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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리공 Jan 16. 2022

에세이 쓰기는 두 번 시작된다

글쓰기가 막막할 때 


매 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머리가 아프다. 월요일마다 하는 모임 때문이다. 참석자는 매 주 한 편의 에세이를 작성해서 공유 폴더에 업로드를 하고, 모임 시간에 각자의 글을 같이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 준비한 요리를 나누는 포틀럭 파티처럼 서로가 준비한 에세이를 읽는 건 좋지만, 머리가 아픈 이유는 나도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 해준 글만 맛있게 먹는 건 반쪽짜리 참여라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매 주 에세이를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에세이를 꾸준히 쓰는 건 너무 어렵다. “오늘은 뭘 쓰지?” 라는 질문을 한 주 내내 구석에 뒀다가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꺼내곤 했다. 일상을 정신없이 흘려버리고 나서 뒤늦게 쓰려니 글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방학 내내 딴짓하다가 개학 전날에 밀린 숙제를 다 하려고 덤비는 꼴이었다. 


숙제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일상에서 글감을 건지려고 했으나, 바쁘게 한 주 살다 보내면 글감찾기는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매 주 지내다 보니 이제는 작정하고 에세이 소재를 찾으려 해도 어떤 게 글쓰기에 좋은 재료가 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루를 돌아보면 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게 다른 의미나 생각으로 이어질 지 구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있었던 일만 쭉 나열하는 글을 써보기도 했는데 영 재미가 없었다. 


쥐어짜서 쓴 에세이의 약점....


답답한 마음에 에세이를 한 권 집어 들었다. 잘 쓰는 작가는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 지 궁금했다. 먼저 글쓰는 방법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책을 찾았다. 처음 만난 건 장강명 작가의 <책 한권 써봅시다> 였다. 그는 좋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나만의 특별한 생각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느냐” 와 “어떻게 하면 그 생각을 잘 펼쳐 보일 수 있느냐” 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긴 낚싯대를 내리는 것처럼 일상에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때 질문이란 평소 느낀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본인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그걸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이걸 왜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 “여기서 어떤 점이 이상한가” 와 같은 질문을 이어가며 꼭 답을 찾지 않아도 생각의 파편에 자신의 이야기를 보태라는 것이다. 

꼭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는 두 번째 중요한 요소인 “어떻게 잘 펼칠 것인가” 에 대해서 장강명 작가는 3가지가 필수라고 말한다. 욕 먹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쓰고, 자신을 뽐내려고 애쓰지 말고, 교훈과 감동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쓰려고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머리로 이해는 되는데 실제로 위의 규칙을 잘 반영해서 쓴 글이 궁금했다. 


그래서 손에 쥔 책이 <다정소감(저자 김혼비)> 이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라는 말을 듣고 책을 펼치고 깨달았다. 아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이거구나. 장강명 작가가 에세이 쓰기의 개념을 알려줬다면, 김혼비 작가는 능숙한 시범 조교 같았다.<다정소감>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생각을 솔직하게 펼친 글이 모여 있는 책이었다. 유튜브 웃긴 영상을 보는 것처럼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좋은 사례를 하나 꼽자면 첫 번째 글인 “마트에서 비로소” 가 있다. 저자는 어쩌다 글로 조금씩 수입을 얻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는 게 직업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본인이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고민을 갖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저자는 우연히 마트에서 김솔통이라는 물건을 만난다. 김솔통이란 김에 참기름을 묻힐 때 쓰는 솔을 담는 통이다. 사소하지만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이 물건에 감명받은 저자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수립한다.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은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깔끔한 효용을 주는 김솔통 같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다짐하며 이 에세이는 마무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김솔통

마트에 안 가본 사람은 드물다. 다들 가서 이런저런 물건을 구경하지만, 자신이 찾는 것 말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저자처럼 이것저것 살피다가, 아니 이런 이상한 물건은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드물다. 앞서 장강명 작가가 말한 것처럼 사소한 감정에서 시작되는 질문을 놓치지 않았기에 김혼비 작가는 마트에서 김솔통을 만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작가로서의 정체성” 이라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고민과 질문이 이어지고, 그것을 쉽게 팽개쳐두지 않은 작가에게 김솔통이라는 글감이 온 것이다. 


에세이를 쓰려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깜빡이는 커서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어떻게든 글자를 쓰면서 커서를 뒤로 밀어야 하지만 버거워서 이내 유튜브나 SNS로 도망치기 바빴다. 한참을 놀다 돌아오면 커서는 한층 더 무거워져 있었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에세이를 못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진짜 원인을 알 것 같다. 무거운 커서를 뒤로 밀어내는 힘은 일상 속 고민과 질문을 놓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에세이 쓰기란 책상에 앉은 순간 시작되기도 하지만, 일상 속의 생각이 이어질 때 이미 시작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안써도 알긴 하지만 ... 그래도 계속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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