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진 Mar 14. 2022

디자이너 차재국, 현대카드 10년의 디자인을 말하다

<토탈 임팩트의 현대카드 디자인 이야기> 출간 차재국 작가




이제 지갑에 신용카드가 없으면 어색하다. 음식점, 영화관, 서점, 쇼핑몰 등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필수품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는 할인 혜택만 많으면 된다는 것’이 통용되는 상식이었다면 현대카드의 등장은 이 상식을 깨뜨린 순간이었다. 특히 2003년 출시 당시 현대카드만의 독특한 디자인은 카드사마다 대동소이한 혜택에 만족해야 했던 소비자들에게 분명한 선택지점을 제시해 주었다. 현대카드만의 글꼴(유앤아이체)을 활용한 기업 로고는 소비자들이 현대카드를 접할 때 세련되고 통일된 느낌을 받게 했고, 카드엔 기업을 상징하는 색상이 주로 사용되던 관례를 벗어나 무채색에서부터 색상표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색상의 카드를 출시한 것도 현대카드가 먼저였다. 단순히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미리 제공 받고, 그 값을 월말에 정산하도록 하는 것이 신용카드의 원래 기능이었다면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서 결재하는 모든 과정에 시각적인 즐거움, 감성적인 만족을 더해 준 것이 현대카드의 위력이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현대카드에서 디자인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토탈임팩트라는 디자인 회사다. 토탈임팩트의 3인 오영식, 차재국, 신문용은 현대카드에서의 10년간의 기록을 모아 책을 냈다. 바로 <토탈임팩트의 현대카드 디자인 이야기>다. 이 책 속에는 현대카드 디자인을 담당했던 기록들, 그들이 고수하는 디자인의 원칙과 철학이 담겨 있다. 디자인이나 브랜딩에 관심 는 이들이나 현대카드 디자인을 눈여겨봐왔던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북DB에서는 토탈임팩트 차재국 부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책이 담지 못한 더 깊은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Q 현대카드라는 이름은 친숙하지만 그곳 디자인을 담당한 토탈임팩트라는 기업의 존재는 낯설 수도 있습니다. 토탈임팩트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2004년 설립된 토탈임팩트는 ‘Branding by Design’이라는 슬로건 아래 글로벌 네트워크 기반으로 다양한 브랜딩 및 아이덴티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입니다.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크리에이티브’를 모토로 현대카드, SK텔레콤, 하이트진로, JTBC 등 국내 유수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새로운 영역의 프로젝트에도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3명(오영식, 차재국, 신문용)은 회사 설립 전부터 20여 년 넘게 같이 작업해 왔습니다.

Q 토탈임팩트팀은 2003년 현대카드 내부의 비주얼 코디네이션팀으로 출발해 2004년부터는 토탈임팩트(Total Impact)라는 디자인 회사를 꾸려 외부 협력업체로 협업해 왔습니다. 내부에서 외부로 전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2003년 당시 현대카드 소속 비주얼 코디네이션 팀장으로 있던 오영식 대표가 2004년 퇴사 후 토탈임팩트를 설립했고 이후에도 계속 현대카드 디자인 작업을 해왔습니다. 저희가 2012년 지금의 사무실로 옮기기 전까지 현대카드 본사 건물에 토탈임팩트 사무실을 두고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브랜딩 관련 작업을 했습니다.

Q 토탈임팩트가 디자인에 있어서 시각적 화려함뿐만 아니라 탄탄한 논리를 앞세운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집단 안에서 논리를 만들고, 또 타인을 설득하는 데까지 이르려면 탁월한 언어적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설득한다기보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서 언어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소주 병 디자인을 하는데 술을 아예 안 먹는 사람이 디자인을 한다든가, 화장품을 안 쓰는 사람이 화장품을 디자인한다면 아이러니한 상황인 거죠.

Q “클라이언트보다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더 소상히 연구한다(p.29)”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일 것 같은데요. 대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십니까?

상식이라고 하면 웃긴가요? 같은 주제라도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정답도 여러 가지일 수 있죠. 그 브랜드에 맞게끔 디자인을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의 성향 역시 잘 알아야 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클라이언트보다는 그 분야에 대해 잘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 분야를 공부했고 수년 간 일해 온 전문가들이니까요. ‘보편타당성’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 분야에 대해 일반인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것이 저희에겐 무기가 됩니다.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방향성이 나아가야 할 방법을 상식 선에서 제시하는 것이지요.

Q 새로운 아이디어는 디자인의 핵심일텐데요.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한 브레인 스토밍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브레인 스토밍 자리에 저와 대표님은 참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편한 관계라도 저희가 있으면 식구들이 말을 안 하더라고요. 다만 결과물을 브리핑 받고 그에 대해 제 의견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책에서 “브랜딩은 디자인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성공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아이디어, 가치, 원칙 등, 그 브랜드만의 철학과 문화 위에서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다듬어진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담당하는 클라이언트가 이런 철학과 문화를 갖추지 못한 곳이라면,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클라이언트가 철학과 문화를 갖추지 못했을 때 디자이너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듯합니다. 이 문제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나누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모든 것을 갖춘 클라이언트라면 항상 성공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클라이언트는 있어도 쉬운 클라이언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미국 디자인보다 유럽 디자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적이 없기에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또한 유럽 디자인을 높게 평가한다고 해서 미국 디자인을 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드를 중시하고 점 하나를 찍더라도 왜 찍었는지에 대한 로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등, 프로젝트에 임하는 자세가 토탈임팩트와 더 맞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토탈임팩트가 무분별한 경쟁 PT를 지양하고 리젝션 피(경쟁 PT에 참여했다가 입찰이 안 된 업체에 시안 준비에 소요된 시간과 인력 등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보장해 주는 것)를 지불하는 PT에만 참여하거나,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에서 바라는 사항을 명시해 놓은 제안요청서(RFP : 발주자가 특정 과제의 수행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한 것)를 받는 등 소신 있게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악한 국내 디자인 창작 문화를 발전시키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부당한 환경에 맞서 줏대를 잃지 않는 방법 같은 게 있으신가요?

