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와 다른 스포츠 이야기
오프사이드가 뭔지도 모르는 미국의 미식축구 감독이 프리미어리그 팀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드라마 테드 래소를 한 줄로 요약한 것이다. 비슷한 한국 드라마로는 최고시청률 21%를 찍은 스토브리그가 있다. 스토브리그는 야구 경험이 전혀 없는 백승수(남궁민)가 만년 꼴찌 야구단 단장으로 부임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테드래소의 테드와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둘 다 해당 분야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성적이 부진한 팀의 사령탑이 되어 동료의 신뢰를 얻고 팀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야기 개요가 비슷하니 등장인물들도 비슷하다. 각자의 이유로 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구단주, 무기력한 구단 임직원, 터프한 선수와 그 외 다른 선수들.
차이점은 단장 백승수와 감독 테드 래소의 캐릭터에서 나온다. 백승수는 천재면서 카리스마가 있다. 첫화부터 마지막화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텃세 부리는 팀의 실세 선수 앞에서 기죽지 않고, 묘수를 써서 그를 다른 팀으로 보낸다. 이후 다른 구단주들과의 협상에서도 뛰어난 머리로 매번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우수한 선수를 발굴한다. 스토브리그는 백승수라는 천재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조연은 주로 백 단장의 옆에서 상황을 설명하거나, 극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반면 감독 테드 래소는 천재도 아니고 카리스마도 없다. 처음 부임한 날 기자회견에서 “오프사이드가 뭔지는 아냐?” 라는 조롱 섞인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한다. 팀원 중 일부가 그를 무시해도 그는 마냥 해맑다. 그가 가는 곳마다 팀의 팬들은 그를 비난하고 퇴진을 요구한다. 심지어 드라마 속 중요한 경기에서 지는 날도 많다. 감독인 테드보다 조연들이 더 똑똑한 모습을 보일 떄도 많다. 테드는 늘 비어드 코치의 조언을 받고, 구단에서 잡일을 하던 네이선이 제시한 전략도 적극 활용한다. 시즌 1 초반에는 구단주가 파놓은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걸리기도 한다. 모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고 적의 계략도 늘 간파하던 백승수 단장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 카리스마 없고 천재도 아닌 테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드라마 속 테드는 진솔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에게 보여줄 천재적인 계획은 없지만, 진심으로 팀과 팬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마음을 얻는다. 비슷한 방식으로 팀원들의 마음도 얻어 간다. 구단주도 처음에는 감독 테드의 실패를 바라며 이런저런 함정을 파지만, 모략을 알고도 구단주를 용서해주는 테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렇게 진솔한 감독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팀은 각자 팀의 성장을 위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며 노력한다. 팀은 대단한 성취를 하진 못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높은 결속력을 갖게 된다.
테드레소 속 등장인물들은 다 장단점이 있다.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천재인 사람도 없고, 마냥 우습기만 한 사람도 없다. 이성적이고 똑똑한 비어드 코치는 연애를 잘 못하고, 순박한 네이선 코치는 갈수록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팀의 에이스인 제이미는 동료와 함께하는 법을 잘 모른다. 꺼지라는 말을 들어도 해맑게 웃을 정도로 친절한 테드는 사실 부모와 관련된 큰 트라우마가 있다.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람이 없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카리스마 있는 영웅의 활약 대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팀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단순히 팀의 경기 성적만이 아니다. 이혼한 상처가 있는 구단주를 같은 처지의 테드가 위로하고, 반대로 테드가 트라우마로 공황이 왔을 때는 구단주가 호흡을 돕는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위해, 은퇴한 전 주장이 해결방안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은퇴한 전 주장은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할 때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는다. 이 드라마는 부족한 개인이 다른 이웃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없다. 주인공의 팀은 경기에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은데, 진 경기 이후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한 명의 천재가 모두를 구원하는 것보다, 평범한 모두가 서로의 구원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 드라마에 좀 더 마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