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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둥두 Jun 09. 2024

일잘러란 무엇일까

우리 아버지는 현장직 근무자셨다. 간단한 수리보수부터 대규모 공사지휘감독까지 현장일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었다. 바깥일 하시는 분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도 빠릿빠릿함을 강조하셨다. 일은 무조건 빠르고 정확하게. 당신의 모토였다.

나는 손이 곰살궂지 못 해 간단한 심부름에도 애를 먹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신발끈 묶는 법을 배웠을 정도였으니... "너 군대 가면 많이 고생하겠다"라는 말은 정말이지 수도 없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일 잘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요령이 생기면서 허드렛일이나 문서작업에는 도가 텄다. 오히려 꼼꼼하게 잘 했다고 칭찬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겉으로는 허허 웃으며 겸손을 떨었지만 내심 어깨를 으쓱하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으스대곤 했다. 하지만 세상 일엔 언제나 그 다음이 있다고 했던가 골머리를 않는 일은 또다시 나타나고 말았다.

우연찮은 기회로 남들 앞에 설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회장을 했고, 군복무 중에는 부대대표병사를 했고, 지금은 동아리회장을 하고 있다. 시키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을 분배해야 하는 입장으로  튕겨져 올라왔다. 사람 하는 일 거기서 거기겠거니 싶었지만, 달랐다. 생각보다도 더 많이.

이제사 인정하는 거지만 나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리더는 멀리 봐야 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한테 당연히 보이는 것들을 무시한 채 애먼 곳에 정신을 팔던 그런 종류의 인간.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미래는 그 동기나 모양새에선 더할나위 없었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 문제였다.

인테리어라는 걸 한다고 생각해보자. 같이 사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게끔 가구를 들여놓고 실내를 재단장하는 일. 이유도 그럴듯하고 잘 꾸며놓는다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테리어의 취지가 어떤지와 이걸 진짜 해야만 하는가는 또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착수한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할건지, 인원은 몇 명을 부를건지, 돈은 얼마나 쓸 건지, 그동안 가구는 어디 보관할건지 등등. 당장 생각나는 문제만 해도 이 정도인데 진지하게 인테리어라는 걸 한다고 하면 실제로는 더 복잡해질 것이다.

명분은 좋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지지부진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그게 나의 최대 단점이었다.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소리 듣기를 여러번. 내 이런 단점은 사뭇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내가 내는 의견이 형편없다고? 그럼 아무도 반박 못 하게 더 완벽한 의견을 제시하면 되겠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해야 피드백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반박없이 따라와줄까하고. 전제 자체가 글러먹은 발상이었다.

당장 인테리어 같은 간단한 예시에만도 사족이 한 움큼은 따라붙는다. 더 복잡하고 중요한 다른 일에는 오죽할까. 애초에 한 사람이 이걸 다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 할까"보다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혼자서만 끙끙 않는 건 아무 의미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내가 놓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협업이란 그런 것이고 대표자의 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혼자 고민하지 말자, 같이의 가치를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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