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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둥두 Nov 03. 2023

행복이란 무엇일까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려던 참이었다. 빨리 씻지 않으면 잠드는 시간이 더 늦어질 걸 알지만 그날따라 몸이 한없이 늘어졌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한참을 누워만 있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땀은 왜 이리 삐질삐질 흐르는지, 샤워같은 거 건너뛰어버리고 바로 침대로 가고 싶은데.

잔뜩 인상을 쓰고 불평한 지 1분 즈음이 지났을까 왜 이렇게 징징대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고작 샤워 하나 가지고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인 양 구는건지 곰곰이 되뇌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날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슬펐다. 아무도 없는 집이었기에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나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샤워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후딱 씻고 나와서 보송보송한 감각을 만끽했을거다. 그리곤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심 뿌듯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하지만 그날은 그렇지 못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가 유난히 지쳐있었을 뿐. 그것 뿐이다.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으로 밖을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샤워는 번거로운 일에 불과하지만 즐거운 일들만 가득했던 날엔 여전히 신나는 일이다. 이를테면 원래 즐거운 일이나 원래 슬픈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물로 노폐물을 씻어 내리는 행위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번거롭다느니, 상쾌하다느니하는 감정을 덧씌운 건 오롯이 내 자신이었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할 때는 기분이 좋아보일때를 노리라는 격언도 있듯이 어떤 사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기정사실이 아니다.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도, 다른 일을 겪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일견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일도 한 없이 커질 수 있는 반면 그 어떤 커다란 변화도 사소한 소요 취급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현상에 대한 소회는 사람에게서 완결되고 마침표를 찍는 주체는 바로 우리. 다른 이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우상에게도 슬픔은 깃들어있듯이 제 아무리 커다란 절망 속에서도 돌파구는, 그리고 그로부터 들어오는 밝은 빛은 찾아질 수 있다. 나는 방금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 깨끗한 물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음에, 그리고 차분히 앉아 오늘을 새겨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보람찬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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