는 땀을 빼줘야한다싶어 무작정 뛰었다. 기록갱신이었다. 온 몸 구석구석으로 피가 도는 느낌이 참 좋았다. 물론 기분도. 고작 6시간을 채 가지 못 했다는게 문제였지만. 다음 날이 되자 전날의 상쾌함은 온데간데 없이 다시금 이불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고 결국 하루를 몽땅 날려버렸다. 이런 와중에도 배는 고파왔기에 새벽 3시에 잔뜩 뭘 욱여넣었다. 식사라기 보다는 분풀이에 가깝게 마구 음식을 먹었다. 배를 넘어 명치 언저리까지 포민감이 느껴질때즈음 다시 드러누웠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내가 써오던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이제 이쯤 했으면 기분이 좋아질때도 되었는데 좋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알 수 없게 되버렸다. 무슨 수를 써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도 당최 원인이 없는 우울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점이 더 힘들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신체적인 장애도, 금전적인 궁핍함도, 가정의 불화도, 사회적인 고립도. 나하고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좋았다. 살고 있는 집, 하고 있는 공부,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이런 내가 우울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모조모 따져가며 우울을 분석하려고 할 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대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게 분석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외려 혼란스러워진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는가 싶었다.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 한 채로 스르륵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온 몸이 쑤셨다. 감정이 신체에도 영향을 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뭘 해보려는 의지도 딱히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또 밤이 되고 비척비척 밖으로 나왔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나누어도 참 즐거운 친구다. 자연스레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울한데 왜 우울한 지 모르겠다며. 



"우울한데 이유가 어디있어, 그냥 우울한거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원래였다면.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들어보고 싶었다. 



"감정의 원인은 찾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비참해질 뿐이야.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어"



잠시 말을 잇지 못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왜 우울한지에만 집중했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나의 우울은 오갈 데 없이 가슴 속을 멤돌고 있었나보다. 부쩍 심해진 피로감과 무력감은 우울이 여기 있음을 알아달라는 마음의 외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런가보다하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자세. 그런 자세가 가지는 힘을 나는 과소평가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네 시. 아직도 할 일은 산더미요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판단하지 말자, 다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보자. 



JUST DO IT!    

작가의 이전글 일잘러란 무엇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