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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r 02. 2022

“도서정가제 이후 첫 축제… 11년 신뢰 믿는다”

이채관 와우북페스티벌 집행위원장


매년 10월, 가을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몸 속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자, 방구석에서 홀로 보던 책을 잠시 포개 놓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때야” 누군가 옆에서 속삭이는 느낌이랄까. 이 같은 증상의 이유는 바로 국내 최대 책 잔치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때문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열린지도 어느덧 11년 째를 맞았다. 올해는 ‘책, 삶을 살피다. 사유의 복원’이란 주제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홍익대 주차장 거리 및 상상마당, 서교예술실험센터, 노리터플레이스, 마포디자인출판진흥지구협의회(DPPA) 등의 문화공간에서 열린다. 준비된 프로그램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각종 산해진미를 모아놓은 한상차림과도 같다.

우선 홍대 주차장서 열리는 ‘거리도서전’에서는 80여개 출판사들이 홍대 주차장에서 책을 할인 판매한다. ‘와우스페셜’에는 ‘혐오’와 공감‘이라는 주제로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 사회학자 김찬호가 패널로 참여해 다양한 강연 및 포럼이 열린다. ‘와우판타스틱서재’는 문학, 인문, 요리, 여행 등 다채로운 장르에 걸쳐 강연과 토크 프로그램이다. ‘와우상상만찬’은 인디문화의 상징인 홍대지역의 20주년을 갈무리하고 새 앞길을 밝히는 프로그램으로 음악평론가 강헌, 신현진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포럼, 라운드 테이블, 전시가 펼쳐진다. 저녁 7시면 야외 무대에서 열리는 인디음악 콘서트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2005년 이래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다채로운 풍경을 그려온 주인공을 만나봤다.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 대표 이채관.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와우책문화예술센터는 페스티벌 개막을 앞두고 한창 분주한 풍경이었다. ‘독서는 사적이고 정적인 것’이란 고정 관념을 깨고, 책과 도시, 사람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이 대표의 꿈은 어디까지 이뤄진 것일까? 또 앞으로 어떤 모습들을 만들어갈까? 다음은 문화, 도시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과, 현장을 누비는 기획자다운 특유의 넉살과 행동력이 곁들여진 그와의 대화 한 토막이다.


“불특정다수보단, 생각 공유하는 이들이 소중해”

Q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하 와우북)’이 생긴 지도 올해로 11년 째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페스티벌에 있었던 변화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처음에는 연성화되고 대중친화적인 주제를 많이 다뤘어요. 주제도 ‘청춘’이나 ‘젊음’처럼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로 삼았죠.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에 좀 더 가까이 가려 하고 있어요. 페스티벌 10주년이었던 작년엔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고, 올해는 ‘책, 삶을 살피다. 사유의 복원’을 주제로 삼았죠.

축제하면 으레 즐겁게 놀고, 음식 먹고, 음악 듣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책 축제는 달라야 해요. 책은 생각을 다루는 매체이고, 생각은 단지 개인에 대한 것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사유도 있지요. 그래서 넓은 의미의 사유를 담은 책을 통해 사회적 어젠다에 접근해 가고자 하는 겁니다.

Q 대중들에겐 초창기 화두인 ‘청춘’이나 ‘젊음’ 같은 단어가 더 달콤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대중성을 지향했더라면 페스티벌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좌나 이슈를 개발할 때 문제의식이 애매모호할 때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할 때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요. 불특정 다수 보다는, 백 명, 이백 명일지라도 책을 좋아하거나 우리 축제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힘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대중 마켓보다는, 의미 마켓이에요. 출판사처럼 책을 파는 조직은 아니지만, 의미를 시장에 내놓고 고민하는 기능을 해요. 그렇게 출판사와 상보적 관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Q ‘우리나라1호’ 책 축제로서 11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와우북’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노하우는 없습니다.(웃음) 페스티벌은 한시적 사업이니까 중간 중간에 남의 일도 해주고 애를 써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와우북’은 책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책을 문화예술과 결합해서 새로운 형식으로 소비하는 다양한 책 사용법을 알려주는 축제에요. 책은 문화적 다양성이 집적된, 이야기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잖아요. 우리 축제가 이처럼 다양한 생각들로 이뤄진 책을 문화 예술과 접목해 응용, 변용할 수 있는, 참여자들과 함께 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아간 것 같아요.