슬프지만 없어요. 저희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클라이언트가 “건방지다”, “너희가 얼마나 잘났는데?”라고 하는 순간 장사는 다 한 거죠. 다만 그 시간에 현재의 클라이언트에 집중합니다. 불확실한 뜬구름을 잡는 것보다 현재 곁에 있는 것에 충실하자는 의미입니다.

Q 현대카드에서 국내 최초로 카드 디자인에 스타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를 등용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차후 현대카드 경쟁관계에 있는 카드업체에서 유명 디자이너 조너던 반브룩을 기용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조너던 반브룩의 카드 디자인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누군가의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개발 당시의 상황과 브랜드의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최종 결과물이 그렇게 나온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단 L사에 꼭 조너던 반브룩의 디자인이 필요했을 지에 대한 의문은 듭니다. 최근 스타 디자이너들과의 디자인 협업은 스토리텔링과 마케팅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한 접근 방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현대카드의 성공비결이 토탈임팩트의 디자인 덕분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절대 아닙니다. 저는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디자인이 좋다고 결코 성공적인 기업이 될 수 없듯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그 것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디자인 때문에 현대카드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Q 현대카드와의 협업을 끝낸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모든 것을 작업하기에는 그 업무 범위와 양이 너무 많았고 현대카드 내부에 디자인 팀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디자인 팀은 점점 규모가 확대되었고, 당연히 저희의 참여도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작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역량이 현대카드 자체에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대카드의 브랜드를 10여 년간 관리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Q 토탈임팩트 이후의 현대카드 디자인 행보에 점수를 주신다면 몇 점 주고 싶으세요? 그 이유는요?

저희는 현대카드의 ‘룩앤필’을 확립했다고 생각하고, 저희 이후의 현대카드는 그 가이드라인을 더욱 발전시키고 실행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현대카드의 디자인 행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따라가지도 않으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산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책엔 담기지 않았지만, JTBC, 하이트진로, NC소프트, SK텔레콤 T, SMTOWN 등의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여기서도 역시 글꼴을 살리는 디자인 기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글꼴’을 이용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글꼴은 비주얼 아이덴티티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성격을 나타내는 기본 4가지 요소 로고(심볼), 글꼴, 색, 제4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질문에서 예로 든 프로젝트들이 글꼴을 살려 디자인했다고 하셨지만 JTBC의 경우 타입페이스보다는 심볼에 가깝습니다. JTBC라고 읽히기는 하지만 이는 기존 중앙일보 심볼에서 착안하여 디자인된 것이지요. 추후 다양한 프로그램 성격을 한 번에 아우르고, 뉴스 및 다큐멘터리 등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서체를 추가로 개발한 것입니다. SK 텔레콤 T의 경우는, 너무 많은 사업 분야(T map, T login, T world 등)가 있기에 후에 다른 사업이 추가로 생겨도 별도의 디자인 없이 적용할 수 있게 디자인한 것입니다.

각 프로젝트마다 이유가 있어 타입페이스를 개발한 것이지 타입페이스를 살리는 디자인을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것은 아닙니다. 최근 서체 개발이 이슈화되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서체를 개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슈화를 위해 기업 서체 개발을 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NC 소프트의 경우는 10주년에 맞는 느낌의 기존 서체를 골라 튜닝 없이 사용한 것이지 따로 디자인 하지는 않았습니다.

Q 토탈임팩트가 지향하는 비전이나 차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최근 일상이 디지털화되고 IT중심으로 바뀌면서 아이덴티티 전문 회사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행사를 보아도 전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제품디자인, 앱이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아이덴티티나 편집 등 그래픽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기반으로 하는 UI(User Interface)는 신조어 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기존의 개념을 새롭게 부르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UX와 UI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탈임팩트도 UX와 UI를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희 레퍼런스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저희는 삼성전자의 Kies, 다음, SK 텔레콤의 UI작업 등 아이덴티티 분야로 규정하기 힘든 작업들도 해왔습니다. 그 외 현대카드, 아모레퍼시픽, GS SHOP 등, 기업이나 브랜드를 위한 홍보 영상이라든지 제품, 공간디자인 등 전문 영역에 상관없이 작업을 해왔습니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넘어서는 이러한 일들은 한 것은, 사실 아이덴티티를 유지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였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매체나 트렌드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토탈임팩트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그릇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토탈임팩트는 디자인 에이전시의 본연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며 더욱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회사와 제휴를 맺고 그들과 같이 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에 저희가 책을 내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북DB 2015. 7. 31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667

매거진의 이전글 한비야×안톤 “결혼은 완전체끼리 만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