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뇌는 말’이라는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떠오른 말이 있었다. “지금, 여기 있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예전에 책을 만들었던 정신과의사인 작가님께 배웠다. 작가님께서 스스로 계획하신 출간 이벤트가 있었고 여러 명과 함께 남산을 걸었다. 발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특정한 말을 떠올리며 걸어보자고 제안해주셨고,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지금, 여기 있어”라는 말을 떠올리자고 하셨다.
덕분에 발걸음마다 집중해서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평온하고 즐거웠던 산책 이벤트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말은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말을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의식적으로라도 숨을 크게 들이마시던 날이었다.
이 말이 왜 떠올랐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던 거 같다. “지금, 여기 내가 있어”, “지금, 여기 나는 살아 있어” 하는 식으로 차츰 변형된 말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차분히 되뇌다 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아무 문제가 없구나. 조금 지쳐 있을 뿐이구나’ 하고. 이후 이 말은 종종 내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말로 쓰였다. 나를 구호해주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암호로.
마음이 슬플 때만 이 말을 붙잡는 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되뇐다. 자주 없는 경우이긴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들떠서 다잡아야 할 때다. 한없는 설렘과 기대로 마음이 붕붕 떠다닐 때 이 말로 나를 다시금 현실로 안착시킨다. 이럴 때면 날짜까지 길게 덧붙인다. “2024년 3월 8일 밤 11시.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어” 하는 식으로. 그러면 쿵쾅대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이 말을 되뇌면서 생각해보니 작가님께서 이 말을 가르쳐주신 의미는 ‘순간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한 발 한 발 딛고 살아가고 있음을 감각하라고.
이번 주 내내 ‘나를 돌보며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바쁜 일들로 나에게 신경 써주지 못할 때면, 묻어두고 외면해온 감정들은 쌓여 깊은 무력감을 가져온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하는 허탈한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나를 잘 돌볼 수 있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순간순간 내 상태를 자각하며 사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여기 있어”라는 말을 매일 틈틈이 물을 챙겨 마시듯 내게 건네주면서.
“지금, 여기 있어”라는 말은 이제 내게 비밀스런 암호가 아닌, ‘마음을 돌보며 살고 있다’는 적극적인 행동의 언어가 되었다. 숨 쉬듯이 자주 내게 말해주려고 한다. “지금, 여기 나는 살아 있어. 그러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어” 하고.