제10회 와우북페스티벌 시심토크 현장


“상 벌여 놨으니, 자기 취향대로 놀아주세요”

Q 지금의 ‘와우북’ 정체성엔 홍대라는 지역도 중요한 역할을 해요. 하지만 현재 홍대에 초기의 ‘인디’ 정신은 사라졌고, 문화 인프라는 붕괴되었으며 지나치게 상업화 되어간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이런 홍대 분위기 변화가 ‘와우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홍대가 소비적이고 상업화 되었다는 비판도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여전히 홍대 주변에는 출판사들이 많이 존재하고, 예술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출판과 연관된 예술가도 여럿 활동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홍대는 아직도 작가, 출판인,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만나고, 즐기는 지식생산의 거점 공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홍대가 변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올해 ‘와우북’에서도 지난 20년 간 홍대의 ‘인디’, ‘독립’ 문화를 되돌아보는 ‘와우상상만찬’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홍대에서 지난 20년간 마치 이념처럼 간직한 ‘인디’, ‘독립’이 사라졌다고 할 때, 그 이념을 무조건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이 왜 없어졌는지, ‘인디’, ‘대안’ 개념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반성적 사유로 리뷰해 볼 기회를 만들고자 했어요. 우리가 지금 어떤 맥락으로 이 공간에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논의해 보자는 뜻으로요.

Q 올해 와우북페스티벌 주제가 ‘책, 삶을 살피다. 사유의 복원’인데요. 이 안에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싶으셨나요?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파편화된 정보의 조합이 아니라 오래되고, 지속되는 긴 호흡의 생각들로 자기 힘을 키웠으면 해요. 그 힘에 기반해서 타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가 같이 사는 삶을 살펴보고, 가능하면 재구성까지도 해보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의 힘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와 연관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세상엔 재미난 축제들도 많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재미를 만들려고 해요. 아이들이 책과 어떻게 노는 지도 알려주고, 책을 매개로 한 전시나 공연들도 열고, ‘사유의 복원’이란 주제에 관해 깊이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노는 축제로써, 책에 관한 수만 가지 생각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도록 하고 싶어요.

Q ‘와우스페셜’ 섹션에서는 요새 쟁점이긴 하나 오프라인에서는 선뜻 공론화되지 않았던 ‘혐오’라는 주제를 다룬다고요?

나와 다른 타인의 다른 생각을 적대시하고,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마녀사냥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있어요. 대면적 관계들이 사라지고 인터넷을 통한 사회망들이 생겨나고 관계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희생양 삼는 현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봤으면 했습니다.

Q 올해 행사에서 특별히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참여하는 분들의 취향을 추천해요.(웃음) 우리가 나름대로 상을 벌여놨으니 시민들이 와서 자기 취향대로 놀아주면 좋겠습니다. 책은 10분만 보고 술 마셔도 되고요. 홍대에서 매일 놀던 20대나 30대 외에도 가족 단위로 와서 홍대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제10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거리도서전 전경


융복합형 모델 책 축제 실험해 보고 싶어

Q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처음 열리는 ‘와우북’입니다. 책 할인 판매라는 메리트가 사라진 지금 참여가 줄어들까 우려되지는 않으세요?

도서정가제 때문에 참여 출판사 수는 20% 정도 줄었습니다만 축제 준비단계인 아직까지 어렵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올 3월, 4월에는 우리 행사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올해 행사를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방문객들의 반응이 어떻게 올지 궁금해요. 11년간 쌓인 신뢰가 긍정적인 반응으로 되돌아 왔으면 합니다.

Q 다음 10년 후 ‘와우북’의 모습을 그려본다면요?

융복합형 모델의 축제를 해보고 싶습니다. 음악축제 모델을 결합한 책 축제를 실험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규모를 2~3배 늘려서 동교동까지 확장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책 축제는 곧 지식 축제잖아요. 지식 축제의 모델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은 많이 합니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월드컵 경기장에 100명의 훌륭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모셔서 곳곳에서 좌담하며 떠들고 놀고, 저녁엔 춤추고 노는 모습을 상상 합니다. 기획은 상상이니까요.(웃음)

와우책문화예술센터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 예술가들도 와서 놀고 이야기하다가 다른 생각들이 서로 만나고, 가끔은 싸움도 한번씩 벌어지는 생각의 토양을 배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파크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서법이나 책이 있나요?

어려운 책을 읽어보세요. 인문학. 사회과학, 철학 분야에서 어려운 책을 한 번씩 읽어보는 거예요. 20대들은 더더욱요. 저도 어린 시절 그런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사실 내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경험이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어려운 책은 많잖아요. <자본론>? 어렵고 이해가 안 돼도 한 번 읽어 보고. 들뢰즈? 어렵죠.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몰라도 애를 써 보는 거죠. 그런 책들을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어요.


북DB 2015. 9. 24

http://news.bookdb.co.kr/bdb/starCast.do?_method=detail&sc.page=1&sc.row=10&sc.webzNo=24156&sc.orderTp=1&listPage=&listRow=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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